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덕에 한국산이 인기?...베트남 한류, 있지만 없다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8. 6.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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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2] ‘베트남 라이징’ 저자 유영국 작가

2018 스즈키컵 준결승전에서 박항서 감독사진과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베트남관중. [연합뉴스]
“파파(박항서 감독)가 그립다. 다시 모셔올수 없을까”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현지 인기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독 교체후 베트남 대표팀의 성적이 그리 신통치 않자 아직까지 박감독을 그리워하는 축구팬들도 있는것으로 알려졌죠.

재임당시 그는 ‘박항서 매직’이라 불리며 베트남 한류열풍의 끝판왕으로 통했습니다. 한국 기업들 뿐 아니라 베트남 로컬 기업들도 그를 내세운 마케팅 효과를 노렸습니다. 이에 국내 일각에선 “박항서 신드롬 덕에 한국산 제품이 잘팔린다”는 보도도 나왔었죠.

하지만 아모레퍼시픽과 나이스그룹에서 베트남 업무를 총괄했던 유영국 작가에 따르면 한국에서 알려진 베트남 한류와 실제 현지 한류에는 다소 온도차가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에 한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업 하려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베트남에 한류는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Q.베트남 한류가 박항서 감독 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분이 크다 들었다. 정말인가?
베트남 로컬제품 광고 모델로 등장한 박항서 감독.
A: 박항서 감독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를 홍보모델로 내세운 기업과 제품 이미지가 좋아졌고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도 있고요.

하지만 박 감독 덕분에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은 1990년대 시작된 동남아 한류의 발상지거든요.

베트남이 본격 개방하고 다양한 해외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세대가 1990년대생들입니다. 이들이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즐기며 어린시절을 보낸 원조 한류 세대죠. 때문에 베트남에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한국문화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던거고, 박감독 덕분에 더 좋아졌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소위 ‘박항서 효과’ 때문에 한국산 옷이나 화장품 같은 제품이 잘 팔린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예전에 베트남 식당에서 목격한 일인데 한국분들이 박감독이랑 친구다, 박감독을 좀 안다면서 밥값 좀 깎아줄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도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한국 이미지가 좋다보니 제품을 선호하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베트남인들이 꼭 한국산 제품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베트남 뿐 아니라 지금 아세안 시장 전반적으로 비슷한 양상인데 ‘메이드 인 코리아’의심할 필요없는 품질 정도지 반드시 사야 하는 제품까진 아니거든요. 베트남도 상류 사회는 보통 한국에서 생각하는 부자 이상입니다. 그들에게 한국산은 나쁘진 않지만 자기들과는 무관한 제품 정도에요.

중산층과 그 이하 소비자들에게 한국산은 확실히 인기가 있습니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품질이 좋기 때문이죠. 이말인즉, 유럽, 미국, 일본 제품들 보다는 저렴하다는 뜻입니다. 이들도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고 상류층은 확실히 유럽과 미국산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한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겁니다.

Q.일본 국대감독 출신 트루시에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 성적과 평가는 어떤가?
지난 5월 기자회견중인 필립 트루시에 감독.[VNEXPRESS]
A: 아세안에서 축구 1위는 원래 태국인데, 박감독 영입후 베트남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아세안 A클래스에 태국과 나란히 들어갔습니다. 예전에는 베트남이 아세안 국제대회에서 결승전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박감독 재임때 우승도 여러번 했고요.

솔직히 지금 대표팀 경기력은 베트남 국민들 기대치에는 많이 못 미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승도 했던 대회인데 8강에도 못간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우리 파파 왜 내보냈냐, 파파 다시 불러와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박감독을 파파라고 부르는 베트남인들이 많거든요.

박 감독이 퇴임하고도 베트남 대표팀 경기 참관은 계속 한다고 합니다. 베트남 기자들이 대표팀 성적과 관련해 박감독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는 걸 본적이 있는데요. 박감독은 자기가 답변할 사항은 아닌것 같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답변 하더군요.

지금 감독이 바뀌고 베트남 축구 성적이 신통치 않은 건 분명 사실입니다. 다만 지금 취임한지 얼만 안됐고 지도방식이 다른것 같으니 박감독 말씀처럼 아직은 좀 더 지켜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도 과거 히딩크 감독때도 그렇고 처음에는 안좋다가 나중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적이 있으니까요.

