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나온 이육사 시, 그간 잘못 해석됐다?…“집안 어른 기린 작품”
항일 민족 시인 이육사(1904~1944)의 시 ‘교목’(喬木)은 육사 자신의 굳건한 저항 의지를 노래한 것이라는 기존의 해석과 달리 육사의 집안 어른인 향산 이만도(1842~1910)의 순국을 기린 작품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국사학자인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가 이달 중순에 발행되는 ‘민족문학사연구’ 제82호에 실은 논문 ‘이육사의 “알뜰히 못 잊을 그님”: ‘교목’ ‘호수’와 밀양 완재정’에서 그런 주장을 내놓았다. 도 교수는 ‘청포도’ ‘절정’ ‘광야’ 등 육사의 대표시를 그의 삶과 관련해 새롭게 해석한 결과를 담은 연구서 ‘강철로 된 무지개: 다시 읽는 이육사’(창비, 2017)를 내는 등 육사의 삶과 시를 천착해 왔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어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SS에게” (교목’ 전문)
1940년작인 ‘교목’은 육사의 시 가운데 그리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2007년 대입 수능시험 문제(언어영역 홀수형, 28~30문항)로 출제되고 난 뒤 수능용 해설서나 교육용 유튜브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대부분의 해설에서는 이 작품이 육사 자신의 강인한 투쟁 의지와 삶의 태도를 담았다고 풀이하지만 도 교수는 이 시가 삶이 아닌 죽음을, 그것도 육사 자신이 아닌 집안 어른 이만도의 죽음을 기린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육사의 또 다른 작품 ‘호수’가 이 작품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두 작품 모두 경남 밀양의 호수 위양지에 있는 정자 완재정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판단이 그 주장의 배경이다.
완재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왜군에 붙잡혀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온 학산 권삼변(1577~1645)의 뜻을 좇아 1900년 후손들이 세운 정자다. 이 정자의 편액 ‘완재정기’를 쓴 향산 이만도는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자 24일간 곡기를 끊은 끝에 순국했다. 육사의 할아버지인 이중직은 단식 중인 집안 어른 향산을 위문했으며 서거 뒤에는 “죽은 자(향산)는 백년천년 빛나리”라는 만사를 바치기도 했다. 향산의 생가가 있는 경북 안동 하계마을에서 당재라는 작은 고개만 넘으면 바로 육사의 생가가 있는 원촌이다. 정자 이름 ‘완재’(宛在)는 중국 고전 ‘시경’의 ‘겸가’(蒹葭)에 나오는 구절인데, 육사는 ‘교목’을 발표한 1년 뒤쯤 전체 3장인 ‘겸가’의 제1장을 직접 번역한 바 있다.
“갈대 우거진 가을 물가에/ 찬 이슬 맺어 무서리 치도다/ 알뜰히 못 잊을 그님이시고/ 이 강 저 한쪽 번연히 계시련만./ 물 따라 찾아 오르려 하면/ 길은 아득해 멀기도 멀세라./ 물 따라 찾아 내리자 하면/그 얼굴 그냥 물속에 보여라.” (‘겸가’ 제1장, 이육사 번역)
도진순 교수는 육사가 번역한 ‘겸가’에 나오는 “알뜰히 못 잊을 그님”의 이미지가 ‘교목’ 및 ‘호수’와 상당히 겹친다고 본다. ‘교목’보다 1년 앞선 1939년에 발표된 ‘호수’는 ‘교목’과 마찬가지로 전체 3연으로 된 작품.
“내여 달리고 저운 마음이련만은/ 바람에 씻은 듯 다시 명상하는 눈동자// 때로 백조를 불러 휘날려보기도 하건만/ 그만 기슭을 안고 돌아누워 흑흑 느끼는 밤// 희미한 별 그림자를 씹어 노외는 동안/자줏빛 안개 가벼운 명모(暝帽) 같이 나려 씌운다.” (‘호수’ 전문)
이 시 마지막 행에 나오는 ‘명모’는 ‘멱건’( 幎巾) 또는 ‘멱목( 幎目)으로 더 자주 불리는, 죽은 이를 염할 때 망인의 얼굴을 싸매는 수건 모양 헝겊을 가리킨다고 도 교수는 파악한다. 명모를 중심으로 한 ‘호수’ 3연의 이런 이미지는 ‘교목’의 3연과 마찬가지로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있는 어떤 망자, 구체적으로는 학산 권삼변과 향산 이만도 등을 가리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시 제목으로 쓰인 ‘교목’은 “오래되어 가문이나 마을, 나아가 국가의 상징이 되는 나무”를 뜻한다. 그러니까 육사는 학산과 향산 같은 옛 어른들을 오래된 나무에 빗댄 것이다.
한편 ‘교목’ 말미의 부기 ‘SS에게’에서 에스에스(SS)는 육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석정 윤세주(1901~1942)를 가리킨다고 도 교수는 헤아린다. 석정과 육사는 1932년 중국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를 같이 수학하면서 생사를 같이하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도 교수는 ‘강철로 된 무지개’에서도 육사 시 ‘청포도’에 나오는 “내가 바라는 손님”이 윤세주를 가리킨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밀양 출신인 석정은 중외일보의 실질적 경영자 역할을 하다가 1932년 봄 중국으로 망명했고, 육사는 중외일보 대구지국과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2년 중국으로 갔다. 도 교수는 두 사람이 “중외일보 시절 서로 만나 의기투합하여 친밀해지기 시작”했으며, 대구에 있던 육사와 밀양에 있던 석정이 지리적으로도 가까웠기 때문에 자주 만났을 것이고 “두 사람이 만난 장소 중에 밀양 위양지 완재정도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929~31년 늦가을 어느 날 두 사람은 완재정을 방문하여 ‘알뜰히 못 잊을 그님’들의 의열과 죽음을 기리고, 거울 같은 위양지에 비치는 ‘그님’ 그림자의 미러링(mirroring)을 통해 고난의 후손으로서 자기 의식을 비추어보면서 따라 배우려는 모종의 다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만의 비밀스런 다짐이 있었기에 육사는 ‘교목’에 ‘SS에게’라고 부기하여 그날의 기억을 같이 소환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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