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빌딩 '몰빵' 투자가 禍 키워···"증권사 신용도 급락 위험"
하나證 자산 가격 회복 자신하지만
대출금리 3%대로 두 배 이상 올라
현지 금융사 조기 상환 압박 우려도
미래에셋 등 해외 자산 가치도 폭락
우발 부채·대체 투자 부실 위험 고조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4~5년 전 앞다퉈 투자했던 해외 상업용 부동산이 무더기 손실로 돌아오고 있다. 고금리 기조에 대출금의 금리 부담이 커지고 코로나19 시절 재택 근무가 일상화 하면서 미국과 유럽 도심의 오피스 빌딩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이 금리 상승과 코로나19 팬데믹 등 외부 요인이 크지만 투자 위험을 충분히 분산하지 않고, 고수익에 치우친 금융회사들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캡스톤 자산운용의 ‘캡스톤EU일반사모투자신탁12호(적격)’와 ‘캡스톤EU일반사모투자신탁13호(전문)’는 주요 투자 대상인 독일 ‘더스퀘어’ 빌딩의 자산 가치가 급락해 2020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펀드는 당초 하나증권이 지분 투자액을 국내 주요 공제회와 연기금을 대상으로 셀다운(인수 후 재매각)하려 조성했지만 투자자 모집에 실패, 직접 투입한 자기자본 2700억 원에 대한 손실 부담을 떠안게 됐다.
더스퀘어는 프랑크푸르트 고속철도역 위에 지은 14만 ㎡ 규모의 초대형 복합 건물로 2019년 하나증권이 인수할 당시만 해도 유동 인구가 많고 안정적 임대 수익이 기대됐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역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터미널에 고속도로 3개와 직접 연결돼 있다. 또 프랑스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쉐린과 다국적 회계·컨설팅 기업 KPMG,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 등 글로벌 기업 다수가 입주해 있었다.
그러나 유럽 부동산 경기 침체로 더스퀘어의 자산가치는 4년 만에 급락해 1조 원가량 투자한 하나증권은 적잖은 손실을 입게 됐다. 지난달 블룸버그통신은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연구원들을 인용해 더스퀘어의 자산 가치가 5억 7000만 유로(약 8112억 원)에 그칠 것으로 보도했다. 이는 하나증권이 사들인 가격보다 38%가량 떨어진 것이다.
2019년 빌딩 인수 당시보다 크게 오른 대출 금리도 부담이다. 독일의 20년 만기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는 2019년 1%대 중반에서 최근 3%대까지 두 배 넘게 올랐다. 건물 가치가 하락해 담보물에 대한 대출금 비중이 커져 현지 금융회사가 조기 대출 상환을 압박할 수도 있다. 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내년 11월 전까지 건물 시세가 회복되지 않으면 하나증권은 1000억 원 이상 손실을 보게 된다.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들은 하나증권이 건물 신탁 만기일인 2026년 말 대출금을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 투자 손실은 수천 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봤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독일에 거점을 둔 기업의 재택 근무가 확산돼 부동산 가치 하락의 원인인 높은 공실률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더스퀘어의 공실률은 2019년 2%에서 지난해 말 16%로 치솟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여행과 해외 출장의 빈도가 줄면서 더스퀘어에 입주해 있던 수백 명의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 직원이 건물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핵심 임차인인 KPMG가 다음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S&P 보고서에 따르면 더스퀘어는 상업용 사무실이 전체 자산 가치의 62%를 차지해 사무실 공간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면 임대 수익은 물론 건물 가치에 타격이 크다. 피치 역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가상 회의가 대면 회의를 대체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유럽 기업들의 업무 출장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더스퀘어 자산 가치에 내재된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하나증권은 더스퀘어의 위치가 워낙 뛰어나 자산 가격이 내년이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현지 선순위 대출 기관이 지난 연말 평가한 더 스퀘어의 가치는 1조 2000억 원으로 매입가 대비 약 8% 하락했다” 면서 “최근 힐튼호텔의 객실 점유율이 높아져 내년이면 건물 가치가 매입가를 초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관측 속에 국내 금융 투자업계가 저금리 속에 유행처럼 사들인 해외 부동산에 대한 부실 경고음은 한층 커지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미래에셋증권(006800)), 독일 트리아논빌딩(이지스자산운용), 벨기에 투아종도르빌딩(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등의 자산 가치가 폭락해 이들 투자사의 손실 위험은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이 투자한 미국 워싱턴의 1750K·1801K 건물은 재택 근무 증가에 따른 공실률 상승으로 임대 수익이 크게 줄기도 했다. 영국의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인 ‘MGT티사이드’에 약 3800억 원을 투자한 NH생명·흥국화재(000540) 등 국내 보험사들도 30% 이상 원금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해외 자산 운용사들이 장기 분산 투자 전략을 취하는 것과 달리 국내 증권사들이 단기 차익을 노리고 해외 빌딩 일부에만 투자를 집중한 것이 부실 위험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26곳이 보유한 해외 부동산 투자 자산은 총 15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대형 증권사의 자기자본 중 24%가 해외 부동산과 부동산 담보 대출, 우발 부채로 구성돼 있다. 한신평은 “하반기 증권사들의 우발 부채와 해외 대체투자 부실 위험에 따라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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