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9차선 ‘안전지대’ 점거한 불법 집회… “시민 안전까지 위협하는 시위 근절해야”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2023. 8. 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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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업 인근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시위 풍경
원색적인 욕설 현수막 넘어 ‘위험천만’ 도로 점거 집회
염곡사거리 황색 안전지대서 지난달부터 집회 이어져
안전지대에 차량·천막 등 시위 물품 적치
운전자 시야 방해·시위자 불법 행위로 ‘안전 빨간불’
구청 법 집행에도 불복… 인도 천막 내 인화성 물품 방치
“무분별한 시위·시민 안전 위협 막기 위해 법 개정 필요”
현대자동차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서초구 염곡사거리는 양재대로와 강남대로, 경부고속도로, 강남순환도로 등 주요 도로 진출입 차량으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특히 출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차들은 물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까지 몰리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염곡사거리에 있는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신경이 곤두서게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 여기에 각 도로 인도에는 원색적인 문구가 담긴 현수막까지 걸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현수막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비단 염곡사거리뿐 아니라 국내 대형 기업 본사나 주요 사무소가 있는 지역의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는 어느 순간부터 원색적인 현수막이나 무리한 집회 등이 흔한 풍경으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염곡사거리의 경우 현수막이나 인도에서 이뤄지던 집회가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 가운데 ‘안전지대’까지 침범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안전지대 시위는 운전자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 위험을 높여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시위자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도 있다. 다수의 안전을 볼모로 시위나 집회가 이뤄지는 셈이다.

특히 한 시위자는 지난달 중순부터 2주 넘게 염곡사거리 안전지대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기아 판매대리점에서 대리점 대표와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후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 앞에서 10여 년간 시위를 벌여온 시위자라고 한다. 판매대리점과 대리점 대표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대리점 경영 관련 사안은 기아와 업무적으로 무관하지만 해당 시위자는 기아 측에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위자는 현대차그룹 사옥에서 직선거리로 20m 떨어진 염곡사거리 중앙 황색 안전지대를 점용하고 있다. 차량이나 천막, 현수막, 대형 스피커, 취식도구 등 도로 위에 방치하는 물품도 많아지고 있다. 많은 물품을 도로 위에 방치한 채 집회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황색 안전지대는 도로 중앙에 황색 빗금이 쳐진 곳으로 교통사고 등 비상상황 발생 시 보행자와 위급 차량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공공 대피공간이다. 도로교통법(제32조 3항)에 따르면 도로 위 안전지대는 사방으로부터 각 10m 이내부터 차량 정차나 주차가 금지된다. 염곡사거리 시위자는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채 안전지대를 거점으로 삼아 위험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염곡사거리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전국에서 4번째로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한 장소로 집계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구체적으로 차량 유턴 지점에 천막으로 세우고 시위 차량을 불법 주차하면서 염곡사거리를 통행하는 차량 운전자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고 다수 인원이 시위에 동원되면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거리 한가운데서 집회가 벌어지면서 혼잡도가 높아지고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집회에 사용할 스피커나 현수막 등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왕복 9차선 대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안전지대 한복판에서 단체로 취식이나 노숙을 하고 아스팔트 위에 현수막을 못으로 박아 고정하기도 했다.

해당 시위자는 지난 2013년부터 현대차그룹 본사 주변 보행로와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원색적인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다수 설치하고 욕설이 섞인 소음을 유발하면서 시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다수 현수막을 설치해 보행자와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심지어 사옥 앞 보행로 한가운데 도로점용허가 없이 설치한 불법 천막 안쪽에는 부탄가스와 휴대용 버너, 휘발유 등 인화성 물품이 방치돼 화재 발생 우려를 낳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청은 지난 6월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 현수막 19개와 천막 2개, 스피커 등을 비롯해 인화성 물질(가스통, 부탄가스 등) 시위 물품을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한 바 있다. 이후에도 해당 시위자는 서초구청 조치에 불복한 채 지난달부터 안전지대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관할 행정기관 법 집행까지 무시한 무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 인근에서 시위자 본인이나 시민, 운전자 등의 안전을 볼모로 무리하게 강행되는 불법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나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단순 도로 점거 규제안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의 경우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은 집회나 시위의 자유가 타인의 기본권과 균형을 이루도록 공권력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내처럼 집회나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시위 장소를 벗어나 다른 이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일반 시민을 위협하는 경우 모두 불법으로 간주해 경찰을 투입한다. 프랑스와 일본은 차를 도로에 세워 정체를 유발하는 등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시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회나 시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는 기본권”이라며 “불법 시위로 인해 시민 안전이 위협받는 경우가 없도록 집시법 보완이 필요하고 시위자 입장에서도 안전한 집회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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