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에도 털옷 껴입은 ‘천연비아그라’, 박주가리 꽃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박 모양 열매가 두쪽으로 갈라진다’ 박쪼가리서 유래
‘할머니의 바늘겨레’란 뜻의 ‘파파침선포(婆婆針線包)’ 별칭도
독성의 乳液은 상처 치유, 방어 무기로도 활용…영어명 Milkweed
꽃말은 ‘먼 여행’…하얀털에 달린 씨앗이 민들레 씨앗처럼 먼 길 떠나
<복(伏) 중에/두꺼운 털옷차림/덥지도 않나/해적(?) 불가사리가/꽃으로 환생한 듯/두꺼운 외투처럼/진한 꽃향기/박주가리꽃>
기자 출신인 한종인 들꽃 시인은 시 ‘박주가리꽃’에서 ‘해적 불가사리가 꽃으로 환생했다’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꽃봉오리를 펼친 모습이 영락없는 불가사리 형상이다.
박주가리는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찰된다. 번식력이 강해 기대고 올라갈 식물체만 있으면 정신없이 휘감고 올라가 꽃을 피우며 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가까운 산자락이나 밭 언저리 같은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여름 박주가리꽃은 연분홍빛이 감돌고 햇빛을 받아 흰색으로 불사가리 모양을 띠기도 한다. 융단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라일락꽃 비슷한 향기를 내뿜는 별 모양의 작은 꽃들이다.
박주가리는 쌍떡잎식물로 용담목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다. 통 모양으로 생긴 열매가 익으면서 쪽배처럼 두 쪽으로 갈라지며 씨앗들이 터져나온다. ‘박을 닮은 열매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형상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박쪼가리’라 부르다가 ‘박주가리’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정겹고 고운 순우리말 이름이다.
땅속줄기가 길게 뻗어 나가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간다. 잎은 마주나고 길쭉한 심장형으로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끝이 뽀족한 모양이다. 뒷면은 분을 바른 듯 분녹색을 띤다. 꽃은 옅은 분홍색을 띤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화관은 넓은 종처럼 생기고 다섯 갈래로 깊게 갈라져 있다. 봄이 되면 땅속줄기가 길게 뻗어가면서, 여기서 자라는 덩굴이 길이 3m 정도로 자란다.
박주가리 꽃은 양성웅화동주형이라고 한다.암꽃과 수꽃의 양성을 지닌 꽃이 있는가 하면, 수꽃 기능만을 하는 꽃송이도 있다는 뜻이다.
특이하게도 삼복 더위에도 피는 꽃이지만 털 옷을 켜켜이 껴입고 있는 무장한 장수 같은 꽃이다.
열매는 길쭉한 뿔 모양이다. 여주처럼 울퉁불퉁 돌기가 있다. 잘 익으면 스스로 배를 가르고 씨앗을 내어놓는다. 씨앗은 우산 모양의 풍성한 털을 달고 있어 멀리멀리 날아갈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명주실만큼이나 부드럽고 풍성한 씨앗을 털은 유년시절 놀잇감이기도 했다. 씨앗을 뜯어내어 공중으로 휙 던지며 누가 멀리 날려 보내는지 내기하던 어릴적 추억의 꽃이기도 하다.
예년에는 부녀자들의 벗이었던 규중칠우(閨中七友) 중에서 바늘을 꽂아 두던 ‘바늘쌈지’가 있었는데 ‘바늘겨레’‘바늘방석’이라고도 불렸다. 색색의 천으로 이어붙인 바늘겨레는 솜이나 머리카락으로 속을 채워넣은 바늘을 꽂아두는 용도로 사용됐다. 그런데 솜 대용으로 박주가리의 부드러운 솜털을 채워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주가리의 다른 이름은 ‘할머니의 바늘겨레’라는 의미의 ‘파파침선포(婆婆針線包)’가 있다.
박주가리는 잎이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하얀 유백색의 유액(乳液)이 나온다. 유액이 나온다고 해서 영어명은 ‘밀크위드(Milkweed)’다. 유액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기도 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이기도 하다. 강한 독성을 지닌 유액은 곤충들이나 동물이 먹으면 탈이 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박주가리 유액의 독성을 이용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작은 곤충들도 있다. 왕나비과 애벌레들과 몽고청동풍뎅이는 독이 있는 박주가리와 공생하며 사는 겁없는 녀석들이다.
