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포착·제거 어려운 ‘숨은 위협’ 지뢰… 반격의 우크라軍도 고전 [뉴스 인사이드-‘지뢰’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

박수찬 2023. 8. 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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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 매설 아닌 대포·헬기 등 이용 살포
진동·소리로 100m거리서 탐지 ‘지능형’도
국제협약 사용·생산 금지해도 소용 없어
러시아軍 첨단 지뢰·참호로 방어선 구축
우크라 영토 4분의 1이 지뢰·불발탄 오염
진격속도 더디게 만들어… 전황에 큰 영향
제거하면 또 살포… 단기간 무력화 불가능
우크라 ‘지뢰제거·포병 반격’ 타개책 절실
제공권 장악 없인 돌파구 찾기 어려울 듯
“지뢰 탐지기·제거기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수요가 절박하리만큼 크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직후인 지난달 16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한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뢰가 우크라이나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군이 매설한 지뢰로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속도가 느려지면서 전쟁에 대한 회의적 견해가 늘어날 정도로 현대전에서 지뢰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이줌 인근 숲에 있는 나무에 지뢰 지대 경보 표지판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침묵의 공포’ 극대화하는 지뢰

지뢰는 특정 지역에 설치해 인명 또는 차량 등이 지나가다 밟으면 폭발한다. 이를 통해 적군을 살상하거나 장비를 파괴한다. 기술적 난도가 낮고 비용도 저렴해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수량이 만들어졌고, 현재도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1983년 발효된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은 자폭 기능이 없는 대인지뢰 사용을, 1999년 발효된 오타와 협약은 대인지뢰의 사용과 생산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명 또는 차량을 노린 지뢰는 계속 생산·운용 중이고, 제작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뢰도 여전히 땅에 묻힌 채 남아 있다. 한국은 CCW 제1·2의정서에 가입했으나 오타와 협약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현재 지뢰는 주요 군사 시설이나 방어 진지 주변 지역에 방어용으로 설치되거나, 특정 지역 전체에 대량으로 매설되어 적군의 접근을 저지하는 용도로 쓰인다.

지뢰가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 중 하나로 분류되는 것은 사전에 포착하기가 쉽지 않고, 제거도 어렵기 때문이다. 땅에 묻힌 지뢰는 탐지기로도 100% 확인이 어렵다. 전쟁 직후 민간인들이 지뢰 피해에 시달리는 것도 이 같은 특성과 무관치 않다. 지뢰의 설치·운용법이 발전하는 것도 지뢰의 위력을 더욱 키우는 모양새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지뢰를 매설했지만, 폭발물인 지뢰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현대전에서는 대포나 헬기 및 차량을 이용해 지뢰를 살포한다. 공중이나 지상에서 지뢰를 살포하면 센서가 작동, 병력이나 차량과 접촉하면 터진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폭하는 기능을 갖춰 CCW를 위반하지 않으며, 단시간 내 넓은 범위에 설치가 가능하다.

복합 센서를 장착한 지능형 지뢰도 있다. 미국산 M93 호넷 광역지뢰는 진동과 음향, 적외선 복합 센서를 장착해 100m 거리에서 전차의 존재를 탐지한다. 이후 상부공격탄을 발사해 전차의 상부를 타격한다. M7 스파이더 네트워크 지뢰는 인계선에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양방향 통신으로 통제소에 데이터를 보낸다. 통제 인원은 현지 상황을 파악한 후 양방향 통신 체계를 이용해 타격 명령을 내린다. 다른 지뢰나 폭탄과 함께 사용할 수 있어 위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위력 드러내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뢰가 현대전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6월 초 반격을 시작했으나 지뢰와 장애물, 참호로 방어선을 구축한 러시아군에 막혀 진격이 지지부진하다.

러시아군은 다연장로켓과 화포 등을 동원해 살포식 지뢰를 우크라이나군의 진격로에 계속 설치하고 있다. 위력이 약하고 지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크기가 작아서 정찰 활동을 해도 공격 작전 전에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미국산 M93 호넷 광역지뢰와 유사한 성능을 지닌 첨단 지뢰도 투입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한 것이 확인된 PTKM-1R 대전차지뢰는 음향 센서가 적 기갑차량을 탐지하면, 내장된 자탄을 공중으로 발사해 차량의 상부를 타격한다. 러시아군이 개전 초부터 설치한 지뢰까지 합치면, 우크라이나에는 막대한 양의 러시아 지뢰가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영토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6만㎢ 면적이 러시아군 지뢰나 불발탄에 오염된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저지하고자 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 지원받아 매설한 지뢰까지 포함하면, 우크라이나 내 지뢰 위험 지역은 더욱 늘어난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민간인 거주 지역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지뢰 제거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동맹국들로부터 2억4400만달러(약 3128억원) 상당의 지뢰 제거 장비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를 통해 한국, 캐나다, 일본, 스위스 등으로부터 지뢰탐지기와 방호복을 비롯한 장비를 지원받아 국토 전역을 대상으로 지뢰 제거 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진행 중인 남부 전선이다. 미국 등이 지뢰 제거 차량과 방호 차량을 공급했고, 한국도 휴대용 지뢰탐지기와 방호복을 제공했지만 러시아군 지뢰 지대를 단기간 내 무력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러시아군은 방어선 뒤쪽에서 포격을 실시, 지뢰 지대에 진입한 우크라이나군과 지뢰 제거 장비를 무력화한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뢰를 제거하면 다연장로켓 등으로 살포식 지뢰를 다시 설치한다.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이 정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AP연합뉴스
이 같은 국면을 타개하려면 지뢰 제거 장비보다 전투기, 공격헬기, 다연장로켓을 포함한 화력 수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이 제공권을 장악, 러시아군 후방 지역을 공습해 러시아군을 묶어 놓은 뒤 지뢰 제거 부대를 투입하고, 러시아군이 포격을 감행하면 강력한 포병 화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부·군 수뇌부가 미국산 F-16 전투기 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국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대응 수단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지원을 요청한 F-16이 도착한다면 사정은 다소 나아질 수 있지만, 실전 배치가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러시아군 지뢰 지대를 단기간 내 제거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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