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꼭 마셔봐야 할 술이라도…마시지 말고 뱉어야 할 때 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8. 6. 15: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 10] 와인 시음하는 법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으로 꼽히는 클로 드 타르 그랑크뤼. 뉴욕에서 열린 라 폴레 와인 테이스팅 행사에 나왔다.
얼마 전 김앤장의 고창현 변호사를 사석에서 만났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버건디) 지역의 포도밭들을 옆 동네 이웃처럼 상세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또 현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지역 일간지를 받아 보는 것처럼 훤히 꿰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저는 와인을 공부하기 보다는 마시는 데 집중하다 보니 프랑스 부르고뉴의 그랑크뤼 포도밭 이름을 외우는 것도 버거워하는 편인데요. ‘챗GPT시대 이런 것까지 외워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 변호사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렇게 ‘알고 마시면 와인이 더 맛있겠다’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라벨’ 모르고 마셨을 때 더 ‘쫄깃’
반면 모르고 마실 때 더 쫄깃하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입니다. 와인의 라벨을 가린 채 와인의 ‘맛’만으로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오늘은 와인을 평가하기 위한 시음법에 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

일단 와인을 마시는 것과 시음(테이스팅·tasting) 하는 것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테이스팅 때는 와인을 마시지 않고 입안에서 오물거리다가 뱉어낸다는 겁니다. 대규모 시음회장에는 ‘타구통’이라고 해서 검은색 통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 통에 시음한 와인을 버립니다. 물론 주량이 아주 ‘센’ 경우 와인을 마실 수도 있지만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마시고 평가해야 하니 취하지 않도록 요령껏 뱉어내야 합니다.

제가 참석했던 와인 테이스팅 행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022년 3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렸던 라 폴레(La Paulee)의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와 ‘버티칼 테이스팅’ 행사입니다. 라 폴레는 부르고뉴 와인행사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테이스팅 행사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그랜드 테이스팅에는 40개 와이너리가 참가했고 각 와이너리별로 4종류의 와인이 나왔습니다. 160종의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면 마치 부르고뉴 포도밭 한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2018년, 2019년 그랑크뤼와 프리미에크뤼 와인들도 잔뜩 나와서 모처럼 혀가 호강을 했습니다. 그랜드 테이스팅이 3월11일 열리고 바로 그 다음날 12일에 ‘버티칼 테이스팅’ 행사가 열렸습니다. 버티칼 테이스팅은 같은 와인을 빈티지(생산년도)별로 다르게 해서 마셔보는 방법입니다. 37개 와이너리가 참가했고 각 와이너리별로 3개 와인을 출품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와인들을 이틀 연이어 마시려면 삼키지 않고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도멘 유제니의 그랑 에세조 그랑 크뤼.
WSET 디플로마 와인시음 기법
시음회 때 와인을 평가하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렸던 ‘WSET 레벨4 디플로마 방식의 체계적 시음기법’ 강의 내용도 일부 참조했습니다.

먼저 눈으로 평가합니다. 와인의 색을 보는 건데요. 화이트 와인은 숙성이 오래될 수록 색이 오렌지색으로 짙어집니다. 반면 레드 와인은 숙성이 오래될수록 붉은색이 옅어집니다. 오래된 올드 빈티지인지, 아니면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영 빈티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색을 보면 포도 품종에 대한 힌트도 찾을 수 있습니다. 레드 와인 중에 피노 누아, 시라,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순으로 색이 짙어집니다.

다음은 향으로 평가합니다. 처음에는 잔을 흔들지 않고 와인 향을 맡고, 다음에는 잔을 흔들어 다시 향을 맡아 봅니다. 이때 잔을 흔드는 것을 스월링(Swirling)이라고 합니다. ‘아로마키트’라고 해서 UC데이비스 등에서 원판 모양으로 향을 구분해 놓은 것이 있는데 상당수의 ‘향’이 한국에서는 맡아보지도 못한 것들이라 향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양 배’는 한국에선 보기가 힘듭니다. 한국산 배는 둥글둥글한 반면 서양 배는 표주박 모양으로 생겨서 맛도 향도 한국 배랑 조금 다릅니다.

