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민주주의 연구해 세계적 학술상 받았죠"
민주주의 최우수 저서에 주는
전미정치학회 로버트달상 수상
韓 민주주의 발전 기여한
민족주의 순기능에 주목
금모으기 등 높은 시민의식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 이끌어
"외환위기 당시 온 국민이 나라를 위해 금붙이를 내어놓으려 추운 겨울에 길게 줄지어 섰던 장면이 어린 시절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면서, 이 같은 강력한 민족주의(nationalism)가 시민의식(civic duty)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해 정치학계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학술상을 받은 한인 학자가 있다. 연구 저서 'Narratives of Civic Duty: How National Stories Shape Democracy in Asia'로 지난 6월 전미정치학회(APSA)로부터 로버트 달 상(Robert A. Dahl Award) 수상자로 선정된 허아람 터프츠대학교 교수(39·사진)의 이야기다. 허 교수는 미국 최초 의 외교학 대학원인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김구 석좌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로버트 달 상은 테뉴어(종신재직권)를 받지 않은 젊은 학자 중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뛰어난 저서를 쓴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동아시아 지역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로 로버트 달 상을 수상한 학자는 허 교수가 처음이다. 한인 학자가 최우수 저서 선정으로 전미정치학회 시상식에 오른 것은 1974년 우드로 윌슨 재단 상(Woodrow Wilson Foundation Award)을 받은 이정식 교수 이후 49년 만이다.
'Narratives of Civic Duty'는 강력한 민족주의가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 온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학계의 기존 통념은 지나친 민족주의는 파시즘을 유발하고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로버트 달 상 위원회는 허 교수의 연구에 대해 "풍성하고 창의적인 이론과 시민 인터뷰, 설문조사, 실험을 포함한 실증적 연구와 다양한 분석 방법으로 비교정치학 분야에 인상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이 나라가 나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생존과 번영을 나와 함께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민족서사(national narrative)를 가질 때 국민들이 납세, 병역, 정치 참여 등에서 책임감을 느끼는 시민의식이 고양되고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연구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역시 금 모으기 운동이나 충실한 병역 이행 문화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높은 시민의식에 힘입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학에 있는 허 교수가 학계의 주요 관심 분야가 아닌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것은 모국인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근무한 부친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차관(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따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허 교수는 원래는 기자가 돼 한국에 대한 올바른 사실을 세계에 전달하고 싶었으나 진로를 바꿔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은 뒤(우등 졸업) 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던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한국의 정치 현실을 알리고 싶다면 비교정치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지도교수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경제위기 등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마다 공직에서 몸 바쳐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어렵게 얻어진 것인지 실감하며 자랐다"며 "앞으로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게 연구를 통해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민족주의와 시민의식에 대한 두 번째 저서 'The Stories We Tell: Nation-Building in an Era of Migration'(가제)을 준비 중이다. 저서는 이민 시대를 맞은 한국이 이민자를 민주시민으로 포용하기 위해 어떤 민족서사를 가져야 할지를 다룬다. 허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한국은 이민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며 "국가와 국민을 연결하는 민족서사가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무너진 상황에서 이민자들이 한국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새로운 민족서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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