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는 우주복도 ‘렌털’ 한다는데…개인 청결 열쇠는 ‘이것’

이정호 기자 2023. 8. 6. 0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A, ‘우주복 안감’ 위생 확보 기술 개발 중
우주복 공유하는 미래 달 기지 환경 고려
달에서는 물 부족해 원활한 세탁 불가
미생물 번식 막는 ‘2차 대사물질’ 바를 예정
유럽우주국(ESA)이 추진하는 ‘펙스텍스(PExTex) 프로젝트’에 따라 개발 중인 우주복의 상상도. 안감에 미생물을 퇴치하는 물질이 도포돼 있어 여러 사람이 우주복을 돌려 입어도 위생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ESA 제공

#지구 표면에서 수백㎞ 상공의 우주. 과학자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가 무중력 환경 속에서 둔한 우주복을 입은 채 손으로 공구를 조작해 허블우주망원경의 부품을 교체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수리를 끝낼 때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 러시아가 고장 난 자국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요격한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파편들이 스톤 박사가 임무를 벌이던 우주 공간을 덮친다. 파편 속도는 총알보다 8배 빠르다. 동료들이 희생되고, 타고 온 우주왕복선은 대파된다.

살아남은 스톤 박사는 인근의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대피한 뒤 ISS에 붙어 있는 러시아 소형 우주선으로 옮겨 탄다.

우주선을 몰고 마침내 재앙의 현장에서 탈출하려던 찰나, 문제가 생긴다. 파편에 맞아 손상된 ISS 동체에서 빠져 나온 밧줄이 스톤 박사가 탄 러시아 우주선을 칭칭 휘감은 것이다.스톤 박사는 자신의 손으로 엉킨 밧줄을 직접 풀기로 한다. 그는 러시아 우주선 내에 있던 누군가의 우주복을 입는다. 그리고 해치를 열고 우주로 나간다.

2013년 개봉한 미국 공상과학(SF)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스톤 박사는 긴급 상황에 대처하려고 할 수 없이 남의 우주복을 입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우주복 돌려 입기’가 일상이 될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예측이다.

달에 도시 형태의 거주지가 만들어지고, 많은 주민들이 수시로 기지 밖에 나가 탐사나 건설 작업을 하게 되면 개인이 우주복을 일일이 들고 다니는 일이 번거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복을 렌터카처럼 공유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예측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우주복들의 청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우주복 내부에서 인간의 땀 등으로 인해 미생물이 번식하는 일을 막기 위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이 개발 중인 ‘항균 우주복’의 안감 섬유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항생 물질 기능이 있는 ‘2차 대사물질’이 포함돼 있다. ESA 제공
‘2차 대사물질’로 미생물 퇴치

유럽우주국(ESA)은 최근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우주복 안감을 늘 깨끗하게 유지하는 신형 우주복 개발 계획인 ‘펙스텍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간단하다. 세탁을 안 해도 사람의 신체와 직접 접촉하는 우주복 안감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ESA가 청결 유지를 위해 주목한 열쇠는 미생물 활동을 억제하는 특수 성분인 ‘2차 대사물질’이다. 이를 우주복 안감에 바르겠다는 것이다. 2차 대사물질은 식물 등 특정 생물이 주변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비하는 화합물이다. 항생 물질 기능을 지녔다. 세균을 죽인다는 뜻이다.

ESA가 ‘항균 우주복’ 개발에 나선 것은 앞으로 예상되는 달 상주 기지의 여건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 한국, 일본 등 27개국이 진행 중인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르면 2025년 인간 2명이 달에 착륙한다.

2020년대 말에는 달에 상주 기지가 들어선다. 이 기지에 사는 사람들은 달 표면으로 걸어 나가 수시로 건설이나 탐사를 할 예정이다. 우주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우주복에선 위생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 이유가 뭘까. ESA는 공식 자료를 통해 “우주복은 우주비행사들 사이에서 돌려가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게다가 기지에 장기간 보관될 것이기 때문에 미생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우주복 공유하는 미래 대비

현재는 지구 밖으로 나가는 우주비행사가 극소수이기 때문에 개인마다 따로 우주복을 보유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달 기지가 건설되고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거주민이 많아질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특정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자신의 몸집만 한 개인 우주복을 챙겨서 다니는 건 번거로운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수의 우주복을 주요 거점에 보관하다 필요한 사람들이 돌려가며 사용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게 우주 과학계의 생각이다. 우주복을 렌터카처럼 빌려 쓰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ESA는 여러 사람이 돌려 입어도 땀 등의 이유로 인해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도록 우주복을 관리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우주복은 더러워져도 자주 세탁하기 어렵다. 우주복 자체가 첨단 소재이기 때문에 세탁에 동반되는 마찰이나 습기에 취약할 가능성이 크다. 세탁이 가능한 우주복이 있다고 해도 달에선 물이 귀하다. 달 남극에서 얼음을 캐 물로 만드는 과정에는 특수 장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ESA는 은이나 구리처럼 항균성 광물을 우주복 내부에 코팅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우주비행사의 피부에 닿았을 때 자극을 줄 수 있어 바람직한 수단은 아니라고 봤다. ESA는 “우주복을 오래 사용하면 광물 성분이 벗겨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SA는 2차 대사물질의 항균성은 일단 확인했지만, 내년 3월에 화성 등 다른 천체의 환경을 모사해 건설한 아르메니아의 야전 시설에서 추가 시험을 할 예정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