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너 죽어라’ 비판과 ‘너 잘돼라’ 비판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비판은 친목이나 사교가 아니다. 선의로 해석할 수 있는 말도 어떻게 해서건 악의적으로 해석해 상대를 최대한 부정적으로 보이게끔 몰아가는 게 비판의 기본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그런 비판이 창궐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그렇다. 정당 대변인들은 ‘악의적 해석’의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가급적 듣는 사람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장법과 같은 표현의 최대주의를 지향한다.
그런 비판을 가리켜 ‘너 죽어라’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타격을 입혀 망하기를 바라면서 하는 비판이다. 그 반대편에 ‘너 잘돼라’ 비판이 있다. 비판자의 입장에서 비판의 대상에게 어떤 식으로건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소통의 선의와 진정성을 갖고 하는 비판이다.
‘너 잘돼라’ 비판은 드물다. 대부분 ‘너 죽어라’ 비판이다 보니 비판을 구경만 하는 사람들조차 비판이라고 하면 ‘너 죽어라’ 비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대상을 속이 후련할 정도로 독하게 까는 비판이야말로 진정한 비판이요, 그게 바로 논객의 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의 수용자들이 시장을 지배하다 보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논객들도 그런 시장 논리에 충실한 쪽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이런 풍토에선 성찰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니 오류의 검증조차 불가능하다. ‘너 죽어라’ 비판의 논객들은 이성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머릿수로 싸운다. 자기 진영의 다수가 지금 당장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한다. 나중에 자신의 주장이 엉터리 오류였음이 밝혀져도 문제 될 게 전혀 없다. 어차피 ‘갑’은 독자였고, 논객은 그들의 흥을 돋우는 치어리더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단은 아무리 똑똑해도 그들의 사전에 성찰은 없는 법이다.
매일 진보언론 기사, 특히 칼럼을 읽으면서 ‘너 잘돼라’ 비판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곤 한다. 늘 대부분 대통령 윤석열과 윤 정권을 겨냥한 ‘너 죽어라’ 비판이기 때문에 ‘너 잘돼라’ 비판이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그런 비판을 찾기가 영 쉽지 않다. 나름 진정성을 갖고 윤 정권을 위해서 한 비판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의를 제기할 논객들이 많을 게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논객들이 자신의 진보적 관점을 절대시하면서 하는 비판이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보수정권에게 왜 진보적 가치를 무시하느냐고 비판하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은 올 2월 경향신문에 “‘20년짜리 진보정치’ 한 사이클이 끝났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그 칼럼에서 유권자들이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 13.1%(650만표)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는 걸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묵직한 혜안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마디로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후 한국 정치사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점진적 수용사(史)’에 다름 아니었다. (…)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1기 정부’였고,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2기 정부’였다. (…) ‘실언의 왕’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현재 진보 노선이 ‘과도함’을 말해준다. 좋은 것도 과하면 되돌아봐야 한다.”
윤 정권을 진보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그간의 진보정치에 대한 성찰도 곁들여가면서 비판하면 윤 정권도 배우는 게 있을 텐데, 그게 없다는 게 문제다. 대북정책에서부터 노동정책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권의 모든 정책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나?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게다. 문 정권 5년간, 아니 이후에라도 진보언론에서 문 정권에 대해 이의 제기를 했거나 비판적 주장을 한 칼럼이 몇개나 되는지 세보면 좋겠다.
진보언론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진보진영의 문제는 성역과 금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걸 떠받치는 정서는 예전 운동권에서 통용되던 “너 감옥 갔다 왔어?” 타령과 비슷하다. 각 분야에서 피눈물 나게 고생해온 진보의 용사들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는 건 좋지만, 이게 일종의 부족주의로 전락하면서 아예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말았다. 매우 거칠고 무모하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윤 정권이 그런 성역의 틈새를 파고들면서 성찰도 같이 하는 게 좋겠건만, “극우, 독재, 파시즘” 등의 거친 용어로 똑같이 공격하기에만 바쁘다. 진보언론에 ‘너 죽어라’보다는 ‘너 잘돼라’ 비판이 많아지기를 소망하는 건 불경스러운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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