포도 품종별로도 향이 다릅니다. 피노 누아, 산지오베제, 그르나슈, 네비올로는 붉은 과일 향이, 카베르네 소비뇽, 시라(쉬라즈), 말벡, 프티 시라 등은 검은 과일 향이 납니다. 샤르도네는 숙성될수록 파인애플 향이, 소비뇽 블랑은 복숭아 향이 짙어집니다.

시음회 평가지에는 1차향, 2차향, 3차향을 적으라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차향(Primary Aromas)은 포도 품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 2차향(Secondary Aromas)은 오크 숙성 처럼 알코올 발효후 양조과정에서 나는 향, 마지막으로 3차향(Tertiary Aromas)은 숙성과정에서 산화로 발생하는 향을 의미합니다.

어금니 쪽 잇몸으로 맛을 봐야
다음은 입으로 평가합니다.

저는 어금니 쪽 잇몸으로 맛을 느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특히 숙성된 와인, 또는 숙성 잠재력이 있는 와인을 평가하는 데는 혀가 아닌 잇몸까지 충분히 적셔 맛을 봐야 합니다. 숙성잠재력이 있는 와인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맛있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와인을 의미합니다. 통상 프랑스 보르도 와인은 40~50년, 부르고뉴 와인은 30~40년 까지 버틸수 있다고 봅니다. 그 사이 어느시점에 와인의 맛이 ‘절정’에 오를지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와인이라도 포도를 수확한 년도, 보관상태 등 여러가지 변수에 따라 숙성잠재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음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와인 잔입니다. 깨끗하지 않은 와인 잔은 와인의 맛을 왜곡시킵니다. 와인 잔은 씻기가 까다로운 편입니다. 특히 고가의 와인 잔은 세척하다 쉽게 깨집니다. 시음 전 와인 잔의 청결상태를 코로, 눈으로 확인해보는 게 좋습니다.

시음 와인 마다 매번 잔을 바꾸기도 하지만 물로 헹궈내거나 마실 와인으로 한 번 씻어내고 마시기도 합니다. 입안도 헹궈내야 합니다.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마시다 보면 입안에 먼저 마신 와인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입안도 물을 마시거나 식빵이나 과자를 먹어 와인을 씻어 냅니다.

국내 대표 소믈리에와 함께 시음, 관심있으신가요?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주재범 정식당 소믈리에, 미셰린 3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의 김진범 소믈리에 등과 함께 화이트와인 품종인 ‘샤르도네’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름철을 맞아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을 추천하기 위해 각 수입사에서 출품한 30종의 와인을 평가하는 자리였습니다. 심사위원으로는 주재범 소믈리에, 김진범 소믈리에, 고동연 솔밤 소믈리에, 이정인 전 주옥 소믈리에, 박준영 페리지 소믈리에, 배윤하 까사델비노 소믈리에, 이동훈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대표가 참여했습니다. 저도 심사위원으로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종합적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결과를 다음주 김기정의 ‘와인 이야기’에서 공개하겠습니다. 참고로 ‘와인 이야기’는 매일경제신문 지면에 실리는 기사형식 글이고, ‘와인 클럽’은 매일경제신문 온라인 회원을 위한 컨텐츠 입니다. 와인 클럽은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글을 작성하는 대신 독자들과 소통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독자분들 중에도 와인 테이스팅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을지 궁금해 지네요. 테이스팅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면 이메일이나 댓글을 남겨주세요. 매일경제신문이 두 달에 한 번씩 포도 품종을 바꿔가며 국내 대표 소믈리에들과 함께 와인을 평가하는 시음회를 추진하고 있는데 매경 독자분을 초대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겠습니다.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아시아와인트로피 2022년 심사위원, 한국와인대상 2022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그랑크뤼 와인 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의 다양한 와인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