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단' 정신질환자 중대범죄 잇따라…"치료지원·관리해야"
정부도 사태 심각성 깨닫고 적극적 관리 나서
일부선 "정신질환자, 잠재적 범죄자 낙인" 우려도
(전국종합=연합뉴스) 분당 흉기 난동 사건, 대전 교사 피습 사건 등 스스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약 복용을 끊은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중대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이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신질환자가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치료 중단' 정신질환자, 전국서 중대범죄 일으켜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최모(22)씨는 중학생인 2015년부터 5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3년 전부터 치료를 중단했다.
치료를 중단하기 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차도가 없다 보니 (스스로 판단해) 병원을 끊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를 해하려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하고, 이를 통해 그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고 범행했다", "서현역에 나를 스토킹하는 구성원 다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범행 장소로 정했다" 등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
범행 수일 전 부모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혼자 살던) 집에서 스토커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최씨는 지난 3일 오후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앞에서 차로 시민들을 들이받고,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다.
지난 4일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도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의사로부터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입원은 물론 치료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를 중단했다가 자신의 가족까지 해를 끼친 사례도 있다.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1월 21일 오전 1시께 광주 북구 양산동 주택에서 A(44)씨는 "잠을 자라"고 권유하는 어머니(64)를 둔기로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괴물로 보였다"고 진술하는 등 피해망상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원인 미상의 정신적 문제 등으로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지만, 범행 전에는 상당 기간 약을 먹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 부산에서는 조현병 약을 임의로 끊은 60대 남성이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을 실랑이 끝에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
"정신질환 치료 계속하도록 사회가 도와야"…정부도 나서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들의 중대 범죄가 이어지면서 이들이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심리적인 방어막이 없이 방치된 상태가 된다"며 지속적인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약물 치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심각한 증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질환자들이 어려움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가족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나서야 한다"며 "개인 인권에 다소 반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융통성을 발휘해 치료를 우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제라기보다 치료를 돕는 개념으로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예컨대 정신질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는지 건강보험 명세를 통해 확인해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돕는 방안 등이다.
약물 복용을 자의적으로 중단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약 처방을 수개월 치씩 한 번에 내주는 게 아니라, 기간을 제한해 자주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재는 정신질환자의 관리나 치료가 개인이나 가족의 자유의사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며 "정신질환 치료에 대해 개인 자유권을 얼마나 존중해야 할지, 국가가 어느 정도로 개입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정신질환과 관련한 전반적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전반을 검토하고, 치료 지원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신질환자 치료의 실효성을 높일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타인에게 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 낙원 공동간사는 "정신질환이 범죄의 원흉이라는 식의 프레임이 생기면 우울증과 조울증 등 많은 정신질환을 앓고 사는 전국민의 대다수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영훈 권준우 박주영 박성재 김영신 박형빈 천정인 기자)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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