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 몇가지 제언

2023. 8.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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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후 이행은 촉박, 1년 미루자
제도안착위해 3년간 책임 감경
'모든 기업'은 과잉, 할 기업만
미국 눈치보지말고 선도적으로

6월 26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7월 31일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오는 10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차례로 기후 관련 리스크 중심 지속가능성 보고기준을 확정한다. 8월 2일 국제감사인증기준위원회(IAASB)는 미국, 유럽 및 기타 권역의 다양한 지속가능성 정보를 통일적으로 검증할 새 국제기준(ISSA 5000)의 초안을 발표했다. 지속가능성 정보 제공은 도도한 세계적 흐름이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도 3분기 중 이행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의 경우 1단계로 2024년 정보를 2025년에 거래소 공시하고, 2단계로 2027년부터 법정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2021년부터 국제적 공조-정합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개발해 온 정부는 기업의 수용가능성 반발로 고민이 깊을 것이다. 기준 제정과 관련해 기업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한 필자가 정책을 결정하시는 분들에게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우선 시간이다. 이행계획을 2026년으로 1년 미루는 것을 고려해보자. 현재 100개가 넘는 회사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자발적으로 발간한다. 하지만 자료 수집 및 내부통제와 관련된 시스템이 완비되어 법적 책임을 고려한 숫자를 보고하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 시스템 구축에 최소 9개월이 소요된다. 연말까지 겨우 5개월이 남았다. 2024년 정보의 2025년 보고는 대부분의 기업에 현실적으로 무리다.

둘째, 유인이다. 제도의 초기 안착을 위해 공시의 법적 책임을 3년간 감경하자. 또한 연결기준 공시, 간접적 탄소배출(scope 3) 측정 등 기술적 난제에 대해 적용을 3년간 유예하자. 기업은 보고 오류에 따른 법적 책임에 민감하다. 무조건 미루고 싶다.

하지만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는 실행하며 배우는 것(learning by doing)이다. 오랜 준비가 오류를 줄이지 않는다. 더해서 고용노동부,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별도 요구하는 각종 관련 공시도 범정부 차원 일원화로 기업부담 완화 유인책을 주어야 한다.

셋째, 범위다. 예상안에 따르면 2032년 대한민국 대부분의 상장기업은 법적 의무공시 대상이다. 세계적인 추세라지만, 모든 기업이 의무공시 대상일 필요가 있을까?

국제가치사슬에 편입되고, 탄소배출이 중요하며, 글로벌 투자 관점에서 지속가능성 보고가 꼭 필요한 기업들만 제대로 하자. 완전 도입이라는 명분에 치우쳐 모든 기업에 국제기준을 일괄 적용한 과거의 실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수용 가능성이 낮은 기업들의 반발로 기준 자체가 간소화, 한국화, 형해화되어 국제적 불신을 샀다. 최근의 보험회계기준서(IFRS 17)가 한 예다. 꼭 해야 할 기업만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선택에 맡겨 보자.

넷째, 발표 시기다. 정부안은 9월 말 이전 발표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10월 발표, 이에 따른 일본의 입장을 지켜본 후 천천히 결정하자고 한다. 일리 있다. 그러나 정책은 무조건 미국바라기인 일본이나, 자국의 이해관계와 독자성이 최우선인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지속가능성기준 천하가 유럽, 미국, 기타 국가로 삼분된 현실에서 아주 많은 나라들은 지금 한국의 이행계획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우리가 삼분된 지속가능성 세계의 기저인 국제지속가능성보고기준 제개정에 주도적 역할을 해 국익을 관철시키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로 행동하면 된다. 철처하게 계산하되 독자적으로 행동해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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