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대표 후보에 김영섭…‘재무통 출신’ 혁신 먹힐까
케이티(KT)가 잇단 후보자 사퇴로 지난 정기주총에서 새 대표이사를 정하지 못해 ‘5개월 경영 공백’이란 초유의 사태를 겪은 끝에 지난 4일 김영섭(64) 전 엘지씨엔에스(LG CNS)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자로 다시 선정했다. 8월 말로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승인을 받으면 2년6개월 임기의 케이티 새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게 되는데,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케이티 안팎에선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우선 대표이사 부재로 이뤄지지 못한 임직원 인사를 서둘러야 한다. 케이티는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도 아직 못한 상태다. 임기가 지난해 11월로 끝나는 것으로 돼 있던 임원들과 계열사 대표들의 계약기간이 이후 자동 연장돼왔고, 임직원 승진인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놀며 월급받는 임원(상무보급 이상)이 수백명에 이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주요 사업들이 지난해 예산과 일정에 따라 굴러왔고, 협력업체 수백여곳의 생사가 달린 정보통신공사 발주·계약, 신사업 투자 등도 사실상 멈춰있다.
케이티 안팎에선 김 후보자가 임직원 인사와 사업구조 개편 등을 추진하면서 이전 경영진 시절 부풀려진 ‘허위 실적’과 조직 등을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를 강도높게 진행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동안 케이티 내부에선 경영공백 과정에서 기존 경영진과 임원들이 새 대표이사한테 눈도장을 찍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놓은 허위 실적이 영업현장 곳곳에 쌓여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사업구조 조정 과정에서 전임 경영진이 앞세웠던 ‘디지코’(탈통신) 관련 신사업들이 전면 재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목욕을 철저히 해 묵은 더러운 것을 털어낸다’는 뜻의 빅배스는 기업 경영에서는 최고경영자 교체 때 숨겨진 손실과 잠재 부실 등을 이전 회계연도에 몰아 처리하는 관행을 뜻한다. 케이티에선 2014년 초 황창규 신임 회장이 취임 전 인수위 가동 때부터 대규모 빅배스를 추진한 전례가 있다. 당시 전임 이석채 회장 시절 외부에서 낙하산과 청탁 등을 통해 온 임원(‘올레 케이티’라고 불림)들이 한명 열외없이 정리됐다. 또한 유·무선 전산통합작업(BIT) 프로젝트 등 성과가 미미하거나 실패 가능성이 커보이는 사업들을 모두 정리해 전년도인 2013년 4분기의 손실로 처리했다. 이로 인해 케이티는 2013년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기준으로 1816억원의 손실을 냈다.
케이티 전직 임원은 “케이티에선 대표이사가 바뀔 때마다 전 경영진이 추진하던 주요 사업 관련 문서가 담긴 캐비닛을 통째로 갖다 버린다는 이야기까지 있다”며 “케이티 협력업체 쪽에서 보면, 공들여 준비·추진해온 사업이 한순간에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과도한 빅배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케이티 이사회가 김 후보자를 낙점한 배경을 두고 “외부 출신으로, 케이티 조직 내 기존 인사들과 인연이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지 않아 과감한 혁신을 이끌기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걸로 전해진다. 실제 김 후보자는 엘지그룹 회장실·구조조정본부에서 재무 일을 했고, 엘지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내는 등 ‘재무통’인데다가, 엘지씨엔에스 대표이사 시절에는 ‘선택과 집중’을 명분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회사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전력이 있다. 케이티 한 임원은 “벌써부터 임직원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 후보자의 디지털전환(DX) 전문가 경력을 들어, 인공지능(AI)·클라우드 등 일명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 관련 사업 추진에 다시 속도를 낼 거란 기대도 나온다. 윤종수 케이티 이사회 의장은 김 후보자를 고른 배경에 대해 “다년간 정보통신기업 대표이사로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 역량과 본질에 기반한 성장을 도모하고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의지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케이티 내부에선 ‘100년 본업’ 통신서비스 역량을 강화해 ‘대한민국 대표 통신사’ 자리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케이티 새노조는 성명을 내어 “민영화 이후 비용절감에만 치중하며 투자를 축소한 결과 아현국사 화재, 부산발 전국 통신 장애 등 크고 작은 통신서비스 장애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안정성을 위해 투자하고 통신 공공성에 앞장서는 등 그동안 ‘탈통신’ 경영 아래 취약해진 통신의 기본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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