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감리 독점하는 ‘건축사’…이권 카르텔에 부실시공 늘어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사업장에서 발생한 철근누락 사태의 대책 중 하나로 감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감독하는 별도 기구의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의 감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전문성이 없는 건축사들이 설계부터 감리까지 계약을 독점해온 업계의 관행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옥상옥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6일 국토교통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감리를 감시하는 기구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H가 용역을 준 현장 감리의 업무를 중복 점검하는 제3의 감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제3의 감리 소속은 중앙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 둘 중 하나로 정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같은 방안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감리 업무는 건축법 4조에 따라 건축사가 독점한다. 문제는 국내 감리 역할 자체가 전반적 컨설팅을 제공하는 건설사업관리(CM)과는 달리 도면대로 시공하는지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 역할을 확대 하더라도 건축사들은 근본적으로 구조 설계 전문성이 떨어져 구조계산, 구조해석, 도면 그리기 등 구조와 관련된 전 과정에서 생길 오류를 잡아내기 어렵다.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사업장에서 터진 철근누락 사태 역시 구조 기술에 전문성이 없는 건축사들이 설계부터 감리까지 계약 주체로 나선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구조기술사라는 전문영역이 있지만 이들은 발주처를 일대일로 면담할 기회조차 없어 구조계산 단가를 현실화하지도 못하고, 책임 소지도 불분명한 상태로 건축사 그늘 아래 존재하고 있다.
설계도, 감리도 건축사가 싹쓸이
건축사들의 문제는 이번에 국토부가 발표한 철근누락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5건의 철근누락 아파트 중 10건은 모두 설계상에서 생긴 오류 때문이었다. A건축사는 “감리의 감리 자리가 생기면 결국 이득을 보는 건 기존의 건축사들이다. 돈 버는 시어머니만 계속 늘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현재 LH 업무에 파견된 감리 B씨는 “현장과 동떨어지는 서류 작업 요구가 많고 안되는 일정을 밑어붙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에 실력있는 감리들이 수당을 10만원씩 올려도 LH현장은 오지 않으려고 한다”며 “감리의 감리가 또 생기면 안그래도 기피하는 LH사업을 더 피하게 될 이유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기술과 건축사 밑에서 독립시켜 경쟁 만들어야
무량판 전단보강근 부품화도 필요
감독을 더 둘 게 아니라 설계부터 각 분야 전문성을 높이고 책임을 분산하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건축 설계와 공사감리자 자격이 모두 건축사로 한정되어 있는 현행법을 고쳐 구조기술인력이 직접 발주처와 계약을 맺고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모든 계약의 주체가 건축사고, 이들이 구조계산과 도면 그리는 작업 등을 재하청 주는 구조여서 안전을 책임지는 구조 부문의 부실이 일어나기 쉽다. 구조기술 인력이 발주처를 일대일로 만나지 못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에 투입되는 단가는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한국건축기술사회는 전체 공사비에서 건축구조설계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0.1%에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구조물 핵심을 아는 대한민국 건축구조기술사가 1400명인데 무량판과 같은 고도 기술이 요구되는 구조물 건설에 제대로 투입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감리 때 건축구조기술사와 협력하는 범위를 확대하도록 주택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주택법상으로는 감리자가 건축구조기술사와 의무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경우를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무량판 구조에 필요한 전단보강근을 부품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A 건축사는 “이미 전단보강근은 특허로 부품화되어 있지만 파키스탄, 태국, 미얀마 등에서 온 외국인 인력이 직접 재래공법으로 만드는 게 더 싸게 먹혀서 현장에 도입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현장 업무가 많을 수록 부실 시공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품화 된 제품을 LH가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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