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괴리된 세계 경제지표, 버블 재현 가능성에 긴장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자산시장을 보고 있으면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다우지수는 6년 만에 최장 랠리 기록을 경신하면서 2017년 2월 이후 가장 긴 상승세를 기록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3.6%, 근원인플레이션 역시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성장과 물가가 적당한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상태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주택시장 역시 지난 6월 전년 동월 대비 0.9%포인트 하락했지만 전월 대비로는 3.5%포인트 상승했다. 신축 주택을 제외한 기존 주택 가격의 중앙값은 41만2000달러로 조사됐는데, 이는 지난해 6월 조사 집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골드만삭스는 1년 이내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지난 6월 35%에서 25%로, 7월에는 다시 20%로 낮췄다.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1분기보다 상승한 2.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산시장, 실물경제와 달리 강세 보여
일본 증시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닛케이225 지수는 19.5% 상승하면서 30년 만에 전고점을 회복했다. 일본 도쿄 도심인 23구 지역의 상반기 신축 아파트는 사상 처음으로 1억 엔을 넘어선 1억2962만 엔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60.2% 상승했다. 도쿄 23구의 신축 주택 평균 분양가격이 1억 엔을 넘어선 것은 1973년 통계 작성 이래 최초다. 국내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상반기 코스피는 14.66% 올랐고 코스닥은 27.82% 상승했다. 주택시장 역시 서울 핵심 지역의 선호 아파트 단지들은 연초 저점 대비 수억원 이상 상승하면서 하락분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지난해 시작된 연방준비제도(FRB)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충격으로 인해 세계적인 경기 후퇴와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던 연초와 비교하면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인플레이션은 완화돼 가고 있으며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 등은 경기 침체 우려를 벗어던지고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미국 자산시장과 상품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승세는 거시지표를 들여다보고 있는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거시지표들은 상호 간에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이러한 관계는 장기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를 토대로 경기를 예측하고 정책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지표와 현실의 상황이 맞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준금리는 지난 10여 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장·단기 금리는 역전된 지 오래다. 역대 4번째 규모의 대규모 미국 은행의 부도 사태가 발생했으며, 글로벌 은행인 크레딧스위스의 몰락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신용경색과 자산시장 위축이 나타나야 하고 기업들의 대규모 부도가 발생해야 하지만 현재는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자산시장을 밀어올리는 모습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이상한 모습이 많다. 미국 내 기업 부도는 증가하고 있지만 회사채 가산금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미국 국채와 회사채 금리가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AA- 등급 회사채와 미국 3년물 국채 금리가 동일한 상황이다. 미국의 신용카드 대출금리는 20%를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미국 내 소비는 감소하고 있지 않다. 자동차 할부금리 역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동차 판매는 호조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의 GDP는 호황 수준을 보이지만 정작 국채총소득(GDI)과 연방정부 세수는 감소하고 있다. 생산은 호조를 보이지만 소득은 없다는 의미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소매판매지수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데 기업의 이익은 좋아지고 있으며, 연방정부의 세수는 전년 대비 7% 이상 감소하고 있다.
대서양 건너 유럽의 상황은 더욱 이상하다. 독일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38.8로 하락했는데 이는 2020년 5월 코로나19 사태로 충격을 겪을 때와 유사한 수준이다. 유럽 전체 제조업 PMI 역시 지난 3년래 제일 낮은 47.4를 기록하면서 경기 악화와 침체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유럽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럽의 실물경기가 좋지 않다면 유로화는 약세를 기록해야 하지만 유로화 가치는 무역가중지수를 고려하면 역대 최고 수준의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고용과 소비가 견조하게 나타나고 있는 미국 달러는 유로화에 약세를 기록하고 있다.
원자재와 달러의 관계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원자재 가격과 달러 가치는 반비례 관계를 형성해 왔다. 달러가 약세라면 원자재가 상승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달러와 원자재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노동시장의 경우 일반적으로 제조업 가동률이 저하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고용이 축소되고 실업이 증가해야 하지만 현재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영국, 우리나라 모두 실업자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수출의 경우 한국과 중국, 대만 모두 감소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의 소비는 감소하고 있지 않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은 미국의 소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이런 관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과거 버블 붕괴 및 침체 상황과 유사
경제지표와 현실의 괴리는 가끔 발생한다. 많은 경우 이럴 때 사람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조만간 양쪽이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하지만 종종 양쪽의 괴리가 지속되면 '이번에는 다르다' 또는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는 평가와 주장이 등장하곤 했다. 최근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경기 침체와 자산시장 하락을 예상했던 많은 경제 및 투자 전문가들은 점차 관점을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약세론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관점이 변화했음을 천명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종전의 거시적 지표가 이제는 효용을 다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0년 초반과 2007년 말에 지금과 유사하게 자산시장은 실물경제와 달리 장밋빛 전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잘 알려진 것처럼 버블 붕괴와 침체였다. 지금의 상황이 버블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지표와 현실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도 가계부채는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 3년간 가계의 초과저축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산하고 있다. 어느 쪽 지표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현실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정반대로 나올 수밖에 없고, 경제 당국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상이 진짜로 달라졌는지, 이번에도 결과는 같다는 결말로 이어질지 누구도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럴 때일수록 리스크 관리를 계속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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