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살인마’ 시달린 일본···어떤 해결책 내놓고 있을까

박용하 기자 2023. 8. 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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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발생한 일본 ‘아키하바라 살인사건’ 당시 TV 중계화면

최근 국내에서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무차별살상’ 사건이 빈발하면서 지난 20여년간 이 문제와 씨름해온 일본의 경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은 그간 무차별살상 사건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진행해왔으며, 문제의 핵심으로 개인의 ‘사회적 고립’을 지목하고 이를 해소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또 효과적 대응을 위해 한국의 민방위훈련을 연상케하는 모의 대응 훈련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일본 경찰청 자료를 보면, 일본의 무차별살상 사건들은 한국보다 이른 시점에 심각하게 악화된 양상을 보여왔다. 경찰이 인지한 사건만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한 해 평균 7건씩이었으며, 최근에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무차별살상을 ‘길거리 악마’라는 뜻의 ‘도리마(通り魔)’ 살인으로도 부른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2008년 6월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트럭으로 행인들을 들이받은 뒤, 흉기를 휘둘러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이 꼽힌다.

사건이 빈발하자 법무성은 1993년부터 ‘범죄백서’를 통해 무차별살상 사건과 관련된 통계를 내왔다. 경찰청도 ‘범죄정세’ 자료에서 도리마 살인사건의 인지건수와 검거건수를 정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그간 이같은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가 없었다. 한국 경찰은 지난해에서야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통계수집과 분석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에선 무차별살상 사건들을 모아 정부 차원의 연구도 진행했다. 법무성은 2013년 ‘무차별 살상사범에 관한 연구’에서 범인들을 인구통계학적으로 분류하고 범행의 형태와 시간, 장소, 방법적 특징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범행 형태를 두고는 ‘단일살인’과 ‘대량살인’, 동시에 여럿을 노리는 ‘스플릿 살인’과 시간차를 둔 ‘연속 살인’ 등으로 나눴다. 동기에 대해서도 ‘처지에 대한 불만’과 ‘특정인에 대한 불만’, ‘자살·사형에 대한 소망’, ‘감옥으로의 도피’, ‘살인에 대한 관심’ 등으로 분류했다.

일본 사회는 연구를 통해 무차별살상 사건의 가장 큰 동기는 처지에 대한 비관이며,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이 이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갈 수 있다고 봤다. 정신질환에 따른 범죄사례들을 봐도 사회적으로 혹은 가정 내에 고립되며 망상을 키운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같은 고립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악화돼 일본 사회는 긴장해왔다. 지난해 8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공표한 고독·고립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고독함을 느낀다는 이가 국민의 36.4%에 달했고, ‘늘 외롭다’는 이들도 4.5%로 나타났다. 특히 노년층보다 20~30대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독거노인들은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이라도 받지만, 고립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이에 일본은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한 층 속도를 붙였다. 앞서 일본은 2021년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 담당 부서를 별도로 설치하고 대책을 수립해왔다. 지난해 12월 중점계획을 정리했으며, 고독 문제를 24시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전화를 시범 운영하는 등 상담 체계 정비에 나섰다. 또 공동체를 복원하는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범죄의 원인을 사전 예방하는 작업 뿐 아니라 범죄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무차별살상 사건에 대비해 상업지역과 학교, 대중교통 등에서 모의 대응 훈련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훈련에는 경찰 뿐 아니라 시설 관계자들이 폭넓게 참여하며 경찰 신고, 범인 제압, 행인들의 피난 유도, 부상자의 구호와 관련해 실제 상황과 같은 대응이 이뤄진다.

무차별살상 범죄를 실행할 때의 비용이나 노력을 증가시켜 실행 의지를 낮추는 움직임도 있다. 평소 인파가 많으면서도 차량 돌진에 취약한 곳에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을 꼼꼼히 설치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또 학교처럼 보복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기관이라면 외부인의 실내 통행로를 명확히 하고, 접견실 등에 투명 칸막이판의 설치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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