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조차 외면하는 여자축구. 딸에게 축구를 권하고 싶은가[김세훈의 스포츠IN]
1무2패(1득4실)로 조 최하위로 16강 진출 실패.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에서 기록한 성적이다.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FIFA 랭킹 2위 독일과 비기며 8년 만에 본선 승점을 따낸 건 잘했지만 72위 모로코에 패하는 등 상향 평준화한 냉정한 현실도 마주했다.
한국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건 줄어드는 선수 수다.
2019년 국제축구연맹이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대한축구협회에 등록한 여성 선수는 4200명(동호인 선수 포함)이다. 그중 엘리트 선수는 1524명이다. 그런데 올해 4월 기준 엘리트 선수 숫자는 1487명으로 줄었다. 반면, 세계 상위 랭킹 국가들은 선수 숫자부터 압도적으로 많다. FIFA 랭킹 1위 미국은 950만명이다. 미국 학교들은 여학생들에게 축구를 사실상 국가 정책으로 장려한다. 여성 지도자만 2만명이 넘고 여성 심판 비중도 전체의 24%에 이른다. FIFA 랭킹 2위 독일은 등록선수가 19만7575명이다. 노르웨이,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모두 10만명을 훌쩍 넘는다. 캐나다(29만87명), 호주(14만1487명)도 많다. FIFA 랭킹 11위 일본에 등록된 여성 선수들은 무려 39만명이다. 일본축구협회가 2000년대 초부터 남녀축구 동반 성장을 주요 정책으로 실행한 결과물이다.
이번 월드컵에 나선 한국 평균연령은 28.9세다. 32개 출전국 중 가장 높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25, 26세 전후다. 일본은 24.8세로 32개국 중 네 번째로 어리다. 물론 콜린 벨 한국대표팀 감독이 신예 발굴에 소홀했지만 사실 쓸만한 젊은피가 별로 없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1000만명이 사는 서울에 있는 엘리트 여자초등학교 축구부는 딱 한 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서 여자축구 저변도 준다고? 변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남자 축구 선수들은 왜 늘어난다는 말인가. 결국, 여자축구 저변 확장에 신경을 쓰지 않은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연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협회는 간간이 여자축구발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장기 전략을 세우고 강력하게 밀어붙인 적이 없다. 여자축구 담당 부서도 만들었다가 없앴다. 협회가 만든 엘리트 여자대회도 거의 없다. 여자연맹도 기존 대회만 개최하는 데 급급할 뿐 중장기 계획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연맹의 무능력, 무개념, 무책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협회와 연맹 간 협치 구조도 미약해 효율적인 협력을 기대하는 것도 힘들다.
국내 남자축구계도 여자축구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 프로 1,2부뿐만 아니라 3,4부 구단 중 엘리트 여자팀을 운영하는 곳은 수원FC, 경주 한수원 등 두 곳 뿐이다. 유소년팀도 남학생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몇몇 여학생만 끼워 넣는 게 고작이다. 여자 유소년팀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구단도 거의 없다. 유럽에서는 남녀팀을 동시에 운영하는 축구단들이 적잖다.
현재 국내 축구판에서는 아버지는 감독으로, 아들은 선수로 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녀, 모녀가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축구인들조차 딸을 축구 선수로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하지 않고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도둑 심보다. 한국축구는 여자축구에 소홀했고 그게 월드컵 부진으로 이어졌다. ‘골때녀’ 등 축구 예능, 여대생 클럽대회가 여자축구에 대한 선입견과 이미지를 바꾸는데 나름대로 기여했다. 하지만 어릴 때 소녀들이 축구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은 지금도 만들어진 게 없다.
부모가 어린 딸에게 축구를 권유하고 싶어질 때, 소녀들이 어린 나이에 아무 곳에서나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을 때, 초중고에서 축구를 즐기는 여학생들의 함성이 커질 때, 그때야 비로소 한국 여자축구가 ‘연명’과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성장과 발전을 논하는 건 사치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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