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에서 과학 논문으로…한의학의 미래 밝힌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장 2023. 8.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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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장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만난 의사가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대덕연구단지가 있는 우리 동네에서는 환자를 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예전에 있던 곳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얘기하면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면, 이 동네에서는 “그게 가장 최신 논문의 견해입니까?”, “과학적 근거가 확실합니까?”라는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연구기관과 대학이 몰려 있는 대덕단지의 특성상 환자들도 박사 학위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많고, 그런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 진료를 하면서도 최신 논문을 근거로 얘기해야만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실 의학은 가장 정보가 비대칭적인 학문 중의 하나다. 의사와 환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은 매우 불균형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의사는 지시하는 입장, 환자는 따르는 입장이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트렌드가 점차 바뀌고 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질병 정보에 대한 접근이 훨씬 손쉬워지면서 환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질병에 대해선 풍부한 관련 지식을 보유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러다 보니 의사가 환자에게 지시를 할 때에도 근거가 명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가운데 2000년대 이후부터 과학적인 논문을 중심으로 근거를 확립해 나가는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의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의학에서는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문헌적 근거가 중요시됐다.

하나의 처방이 동의보감과 같은 주요한 고전의서에 수록돼 있다는 것은 기독교로 따지자면 성경에 말씀으로 수록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동양학문으로 따지면 사서삼경에 수록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헌적인 근거가 가지는 호소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이를 과학적 근거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 커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에도 수준의 차이가 있다. 한두 가지 사례를 발표한 논문보다는 다수 사례를 발표한 논문이 근거 수준이 높다. 그리고 연구 설계가 잘 된 논문일수록, 또 되도록 많은 논문들의 결과를 함께 분석한 논문일수록 근거 수준이 높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러한 근거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수행하는 ‘한의 표준임상진료지침사업’이 있다. 한의학 분야에서 발표된 국내외 논문들을 수집하고 분석해 임상 진료와 정책의사결정에 반영하기 위한 사업이다.

2016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약 30여종이 넘는 진료 지침을 출간했다. 이렇게 출간된 진료 지침은 임상의들의 진료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보험정책 등 정부 정책 결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근거 중심 한의학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의학에 비해서는 매년 생산되는 논문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하고, 관련 전문가의 숫자도 많지 않다. 재정적으로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서가 아니고는 사업을 수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의학계와의 협조도 원활하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임상 한의학의 발전과 보건의료정책 수립에 있어서 과학적 근거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근거 중심 한의약 분야에 대해 더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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