도면 까막눈을 감리단장으로…무분별한 '전관 모시기' 경쟁
부실시공 아파트 15곳 모두 LH전·현직자가 감리
시공만 경험해 감리 전문성 없거나
아예 행정 업무만 담당하다 오기도
재시공·공사중지 권한 '유명무실'
"LH 자체 감리 모두 외주화해야"
"감리사 아닌 발주처 책임 강화를"
[이데일리 전재욱 신수정 기자] 감리는 설계 시공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안전판 역할이다. 하지만 ‘엘피아’(LH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소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철근 누락 사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둘러싼 이권 카르텔의 비판이 커지면서 전관예우가 가져온 엉터리 감리의 부실공사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감리는 시공사가 설계대로 공사하는지 현장에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지만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 현행법상 재시공 명령·공사중지라는 권한이 감리자에게 있지만 엘피아가 만연한 감리 현장에선 ‘유령감리’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부실감리만이 판치고 있다.
부실시공 15곳 모두 LH 전·현직자가 감리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의 감리를 맡았던 M종합건축사사무소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주요 임원으로 LH 출신은 물론 지자체 주택관련 고위 공무원 출신, 법무부 출신, 군 출신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전관 라인업을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소개했다. 임원 10명 중 8명이 전관이었다. 이번 엘피아 카르텔 문제가 본격화하자 M사는 아예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5개 부실시공 LH공공임대 아파트 가운데 5곳은 LH가 직접 감리했고 나머지 10곳은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가 감리를 담당했다. 결론적으로 15곳 모두 LH 전·현직자가 감리를 담당한 셈이다.
무분별한 전관 영입은 감리 분야에서 심각하다. 행정업무만 담당하다 오니 도면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감리로 오는 예도 있다. 대체로 건설 시공 경력을 가진 이들이 감리 과정에 참여하는데 행정과 시공 능력만 갖춘 이들이 감리업체로 영입되다 보니 정작 감리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이 적다. 시공과 감리 두 영역은 엄연히 다른 전문 분야로 구분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는 “건설 품질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적정한 비용을 줘야 하지만 저가 수주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인건비가 낮은 퇴직자나 경력이 부족한 인력들이 감리 오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업무나 시공을 담당했던 퇴직자가 감리 단장으로 오거나 도면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감리로 오는 예도 있다”고 했다.
박홍근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구조 감리는 현장 감리자가 시방서(명세서)와 현장 시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을 관리·감독하고 도면을 볼 줄 아는 전문 역량은 뒷전이고 낮은 단가를 우선하니 감리 업체에서 최고 기술자를 보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불법 하도급이 만연한 상황에서 시공 품질이나 부실공사를 걸러내야 할 감리가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제2의, 제3의 검단 붕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LH가 감리단계에서 낙찰자 선정 시 LH 전관이 있는 업체로의 낙찰률이 80%가 넘는다”며 “부실업체를 선정하고 사업 전체를 관리 감독하는 LH는 법적인 절차를 지켰기 때문에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이권 카르텔을 해체하고 LH 선정권에도 손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도 답답…발주처인 LH 책임 강화해야
이처럼 부실 감리에 대해 전문가들도 답답해하고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다 개선을 요구해도 실제 공사 현장에선 묵묵부답이다.
최명기 교수는 “이 같은 건설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몇몇 기술자만 처벌받고 흐지부지 넘어가다 보니 이런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감리업체의 자격강화, 교육강화 등 유명무실한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감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전관예우의 카르텔을 반드시 없애도록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리 과정에서 LH와 같은 발주처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제언도 나온다. 독점적 지위가 이권 카르텔을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감리의 가장 큰 책임은 건축주인 발주자가 지는 것이고 이는 LH뿐 아니라 모든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건물을 잘못 지으면 건축주가 아니라 감리 업체가 더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가 부정적인 건설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H의 자체 감리도 외주화하고 부실 감리업체의 지속적인 낙찰에 대한 근절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성준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은 “건설 현장에서 이해 당사자의 개입을 줄이는 것이 부실시공을 예방하는 방법뿐이다”며 “건축주가 자신의 건물을 짓다 보면 너그럽게 기준을 해석하는 유혹을 받기 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감리 종사자를 양적으로 늘리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현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여러 동당 감리원 한 명이 배치되는 경우는 드문 게 현실이라고 한다. 이들이 동 사이를 오가면서 현장을 감리하기엔 물리적으로 한계가 존재한다. 이를 위해 감리원 배치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사 규모에 따라 최소한의 배치해야 하는 감리원을 수를 정하는 식이다.
이밖에 시공 현장에 전자기기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시가 건설현장 동영상 기록 관리를 추진하는 것이 사례다. 다만, 형식이 아니라 실질 차원에서 CCTV를 설치·운용하는 방안은 고민해볼 대목이다. 아울러 디지털 도면화를 통해 부실시공을 감지하는 것을 상용화할 수 있다.
박성준 부회장은 “현재 개발한 가상 건설 시스템만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상황이다”며 “스마트 건설로 가는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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