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현장] 바셀루스 얘기하자 "하…" 장탄식, 최원권 감독은 정말 화가 났었다
(베스트 일레븐=대구)
감독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실망해 부러 가시 돋힌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선수를 자극해 다음에는 더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 회초리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울산 현대전을 마친 최원권 대구 FC 감독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크게 실망한 듯했다. 대구의 외국인 선수,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바셀루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 감독이 이끄는 대구는 5일 저녁 7시 30분 대구 DGB대구은행파크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1 2023 25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다. 최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울산은 울산이다. 울산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며 객관적 전력상 크게 열세인 사태에서 치르는 경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이기지 못했어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최 감독은 악독하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로 후텁지근했던 날씨에도 만석을 채운 관중들에게 미안함을 전했고, 또 후방에서 골문을 지켜준 오승훈 골키퍼와 수비진, 그리고 공격수들에게 찬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술적 움직임을 잘 가져간 미드필더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외국인 공격진에 대해서만큼은 강하게 질타했다. "화가 난다. 오늘도 욕 한 바가지 해줄 것"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최 감독이 이토록 화를 낸 건 모든 선수들이 서포트하고 있는데 승리를 결정지어줘야 할 외국인 공격진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외국인 공격진'라는 단어도 되도록 특정 선수를 지목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뭉뚱그려 표현하기 위함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바셀루스가 후반 24분 세징야의 패스를 받아 결정적 찬스를 잡았을 때 이를 무산시킨 장면을 언급하자, 최 감독은 "하…"라고 장탄식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바셀루스는 분명 자신의 플레이를 지켜 본 모든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번개 같은 역습으로 3대2 상황, 최 감독의 말처럼 득점 찬스가 많지 않은 대구의 전술적 특성상 이건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는 찬스가 주어진 것이다. 실제로 에드가와 세징야가 부지런히 패스를 주고받으며 울산 수비진의 밸런스를 마음껏 흔든 후 바셀루스에게 결정적 찬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셀루스가 날린 슛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나가고 말았다.
제3자의 시각에서 바셀루스가 슛을 날린 이후 장면이 굉장히 재미있다. 바셀루스는 득점이 무산된 후 허탈한 표정으로 벤치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주변 눈치를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찬스를 제공한 세징야는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최 감독이 있던 벤치는 분노와 허탈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때 주심이 굉장히 잔혹한 결정을 내렸다. 이날 경기에서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쿨링 브레이크가 적용되고 있었다. 바셀루스의 이 슛이 골문을 벗어난 직후, 주심은 쿨링 브레이크를 선언했다. 바셀루스는 벤치에서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미안함 때문에 차마 동료들에게 다가서지 못한 것이겠지만, 이마저도 최 감독이 보기엔 보기 좋지 못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후반 36분 벤치에 있던 이근호가 바셀루스를 대신할 준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때 바셀루스는 또 한 번 역습 찬스를 잡았었다. 자신이 교체될 것을 직감했는지 이 찬스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박스 외곽에서 다소 무리한 중거리슛을 날렸다. 당연히 골로 이어지지 않았고, 대구는 또 한 번 득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최 감독은 이런 상황이 시즌 내내 거듭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말 갑갑해하는 모습이었다. 최 감독은 "다음 인천 유나이티드전에도 출전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공격수가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잘해서 내보내는 게 아니라 못해도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한 것이다. "슛을 1,000~2,000번씩 훈련시키겠다"는 프로 축구가 아니라 고교 축구 만화에서나 볼 법한 멘트도 남겼다.
심지어 최 감독은 "외국인 선수가 한국 선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니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라며 꽤 무섭게 휘두르는 자신의 회초리에는 당위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강도 높은 질책은 근래에 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시선을 끄는 모습이었다.
대구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최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바셀루스가 경기가 끝난 후 최 감독을 비롯한 동료 선수들에게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어쨌든 경기는 끝났다. 이제 대구는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정말로 슛을 2,000번 가까이 시킬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바셀루스가 울산전에서 감독과 동료를 실망시켰던 플레이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마음 편히 상위 그룹에서 시즌을 마치고 싶다는 대구의 목표를 떠올리면, 바셀루스가 남은 경기에서만큼은 최 감독의 마음에 쏙 들도록 각성해야 한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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