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부른 국방부 급변침 미스터리…왜 생각 바꿨나 [취재파일]
지난달 30일 해병대 수사단은 고 채수근 해병 순직 사고의 조사 결과를 국방부에 보고했고, 지난달 31일 국방부는 돌연 언론 및 국회 설명과 사고의 경찰 이첩 계획을 백지화했습니다. 국방부는 해병대 조사 보고서의 수정을 지시했지만, 지난 2일 해병대 수사단은 경북경찰청에 보고서를 그대로 이첩했습니다. 같은 날 국방부 검찰단은 경찰로부터 보고서를 회수했고, 해병대 수사단장 A 대령은 항명 혐의로 보직해임됐습니다.
채수근 해병 순직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지난 한 주 숨 가쁘게 펼쳐진 파란입니다. 대부분의 시선이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과 보직해임에 쏠리다 보니 지난달 30일 해병대 수사단의 국방부 보고와 지난달 31일 국방부의 급변침은 관심을 덜 받고 있습니다. 30일과 31일 벌어진 일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습니다.
지난달 30일 조용했던 국방부
해병대 수사단의 국방부 보고는 지난달 30일 오후 3시쯤 이뤄졌습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참석한 해병대 A 수사단장이 이종섭 국방장관, 허태근 정책실장, 박진희 군사보좌관(육군 준장), 전하규 대변인 등 국방부 지휘부에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장관을 비롯해 이번 국방부의 내로라하는 브레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 것입니다.
1시간 이상 진행된 보고에서 특별한 이의 제기는 없었습니다. 이종섭 장관은 몇몇 해병대 간부의 혐의에 대해서만 질문했습니다. 전하규 대변인은 "장관이 누구누구의 행동과 적용 혐의의 관계를 수사단에 물어봤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섭 장관은 해병대 보고서에 사인했고, 경찰 이첩과 언론 및 국회 설명도 확정됐습니다. 30일 오후 늦게 해병대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된 언론 설명 자료가 대통령실의 안보실과 국방비서관실에도 전달됐습니다.
지난달 31일 국방부 대소동
지난달 31일 오전까지도 국방부는 잠잠했습니다. 전날 해병대 보고에 정통한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언론 설명 끝나면 일단락될 것 같다"는 한가한 말을 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집니다. 소동의 시작 시점은 오전 11시 반부터 정오 사이입니다. 먼저, 언론 및 국회 설명과 경찰 이첩의 중단이 다급하게 논의됐습니다. 낮 1시쯤 국방장관실로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호출됐고, 국방부는 뒤늦게 법무 검토를 벌였습니다.
법무 검토 결과는 주지하듯 언론 및 국회 설명과 경찰 이첩의 취소입니다. 또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에 조사 보고서의 수정을 지시했습니다. 언론 및 국회 설명은 일찍이 예고됐던 바, 보도와 대면 설명을 각각 준비하던 기자들과 국회의원실은 갑작스런 중단 통보에 아연실색했습니다. 국방부는 부랴부랴 "혐의 사실이 공개돼 피의사실이 공표될 우려가 있다", "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국방부 급변침의 진짜 이유는…
아무렇지 않게 보고서에 사인해서 언론 설명과 경찰 이첩을 결정해 놓고, 다음 날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국방부가 국회와 언론을 무척 경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발적으로 매를 부른 미스터리에 가깝습니다. 해병대 보고를 함께 청취했던 정책실장, 군사보좌관, 대변인은 평온했는데 장관 혼자 불현듯 각성했다는 국방부 주장만으로 설명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이종섭 장관이 마음 바꿔먹은 31일 오전 11시 반부터 정오 사이에 모종의 사단이 생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외부의 개입으로 국방부가 언론 및 국회 설명과 경찰 이첩 계획을 중단시켰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구명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작동했다"며 여러 사람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장 A 대령이 지난 2일 조사 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사실도 의혹의 무게를 키우고 있습니다. 항명을 각오하고 이첩했다는 것은 A 대령이 그만큼 절박했다는 방증입니다. 국방부의 조사 보고서 수정 지시를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부 검찰단이 이첩 당일 A 대령 항명 사건 수사에 즉각 착수한 속도도 이채롭습니다. 국방부 검찰단은 그려놓은 그림에 안주하지 말고 항명을 초래한 국방부의 변심으로까지 시야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항명 사태의 전모가 드러납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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