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강제입원, 평생 구금이 흉기 난동 범죄 예방책?···전문가들 “실효성 낮다”
서울 신림동 길거리, 경기 분당 서현역 쇼핑몰 등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정부가 대응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법무부는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과 보건복지부와 함께 당사자·보호자 동의 없이 환자를 강제입원시키는 ‘사법입원제’ 등 도입을 추친하겠다고 했다. 경찰청은 사상 처음으로 특별치안활동을 펴고 있다. 흉기소지 의심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급박할 때는 경고 절차를 생략하고 총기를 사용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이 실효성이 적을 뿐더러 인권침해나 공권력 오·남용의 소지도 크다고 지적한다.
정신질환자 혐오 부추기는 ‘사법입원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일 통화에서 “법무부가 대응책으로 사법입원제도를 거론하는 것은 ‘정신 상태가 나쁘면 비슷한 범죄를 일으킨다’는 전제를 두고 있는 것”이라며 “(정신질환자를) 집단혐오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이미 강제 입원 대상이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입원해 치료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법입원제를 한다고 과연 이 사태가 없어질지 의문”이라며 “형사·사법 권력을 동원해 정신질환자를 처벌·감금하면 인권침해, 교화 가능성 차단 등 부작용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사법입원제는 “흉기난동 문제의 본질과 멀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신질환 기록이 없는 신림동 사건 피의자는 아예 사법 입원 대상도 아니고, 서현역 사건 용의자의 경우에도 피의자가 ‘사회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전문의와 법원이 사법입원 대상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이 일어난 2019년에도 사법입원제 도입을 추진하려다 흐지부지됐다. 정신장애인단체 등이 “강제입원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한다”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입장문을 통해 “사건과 정신질환의 정확한 인과관계는 파악하기 어렵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편견, 그로 인한 혐오는 결국 치료와 회복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땜질식’ 처방”
법무부는 이상동기, 흉기난동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가석방이 적용되지 않는 무기징역형을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일어난 이상동기 범행은 “자신이 처벌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행동한 것”이라고 말한다. 형량을 강화한다고 예방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최근 흉기난동 사건은 가해자가 사회에서 좌절과 실패를 겪고 분노, 불만이 쌓인 데다 외부인과 사회적인 유대의 끈이 없어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낄 때 나오는 행동”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자제력이 없는 가해자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두려워해 범행을 철회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상희 교수는 “최근 일어난 흉악범죄자들은 경찰에 잡히든 말든 자기가 속에 품고 있던 분노를 알리려는 목적이 더 크다”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은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 법무부가 시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한 대응책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형벌 강화와 범죄억지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6년 비교형사법연구지에 실린 ‘형벌 중형화에 관한 비판적 검토’ 논문에서 연구진은 “(형벌의 강화 현상은) 대중의 여론에 떠밀려 정치인들이 곧바로 반응하는 ‘형벌 포퓰리즘’의 모습으로 이뤄졌다”며 “2010년 이후 살인, 강도, 성범죄 등에서 양형기준에 따른 평균 형량이 증가했지만, 2014년 강력범죄는 2005년 대비 166.2%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불심검문·총기 사용 ‘엄포’에 과도한 공권력 투입 우려
경찰의 특별치안활동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프리랜서 성모씨(28)는 “‘수상한 사람’이나 ‘총기 사용 경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의문이고, 자칫 권한이 남용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대학생 윤모씨(20)는 “갑자기 검문을 당하면 불쾌할 것 같고, 당황한 모습이 경찰 눈에 ‘수상한 사람’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영장 없는 불시 검문·검색을 못 하게 하려고 수십년간 수많은 사람이 피·땀 흘리며 싸워 쟁취했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뒤집는다” “검문,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음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검문 등 방식으로 특정한 나쁜 사람들을 찾아내거나 그 사람들을 사회와 격리하면 안정감을 주리라는 것은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며 “지금의 상황은 일종의 ‘현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정부 대책의 면면을 보면 문제 상황을 ‘시민 대 시민’의 갈등으로 해석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상동기 흉악범죄를 ‘복지 영역’의 문제로도 인식해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교수는 “강력한 처벌정책으로 범죄억제력이 발동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해결책을 찾는 것은 편의주의적인 것 같다”며 “범정부적 차원에서 비슷한 종류의 범죄에 대한 데이터를 집계하고, 생애주기적 초기 개입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상희 교수는 “정부는 극단화한 계층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 내놓은 대책은 각자도생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며 “사회·정치·경제 등 다방면에서 장기적이고 거시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랑희 활동가는 “법 전문가 외에 정치·사회 영역의 전문가들을 통해 현상의 근본 원인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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