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오장칠부와 사유

2023. 8. 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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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간의 행태는 바뀌었다. 무언가 생각이 안 나면 그것이 생각날 때까지 머릿속을 헤집었던 기억들이 있지만 지금은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에 이내 물어보곤 한다. 생각날 때까지 생각을 더듬어야만 하는 필요가 소멸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용은 무한에 가까운 정보의 접근, 생산성 향상과 편리한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순기능이 있지만 몇몇 문제점 또한 야기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2021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음성통화 제외)은 일평균 2시간3분으로 나타났으며 20대 3시간12분, 10대 2시간50분, 30대는 2시간37분을 사용한 반면 60대는 58분, 70세 이상은 34분을 이용할 정도로 세대 간 격차가 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목에 통증이 생기고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 육체적 문제라면, 세대 간 정보 섭취량 차이 및 세대 간 갈등으로의 비화 등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정신적 문제이다.

디지털전환으로 특징짓는 현상 중 하나는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일 것이다. 다산의 시대를 지나 혼자인 자녀 세대에서 개인적 성향이 강한데 초개인화는 그러한 성향을 매우 빠르게 촉진시키고 있다. 2010년대 초반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이후 최근은 혼코노, 혼맥, 혼콘 등 혼자 하는 생활과 행위가 다양하게 생겨 2020년에는 약 65개에 달한다고 한다. 혼자 밥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러한 '혼○' 문화가 확산되는 이유가 바로 '스마트폰'의 보급이며 이제 젊은 세대의 또 하나의 장기가 된 것이다. 한의학에서 인간의 내장 전체를 통틀어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인 오장육부에 스마트폰을 더해 '오장칠부'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이다.

밥을 먹으면서 다른 행동을 하면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딴짓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 사용의 격차는 세대 간의 디지털 디바이드를 야기하고 있으며, 실버 세대는 때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사회·경제·문화적 불평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디지털화된 행정기관에 방문해 민원 업무를 보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밖에 정보의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 없는 무조건적인 수용 등에 따라 소위 말하는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고, 대학생들의 과제도 인터넷에 제공되어 있는 잘못된 사실을 참고하여 작성된 것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사유의 상실을 여러 군데서 느끼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하였다. 인간이란 사유하는 능력 외에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사유라는 것이다. 챗GPT의 영향으로 더욱더 사유하기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사유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의 강화가 눈에 띈다. 오장칠부는 인정하되 사유의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디지털전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사유할 수 있도록 문화와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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