의약품이 부족한 시절 박주가리의 독성은 사람에게는 활용하기에 따라 유용한 약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마귀가 있는 부위에 박주가리 유액을 발라 치료하기도 하고 벌레에 물렸을 때도 활용하기도 했다. 칼에 베인 상처는 명주실 같은 씨앗의 털을 붙여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다.
전초를 ‘나마’, 열매는 ‘나마자’, 열매 껍질은 ‘천장각’, 뿌리는 ‘나마초’라고 한다. 자양강장에 우수한 효능이 있어 ‘천연비아그라’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했다.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담금주나 효소로 활용하기도 한다.박주가리가 자양강장의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인삼, 구기자와 더불어 3대 명약으로 불리는 ‘백수오(白首烏)’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식물이다.
백수오는 ‘흰머리가 까맣게 된다’는 뜻이다.‘백수오’‘백하수오’‘큰조롱’이라 부르기도 한다.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라 여긴 약초 중 하나로 동의보감에서도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게 하며 머리털을 검게 하고 얼굴빛 좋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백수오와 박주가리는 아주 많이 닮았다. 잎과 열매로 서로 구분한다. 박주가리는 길쭉한 심중 모양으로 줄기와 만나는 잎의 기부가 선명한 V자 형상이다. 반면 백수오는 완벽한 하트 모양으로 잎의 기부는 둥근 원을 이루는 점에서 구분된다.
박주가리 열매는 표면에 돌기가 있어 울퉁불퉁하지만 백수오 열매는 돌기가 없어 미끈하게 빠졌다. 박주가리는 땅속줄기가 자라지만 실뿌리이다. 반면 백수오는 덩이뿌리가 있어 훌륭한 약재로 활용된다.
<늦가을 빈 들녘/박주가리가 흔들거리며/빈껍데기만 달그락 거리네//속살에 감추었던/
씨방이 ‘툭’ 터지면/씨앗들이 날개 달고/저 멀리 여행을 떠나네//품안 떠난/자식들 걱정에 /다 내어 준/어머니의 빈 가슴처럼/박주가리 씨방만 남아있네>
김형순 시인의 시 ‘엄마의 빈방’은 늦가을 박주가리 씨방의 문이 열리자 자식 같은 씨앗들을 하나 둘 너른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남은 모습을 자식들 내보내는 어머니의 빈방에 비유했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서 반으로 쫙 쪼개진 열매 속에서 면사 같은 하얀 털에 달린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그런 모습 때문에 박주가리의 꽃말은 ‘먼 여행’ 이다. 이렇게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꽃말도 드물다.
박주가리는 꽃이 모두 지고 열매를 맺는 가을 또는 찬바람 부는 겨울에 더 눈에 띠는개성강한 한 꽃이다. 특히 가을 또는 텅 빈 겨울에 바짝 말라붙은 덩굴 사이에서 하얀 솜털 날개를 달고 비상을 시도하는 박주가리 씨앗들을 만나게 된다. 작은 별꽃일 때는 그다지 눈에 띠지 않다가 가을과 겨울에 민들레 씨앗처럼 먼 여행을 떠나 더욱 눈길을 끄는 그런 꽃이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잼버리 영내서 성범죄까지…“한국 女대장 샤워실에 태국 남성 침입”
- [속보]수백만명 참가 가톨릭 최대축제 ‘세계청년대회’ 2027년 서울서 개최
- 52세 박선영 “임신 가능성 상위 5%…지금도 낳으라면 낳아”
- ‘갑질’ 징계받자 “보복성 징계”라며 신분보호 요청한 공무원의 최후
- “네 엄마 불륜, 아빠도 아시나?”…내연녀 딸에게 전화한 내연남
- “美·英 잼버리 퇴소 지켜본 윤 대통령, 오세훈 시장·박진 장관에 전화해서는…”
- 잼버리 조직위 “K팝 공연 11일로 연기”…美 대표단은 철수
- ‘밧데리아저씨’ 2차전지로 얼마 벌었나…주식계좌 전격 공개
- ‘42세’ 황보, 반전 섹시 뒤태…탄탄한 등근육에 강렬 타투
- “부부함께 가입하면 국민연금도 받을만 하다”…최고 수령액 월 469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