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 ‘넘치는 자신감’…제왕적 대통령으로 가는 길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입니다. 입헌군주제의 국왕이나 의원내각제의 대통령도 국가 원수의 지위를 갖지만, 상징적·명목적·의례적 지위와 권한을 행사하는 데 그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통령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원수입니다.
국가 원수의 권한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국가와 헌법의 수호자입니다. 둘째, 대외적으로 국가의 대표자입니다. 셋째, 대내적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임명권,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명 임명권 등 다른 헌법기관 구성 권한을 갖습니다. 영전 수여권, 사면권, 법률공포권도 국가 원수로서 갖는 권한입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도 합니다. 국무총리, 국무위원, 감사원장 등 중요한 공직자 임명권을 갖습니다. 군 통수권, 행정정책 결정 및 집행, 행정입법에 관한 권한을 갖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이 이처럼 막강하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는 대통령과 국민, 양쪽에서 다 나타납니다. 첫째, 당사자인 대통령이 자신을 절대왕정의 제왕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둘째, 유권자인 국민이 대통령 한 사람 잘 뽑으면 나라가 잘될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오늘은 당사자인 대통령의 착각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든지 다 할 거 같은 최절정기
1987년 개헌으로 5년 단임제가 정착한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 권력은 ‘2년 반 상승, 2년 반 하락’의 순환 주기로 움직였습니다. 따라서 집권 2년차는 대통령 권력의 최절정기입니다. 집권 1년차는 경험 부족으로 국정 운영에서 미숙함이 드러날 수도 있지만, 집권 2년차가 되면 대통령의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 뭘 좀 알 것 같다”, “모든 분야에 대해 이제 내가 가장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체로 이 시기에 굵직한 정치적 결단을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월 3당 합당을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11월 세계화를 선언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7월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6월에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주선했습니다.
집권 2년차에 시련에 봉착한 대통령들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에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요?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정치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 스스로 지난 7월6일 청년정책점검회의에서 “제가 경험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서 정말 10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쥐게 됐는데, 다 여러분 덕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6월15일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기자들이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수행원 논란과 관련해 물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처음 해보는 거기 때문에 공식, 비공식 이런 걸 어떻게 나눠야 될지”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집권 2년차부터입니다. 지난 5월2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기자가 대통령의 ‘스타덤’에 관해 물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 자체가, 스타라는 것이 딴게 뭐 있겠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인지도죠. 그러니까 대통령이라는 직업 자체가 스포츠 스타나 또는 문화예술계 스타처럼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더 잘할 수 있겠죠. 그런데 모르겠어요. 저도 시작할 때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스타성 있는 일, 이게 약간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 지나면서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말이에요, 정치 처음 시작할 때는 티브이(TV) 토론 인터뷰한다고 방송국을 가니까 분장실로 데려가서 막 하는데 그때 내가 정치 괜히 시작했구나,(일동 웃음) 나는 살면서 헤어드라이어 한번 안 써본 사람인데, 수건으로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던 사람인데, 얼굴에 로션도 발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1년 지나면서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말이 핵심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2년차 자신감이 붙은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1년차에 비해 확실히 말이 많아졌습니다. 언론이 뭐라고 지적하든 괘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잘한 건 내 덕, 잘못한 건 남 탓
지난 8월1일 국무회의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른바 ‘철근 누락 아파트’의 책임을 이전 정부에 떠밀었다는 기사는 읽거나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철근 누락 아파트뿐만 아니라 폭우 피해, 폭염 피해, 무차별 칼부림 사건, 교권 확립 등 여러 사안에 대해 깨알 같은 당부와 지시 사항을 쏟아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입니다.
“폭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해에는 5월부터 지방자치단체에 폭염 대책비를 교부하고, 신속한 집행을 요구한 바 있다. 어려운 분들의 전기요금 부담 절감을 위해 월 4만3천원의 에너지바우처를 지급하고, 경로당에 월 12만5천원의 냉방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주 정부는 73개 복지사업의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고인 6.09% 인상했다. 가장 어려운 분들께 지원하는 생계급여 지원 대상도 7년 만에 확대했다. 지난 정부에서 생계급여는 5년간 합쳐서 20만원이 인상된 반면, 이번 조치로 내년 한해만 올해 대비 13.16%, 21만3천원이 인상된 것이다. 지원 대상 역시 10만명이 새롭게 포함되었다.”
“지금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감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 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다.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한 것이다.”
“학생 인권을 이유로 해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저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교권 확립을 강조했고, 국정과제로 채택했으며, 관련 법령의 개정도 6월 말 마무리한 바 있다.”
어떻습니까?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 중에는 꼭 필요한 내용도 많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내용도 많습니다.
특히 어떻게든 전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업적은 깨알처럼 자랑하려는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바로 이런 것을 만기친람이나 ‘깨알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국무총리나 각 부처 장차관들이 해야 할 말까지 대통령이 몽땅 다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국무위원들이나 대통령실 참모들은 받아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개조돼야 한다는 ‘착각’
말이 많으면 틀릴 위험도 커집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감리가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철근 누락 시공이 확인된 15개 공공주택단지 가운데 13개 단지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준공 완료됐거나 부실공사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습니다.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감리가 윤 대통령 취임일인 2022년 5월10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이뤄졌는지, 그 이후에 이뤄졌는지는 정확히 따져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아파트 부실공사까지 전·현 정권 네 탓 공방, 모든 걸 정쟁화 고질병”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겠습니까. 중앙일보도 “‘철근누락’ 아파트, 이게 여야가 싸울 일인가”라고 사설을 썼습니다. 아파트 부실공사의 책임을 문재인 정부 쪽으로 떠밀려고 시도한 윤 대통령이 체면을 크게 구긴 셈입니다.
윤 대통령의 사고방식은 제왕적 대통령, 그중에서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제왕적 대통령의 사고방식 그대로입니다. ‘능력 있고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나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이제 대한민국이 확 바뀌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년 임기의 대통령을 새로 뽑을 때마다 나라가 새로운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개조된다거나 개조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 졸렬하고 유치한 발상입니다.
과거 대통령 가운데 여러 사람이 그랬고, 윤 대통령도 지금 그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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