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가 부른 낙뢰 위협, 한국에서도 현실이 됐다
(시사저널=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폭염과 장맛비만 주의하면 됐던 과거 여름철과 달리, 올해는 유독 국지성 호우와 천둥을 동반한 낙뢰가 빈번하다. 6월10일엔 강원도 양양군 설악해수욕장에서 30대 남성이 해변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중 바위 부근에 벼락이 떨어져 결국 숨지고 일행 5명이 다쳤다. 이는 데이터가 있는 2009년 이후 역대 단일 낙뢰 사고 중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사고였다. 예전엔 해외토픽에서나 보던 일이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기상청은 장마가 끝났지만, 지난해 8월 경남에 낙뢰가 집중적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올해도 국지적 대기 불안정으로 돌풍과 번개, 낙뢰를 동반한 강한 소낙성 강수가 있는 날이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안전사고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8월 돌풍·번개 주의보…각별히 주의해야
18세기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가 전기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번개는 벼락과 천둥을 동반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번개의 정체가 밝혀진 지금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홍수 다음으로 인명을 앗아가는 자연재해로 벼락을 꼽을 정도다.
보통 '벼락'이라고 부르는 낙뢰(落雷)는 구름에 쌓여 있는 전기에너지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번개나 낙뢰는 보통 적란운, 즉 소나기구름에서 발생한다. 바꿔 이야기하면 조용히 내리는 비의 경우엔 번개나 낙뢰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름철 강렬한 햇볕에 의해 땅이 가열되면 공기가 가벼워져 상층으로 올라가 소나기구름을 만든다. 이 구름 속에는 수많은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들이 있고, 또 양전하(+)와 음전하(-)가 있다. 구름 입자들은 전기적으로 서로 다른 성질을 띤다. 그래서 전하의 개수를 맞추려고 입자와 입자 사이에 전하 이동이 생기는데 이때 서로 부딪쳐 전기를 방출한다. 이 방전 현상이 바로 번개다. 즉 음전기와 양전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꽃 현상이다.
낙뢰(벼락)는 번개와 같은 방전 현상이 구름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소나기구름 밑에 쌓인 음전하와 지표면에 축적된 양전하가 만나는 순간, 하나의 낙뢰길이 열린다. 낙뢰는 약 5000m 상공에서부터 지면을 향해 지그재그로 내려친다. 그러다가 주변에 높은 물체가 있으면 그곳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낙뢰는 번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90% 이상의 번개는 구름과 구름 사이나 구름 속으로 이동한다.
번개는 '구름 속의 자객'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위력적이고 인명을 앗아가는 기상재해라는 의미다. 번개(또는 낙뢰)는 온도가 매우 높다. 번쩍하고 한 번 빛을 내는 온도가 2만~4만도에 이른다. 이는 태양 표면 온도(6000도)의 4~7배 수준이다. 번개가 한 번 칠 때의 전압은 보통 10억 볼트(V)에 달한다. 가정의 전압이 220V이고 초고압선도 수십만 볼트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번개의 전압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또 벼락 치는 순간 흐르는 전류는 2만~5만 암페어(A)에 달한다. 5만A 규모의 낙뢰는 100W 전구 7000개를 8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건물에 구멍을 내거나 물건을 불태울 수 있는 위력이다. 여름철에 발생하는 강한 소나기는 10초에 약 1회 비율로 번개를 발생시킨다. 그런 소나기구름은 중간 크기의 발전소와 맞먹는다. 이런 에너지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낙뢰 전류는 1000분의 1초 이하의 짧은 시간 동안 흐르기 때문에 이용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낙뢰는 얼마나 발생할까. 매해 기상청이 발표하는 '낙뢰연보'에 따르면 전국 평균 낙뢰 일수는 1980년대 12.1일에서 1990년대 14일, 2000년대엔 17.4일로 늘어났다. 또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평균 낙뢰 횟수는 10만8719회로 엄청 늘었다. 이 중 약 79%는 6~8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최근 3년간 낙뢰 발생 횟수를 살펴보면 큰 폭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이상기후 형태를 보인다. 2020년에는 8만2651회의 낙뢰가 발생했고, 2021년에는 이보다 50.57% 증가한 12만4447회, 2022년에는 2021보다 훨씬 적은 3만6750회의 낙뢰가 발생했다. 낙뢰 강도의 평균값도 6.9킬로암페어(kA)에서 21.6kA로 상승했다. 특히 200kA를 초과하는 낙뢰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이후 가파르게 높아져 2011년에는 4.7%에 이르렀다.
10년간 낙뢰 10만 건…빈도·강도 모두 상승
낙뢰 건수는 매년 변동성이 큰 편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증가 추세다. 낙뢰는 왜 이렇게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기상청에 따르면 6월과 9월에 나타나는 극심한 대기 불안정이 원인이다.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고 습도가 올라가 대기가 불안정해지면 낙뢰 가능성이 커진다.
한반도의 경우 여름 상층부 대기 온도는 보통 영하 5~10도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름철의 한낮 온도가 30도를 넘으면서 영상까지 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달궈진 공기는 밤에 빠르게 냉각되어 지상과 상층의 온도 차이가 커져 대기 불안정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잦은 낙뢰 발생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구온난화로 바다와 육지가 계속 뜨거워지면 이 열기가 쌓여 위로 올라가고, 이것이 대기 상층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는 올해 전 세계 바닷물 온도가 관측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낙뢰 빈도는 물론 강도 또한 더 세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도 과학환경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 높아질 때 번개 수는 12%씩 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낙뢰로 지난해에만 907명이 사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는 지구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낙뢰로 인한 화재 발생이 39~6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남미, 북미, 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지의 피해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 8월15일 시작된 캘리포니아 북·중부 지역 산불은 서울 전체 면적(약 605㎢)의 9배에 달하는 140만 에이커(약 5666㎢)의 산림을 태웠다. 사망자는 7명. 원인은 낙뢰였다. 한 주간 약 1만2000건의 낙뢰가 떨어져 58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낙뢰 증가는 지구에 악순환을 불러온다. 낙뢰로 산불 등 화재가 일어나면 산림 생태계가 훼손돼 산림의 탄소 흡수량 감소가 가속하고, 다시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는 늪에 빠지게 된다. 낙뢰 발생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지금은 정부의 대책이 시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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