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는 왜 실패했나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8. 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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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에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그늘막 아래 가방을 쌓아두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주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장에서 벌어진 대회 운영 차질 사태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이미지화한 ‘자화상’에 들어맞지 않았다. 한국은 유서 깊은 ‘접빈(接賓)’의 나라다. 퇴락해 살림살이가 곤궁해진 양반이라도 형편껏 정성을 다해 손님을 맞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양반 취급을 못 받았다. 이 문화가 개발 시대 이후에는 맹렬한 ‘인정(認定) 욕망’과 결합했다. 외국 손님을 의식하는 것, 그들에게 더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국민 개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서울올림픽과 평창동계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은 그런 강박 속에서 치른 대회였다. 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을 입증해야 하는 무대였고 한일 월드컵은 대회 운영과 흥행, 심지어 화장실 청결 정도까지 일본과 경쟁하는 대회였다. 대통령 탄핵사태 직후 치러져 비관적 전망이 많았던 평창올림픽은 그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3개 대회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런 국가적, 국민적 집중력이 동원되는 대회가 성공하지 않기는 어렵다.

잼버리 대회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행사다. 나는 이번 대회가 폭망한 원인을 한 개만 꼽으라면 잼버리가 올림픽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을 꼽겠다. 두번째로는 개최 장소가 비수도권이라는 점을 들고 싶다. 올림픽보다 작고 서울에서 열리지도 않는 행사가 한국에서 국민적 관심을 받기는 어렵다. 이번처럼 사고가 터져야 가능하다.

과연 사고가 크게 터지자 국무총리가 현장반장으로 내려가고 관련 부처 장관들이 총출동했다. 지난 4일 현장 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제부터 행사는 중앙 정부 주도로 치른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의약품과 의료진을 급파하고 에어컨이 갖춰진 간이 화장실을 지원했다. 국가적 집중력이 하루 사이에 생겨났다.

그럭저럭 사태는 수습되겠지만 입맛은 쓰다. 한국적 실패공식의 단면을 본 기분이다. 첫째 우리는 일정 수준의 외부 관심이 주어질 때만 분발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국민성은 큰 행사와 위기에서 저력을 발휘하는 반면 관심 사각지대에 이르러선 형편없이 해이해진다. 그 특성이 비단 행사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세계 5대 건설강국으로 온갖 고난도 기반 시설을 해외에서 건설하고도 뒤탈 없이 좋은 평가를 듣는다. 반면 자기들이 직접 살아가는 아파트 공사에선 철근도 빼돌리고 콘크리트 함량도 속인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고 의식하지 않고의 차이다.

둘째 중앙과 지방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 중앙 정부는 이번 대회 준비를 전북도에 일임하고 예산만 지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가 터지자 뒤늦게 호들갑을 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잼버리 대회를 중앙 정부가 일일이 챙기는 것이 맞는 일인가. 전북도는 새만금 홍보를 위해 강원도 고성과 치열한 경합을 거쳐 이 대회를 유치했다. 경쟁 과정에 잡음이 많았다. 그렇다면 책임지고 해야 할 텐데 준비를 이 꼴로 했다. 광역지자체가 잼버리 정도 대회에 이렇게 절절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후년이면 지방자치제 실시 30년이 되는 마당에?

요컨대 한국은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지방으로 내려가면 신경도 쓰지 않는 나라다. 그 지방의 관리 수준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때그때 보여주기식 이벤트에는 능수능란하지만 누가 안 봐도 틀림없이 해내야 할 ‘나사를 조이는 일’에는 매우 무능하다. 모양 나고 거창한 일에 자화자찬하는 사이 아무도 보지 않는 밑동의 나사들이 풀려나가고 있다. 나라 망신 새만금 잼버리도, 순살 아파트도 그 나사가 풀려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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