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무량판 조사 혼란] "비용까지 부담" 건설사 불만···입주민은 주홍글씨 우려
시공사, 주거동 조사 및 비용 전가에 반발
거주민 "조사 알려지면 부실 낙인" 걱정
철근 누락 단지 위약금 면제·이사비 지원
이한준 사장 "손해배상은 법원 판단 따를 것"
정부가 다음달 말까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293곳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세부 시행 방식을 놓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시공사들은 지하 주차장만 문제가 됐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달리 민간 아파트는 입주민이 살고 있는 주거동까지 전수조사하고 비용까지 건설사에 부담시키겠다고 한 정부의 방침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6일 주택건설업계에 따르면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의 전수조사를 앞두고 국토교통부 주관 하에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시설안전협회 등 관련 협회들이 안전진단 범위나 방식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1차로 정해진 민간아파트 293곳에 대해 정부가 9월 말까지 조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히면서 빠른 시일 내 조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조사 대상과 기간 그리고 비용이다. 주택건설업계는 현재 입주민이 살고 있는 민간아파트 주거동의 세대 안으로 들어가 현장 조사를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 주거동에 적용한 무량판 구조는 벽식 또는 기둥식과 혼합된 구조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의 경우 외벽과 세대간 내력벽, 엘리베이터·계단이 있는 코어가 하중을 고루 분산하기 때문에 간혹 세대 내부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더라도 지하주차장처럼 슬래브만 노출되는 부분이 크지 않아 전단보강근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며 “주거동 내 무량판 구조를 권장해 온 정부가 갑자기 말을 바꿔 이를 안전 상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사 기간이 짧아 졸속 조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LH 아파트 91곳 조사도 두 달 넘게 걸렸는데 300곳의 단지를 두 달 만에 끝내겠다는 것은 결국 졸속 조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시간 상 샘플 조사를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럴 경우 ‘전수 조사’를 하겠다는 발표와도 맞지 않게 된다”고 꼬집었다.
비용 부담도 문제다. 정부는 시공사가 우선 부담하고 추후 설계, 감리 등 책임에 따라 구성권을 청구하는 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용 자체가 중소형 건설사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아파트가 속한 1종 시설물의 경우 안전점검 항목에 따라 정기안전점검, 정밀안전점검, 정밀안전진단 등 총 3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외관 확인 및 설계도에서 확인만으로 안전점검이 끝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정밀안전점검을 거쳐 내진 및 사용성 검사까지 총체적으로 살피는 정밀안전진단까지 거치게 될 경우 비용이 크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정밀안전진단의 경우 비용이 정기안전점검의 5~6배에 달한다. 고층, 대단지일 수록 이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세대 안은 사유공간이기 때문에 입주민 동의 없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무량판 구조 자체에 대한 국민 불안이 있는 만큼 되도록 많이 들여다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수조사 단지의 입주자 및 소유자들은 조사만 받아도 아파트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질까봐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비밀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택건설업계 관계자는 “세대 내부를 살펴보려면 입주민의 동의를 얻어서 살고 있는 집을 샘플로 제공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완전한 보안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점검을 위해서 피복(벽 바깥쪽) 훼손이 불가피한 만큼 원상복구 비용과 임시 거처 마련 등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곳의 LH 아파트 단지에서는 계약해지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LH에 따르면 철근 누락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표된 지난달 30일 이후 이달 2일까지 나흘간 15개 단지에서 12건의 계약 해지 신청이 있었다. 해지 신청이 접수된 곳은 모두 임대주택이다. 입주 예정자의 신청이 8건, 현재 거주 중인 입주자의 신청은 4건이다. LH 관계자는"철근 누락이 해지 신청 원인인지는 좀 더 파악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가 아닌 분양주택 입주예정자의 계약 해지 신청 건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철근 누락이 발견돼 보강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양주시 양주회천(A15), 파주운정3(A34) 단지를 찾아가 “건설 이권 카르텔을 제거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철저히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보강공사가 완료된 뒤에도 입주민이 원한다면 직접 고른 안전진단 업체에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비용도 전액 지원할 계획이다.
공사 현장에서 보강 공법을 검증한 한국콘크리트학회 소속 최경규 숭실대 건축학부 교수는 "무량판 구조만 25년간 연구해온 학자로서 이번 보강 공법은 안전성이 명확히 담보되는 공법"이라고 설명했다. 양주회천 A15블록은 지하주차장에 있는 150여 개 무량판 기둥 상부에 철판을 보강하고, 20여 개의 추가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보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철근 누락 문제가 제기된 LH 발주 아파트의 입주민 및 입주예정자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방안도 나왔다.
LH는 임대아파트에 대해선 계약 후 입주 여부와 상관없이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위약금을 면제하고, 이미 보증금을 납부한 세대에 대해선 이자를 포함해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 철근 누락 등 문제가 발생한 단지 입주자가 이사를 원하면 이사비 지원도 고려한다. 이주를 원할 경우 현재 거주지 주변에 빈 대체 임대주택을 찾아 우선 입주시켜주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공공분양의 경우 입주 전 단지는 계약 해제권을 부여한다. 단순히 무량판 구조라는 이유로 입주예정자가 해약을 요구한다면 해약을 받아들이고 이미 낸 계약금은 이자를 더해 돌려준다. 손해배상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한준 LH 사장은 "손해배상은 섣불리 LH가 했다간 배임 문제 소지가 있어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면 충분히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민간 아파트도 전수조사 결과 문제가 발생하면 LH 조처에 준해 보상하겠다"고 했다.
변수연 기자 diver@sedaily.com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한동훈 기자 hoon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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