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 "중증 정신질환 치료 국가가 책임져야"…사법입원제 검토(종합)
보호의무자 입원제도 폐지…"환자에 대한 편견 해소도 필요"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최근 일련의 '묻지마 흉악범죄' 범인들의 일부가 과거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정신질환자 치료와 관리체계 보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를 가족에게 떠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데, 정부도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을 사법기관이 정하는 '사법입원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조장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균형 있는 시각을 위해 머리를 맞댈 때라는 의견도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6일 성명을 내고 "서현역 사고와 정신질환 간 연관성이 파악될 때까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의 피해망상이 원인으로 발표됐다"고 전했다.
학회는 "더 이상 국민 누구도 제대로 구할 수 없다"며 "국가가 책임지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를 적극 논의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6년 본인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 위헌으로 판결되고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시행된 뒤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졌다.
강제로 입원시키려면 우리나라에서는 2명 이상의 보호자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가족인 보호의무자가 1차 책임자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강제 입원)을 판사가 결정하며 영국과 호주도 정신건강심판원이 정한다.
이에 대해 학회는 "전문가 평가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외래 치료지원제를 통해 조기 치료를 권장하면서 입원을 최소화해 인권과 안전, 치료를 함께 고려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자·타해위험이 커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송이 이뤄지지 못하며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뿐이라고 학회는 지적했다.
아울러 '폭력·난동'에 대해 불안과 공포가 퍼지고 관심이 집중돼, 모방범죄가 확산할 수 있다며 적극적 사후 예방을 위해 법정신의학과 치료감호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른 국가들은 범죄 관련 일부 중증 정신질환을 일반 정신 의료체계와 별도로 '치료감호법' 등의 형사법 체계를 통해 사회 안전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검찰의 치료 감호 청구가 2021년 기준 78건 청구에 그친다.
학회는 "폭력성 높은 일부 질환은 보건복지부나 의료시스템이 아니라 법무부가 관장하는 법정신의학 시스템에서 적극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며 "국내 전문인력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한 학회는 정신응급과 급성기치료를 '필수의료'로 지원할 것과 지역사회 치료와 재활에 적극적인 투자도 요구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정신병원 병상 간 거리를 늘리는 등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과 저수가 등으로 국내 정신병원 병상은 2017년 6만7000병상에서 2023년 5만3000병상으로 급감한 바 있다.
학회는 사회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조현병'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적절하게 치료, 재활하면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병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조현병학회도 성명을 내 "조현병 치료, 관리, 연구에 투입되는 재정은 다른 질병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현병학회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증상으로 범죄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현병과 범죄 간 보도가 이어지면 편견을 조장하고 치료를 더 기피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도 "정신과적 진단이 곧 범죄 원인인 것처럼 암시돼서는 안 된다. 진단이력이 확인됐더라도 사건과 정신질환의 정확한 인과관계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국내 정신건강정책 자문 및 지원을 하는 이들은 "범죄 행위에 대한 분노는 정당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환자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국민 불안을 최소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정신질환 관련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복지부와 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동 TF(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외래치료 지원 등 치료 실효성을 제고할 만한 개선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법무부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 등 사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경정신의학회는 "환영하며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면서 "인권과 치료가 동시에 보장될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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