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동료들을 보며 불태운 책임감… 임기영의 엔진은 아직도 힘차게 돌아간다

김태우 기자 2023. 8.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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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 불펜의 수호신으로 시즌 내내 맹활약하고 있는 임기영 ⓒKIA타이거즈
▲ 4일 임기영이 2이닝 투구는 지친 KIA 불펜의 단비였다 ⓒKIA타이거즈

[스포티비뉴스=광주, 김태우 기자] 후반기 들어 상승세의 흐름을 만든 KIA에 4일부터 시작된 한화와 홈 3연전은 매우 중요했다. 흐름을 이어 가며 5할 승률 회복을 향해 가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오름세였던 흐름이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꺾이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기였던 까닭이다.

4일 첫 판이 중요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힘든 사정이 적지 않았다. 1일부터 3일까지 포항에서 열린 삼성과 3연전에 혈투를 펼친 KIA였다. 그 결과 불펜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조금 과장돼 표현하면 ‘만신창이’였다. 3경기 내내 선발 투수들은 그 누구도 6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반대로 타선은 멀쩡하게 기능하며 포기할 수 없는 경기가 됐기에 자연히 불펜 총력전이 벌어졌다.

1일에는 선발 마리오 산체스가 4이닝 소화에 그친 탓에 총 6명의 불펜 투수가 마운드를 밟았다. 일주일의 시작부터 불펜의 출석 체크가 시작됐다. 2일에도 7명의 투수가 불펜의 문을 열고 나왔다. 사실상 불펜에 있는 전원이 투입된 것이다. 3일 경기에서도 역시 6명이 출격했다. 불펜의 핵심 셋업맨들인 최지민과 전상현 이준영은 사흘 내내 나왔다. 자연히 4일 경기에 나설 불펜 투수가 마땅치 않았다.

6회까지 경기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무조건 6이닝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등판했다”고 밝힌 선발 윤영철이 몇 차례 위기를 잘 넘기며 자신의 목표였던 6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냈다. 타선도 적시에 점수를 뽑으면서 6회까지 7-3으로 앞섰다. 불펜이 한숨을 돌리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남은 3이닝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다. 요새 야구에서 4점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건, 포항 3연전에서 경기를 뒤집어본 KIA가 더 잘 알고 있었다.

KIA 벤치의 선택은, 어쩌면 너무나도 예상이 가능하게 임기영(30)이었다. 선발에서 올해 불펜으로 보직을 바꾼 임기영은 KIA 불펜의 버팀목이나 수호신이었다.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해 숱하게 팀의 승부처를 성공적으로 책임졌다. 이날 경기 전까지 40경기에 나가 57이닝을 소화했다. 리그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 소화였다.

사실 임기영도 지칠 법한 일정이다. 아니 지쳐야 정상이다. 3연투를 하지는 않았지만 1일과 2일 경기에 모두 나갔다. 지난 주말 롯데와 3연전에서도 모두 등판했다. 월요일 휴식일 하루가 끼어 있기는 했지만 5경기 연속으로 경기에 나선 셈이다. 그런 피로가 3일 하루 휴식으로 깨끗하게 풀릴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임기영은 불펜 사정을 보고 오히려 책임감을 불태웠다. 이 4점의 리드를, 자신이 오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임기영은 책임과 헌신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다 ⓒKIA타이거즈
▲ 힘든 일정과 많은 이닝 소화에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임기영 ⓒKIA타이거즈

임기영은 당시 등판 상황에 대해 “멀티이닝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3연투를 한 선수가 셋이기에 불펜에 등판할 수 있는 선수가 한정되어 있었고, 남은 이닝이 3이닝인데다 팀은 주말에 두 경기를 더 해야 했다. 되도록 많은 아웃카운트를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등판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어쩌면 임기영이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사이드암인 임기영은 공이 빠른 선수는 아니다. 구위의 척도 중 하나인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6.41개로 비교적 평범한 편이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존을 살짝 넘나드는 좋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끌고 빗맞은 타구를 만들어낸다. 이 경기에서는 그런 임기영의 특징이 빛났다. 빠르게 승부를 하고자 노력했고, 이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며 총 6개의 아웃카운트를 책임지는 최고의 성과로 나타났다.

7회에는 김태연 노시환 문현빈을 모두 범타 처리했다. 모든 타구를 내야에 가두는 동안 던진 공은 단 7개. 멀티이닝의 체력적인 손실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투구 수가 적지 않아 다음 이닝까지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임기영은 “원래 공격적으로 던지는 성향인데, 한화 타자들 또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기도 했다”고 돌아보면서 “첫 이닝 투구 수가 적어 (7회) 내려올 때 그 다음 이닝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여전히 팀이 7-3으로 앞선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임기영은 이번에도 극강의 효율을 자랑하는 피칭을 했다. 김인환을 좌익수 뜬공으로, 하주석을 1루수 땅볼로, 박상언을 3루수 땅볼로 요리하고 2이닝을 6타자 퍼펙트로 끝내버렸다. 8회 투구 수 또한 7개로 2이닝을 14개로 정리하는 완벽한 투구를 했다. 결국 팀이 7-3으로 앞선 8회 2점을 더 추가하면서 승기를 잡았고, 9회에는 최근 등판 기회가 별로 없었던 김기훈이 1이닝을 정리하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임기영은 5일 현재 시즌 41경기에서 1승1패2세이브11홀드 평균자책점 2.44로 대활약하고 있다. 세이브나 홀드 기록은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승부처마다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는 임기영의 공헌도는 리그 불펜 투수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홀드 상황은 물론 1~2점차로 지고 있지만 승부를 걸어야 할 때, 상대의 가장 좋은 타순과 마주할 때, 심지어 마무리가 무너지거나 불안할 때도 마운드에 올라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했다.

그 결과 벌써 59이닝을 던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0.88에 불과하다. 어마어마한 짠물 피칭이다. 다만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건 시즌 막판의 체력. 일각에서는 ‘혹사’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임기영은 아직 힘이 남아 있다면서 주위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동료들을 위한 책임감을 불태우고 있다.

임기영은 “원래 오래 쉬면 몸이 더 무거워지는 스타일이다. 어제(3일) 하루 쉬고 나섰는데 구위와 몸 상태가 다 좋았던 것 같다”면서 “아직까지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은 없다”고 자신했다. 힘을 많이 들여 투구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베테랑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4일과 같은 상황이 다시 와도, 다른 불펜 투수 하나를 더 아끼기 위해 멀티이닝을 자청할 임기영이다. 임기영의 엔진은 그 책임감을 연료로 아직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 임기영은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KIA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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