Q.‘베트남의 서울대’라는 하노이 국립대에서 가장 입결 높은 학과가 한국어과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인가?
A: 베트남에서 한국어과 인기가 높은 건 사실입니다. 왜냐? 급여가 높은 곳에 취업이 잘되기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베트남에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하면서 한국어를 잘하면 좋은 일자리에 갈 수 있거든요. 현재 베트남에 한국어과가 34개 정도 되는데, 전세계에서 한국어과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베트남 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있고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는 아닙니다. 왜냐면 일단 베트남 대학은 한국처럼 종합대학이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단과대학체재로 돼 있습니다. 하노이 국립대학도 종합대학이 아니라 하노이 법률대학, 인문사회대학 이렇게 따로 따로 있거든요.

그리고 베트남에서 외국어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영어입니다. 그 다음이 이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순으로 갑니다. 이 순서는 취업순이라고 보면 됩니다. 해당 언어를 잘하면 좋은데 취업하기 좋은 순서죠.

Q.베트남서 한국 이미지가 좋다고 강조했는데, 베트남전으로 인한 반한감정은 없나?
2018년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 정상회담서 악수하고 있는 양국 정상.[연합뉴스]
A: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일단 개인적으로 한국이 시민사회 차원에서 과거 베트남 중부지방에서 있었던 안타까운 일들에 대해 지원하려하고 밝히려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합니다.

그런데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공식적으로 다루고 싶어하지 않아 합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싶어했지만 베트남 정부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한국 정부가 코이카와 ODA를 통해 베트남에 병원, 학교 같은 인프라 건설을 꾸준히 지원해왔는데 특히 중부지방에 집중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전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왜? 베트남 정부가 언급을 원하지 않고, 꼭 그것 때문에 지원한다는 것도 보기 좋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피해 지역 당사자들중에는 뼛속 깊이 감정이 남아있는 분들이 있겠죠,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전쟁때 중부지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릅니다. 배우거나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이에요.그래서 적어도 오프라인상에서는 반한감정이나 반한류 정서 같은건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Q.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베트남은 그런 한국 보다도 대외의존도가 높다고 들었다. 미중 대립 격화라는 대외환경에 베트남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A: 베트남은 반중정서가 뿌리깊습니다. 역사적으로 1천년간 지배 받았던 적이 있고 불과 40년전에는 침공 당한 적도 있으니까요. 남중국해 분쟁도 있지만 중국이 메콩강 상류에 설치하고 있는 댐때문에 피해보는 대표적 국가가 베트남이에요.

다만 현실적 이유 때문에 국가를 운영해야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여론과 감정으로 대응하진 않습니다. 베트남의 무역 의존도는 180%가 넘어서 한국보다 2배 이상 높은데, 현재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이 미국, 그리고 두번째가 중국입니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입국 이기도 해서 중국과의 교역에 문제가 생기면 경제적으로 크게 힘들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에 있죠.

최근 국가주석이 바뀌면서 베트남이 친중노선을 타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이 친미 국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친중국가가 될수도 없습니다. 가령 친중성향을 0이라고 하고 친미성향을 10이라고 한다면, 베트남은 중간인 5를 지향합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필요하면 5.5정도로 갔다가 중국이 필요하면 다시 4.5 정도로 오는 식으로 중간 범위에서 왔다갔다 해요.

그래서 베트남의 외교를 ‘대나무 외교’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2016년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이 자국 외교를 대나무에 빗댄적도 있고요. 한쪽으로 쏠려서 부러지는 일 없이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10년 넘게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도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거죠.

예컨데, 지난 6월 베트남의 3대 항구 도시인 다낭에 미국 핵항모 도널드 레이건함이 입항했습니다. 미 항모가 베트남에 입항하는게 이번이 3번째인데, 다낭항은 베트남전때 미국이 해병 2개 대대를 상륙시키기도 했던 상징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 이틀전에는 다낭 남쪽 나트랑 인근에 있는 깜난 항에 헬기 18대를 실을 수 있는 이즈모 구축함 등 전함 2척을 거느린 일본 자위대가 들어왔어요. 베트남이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중인 섬들이 바로 이 다낭하고 깜난 부근에 있습니다. 이 요충지에 미항모와 일본 구축함을 입항시켰다는 건 유사시 미국, 일본과 함께 중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또 도널드 레이건호가 입항한 바로 그 날에 팜 민 찐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어요. 리창 총리를 만났고 시진핑 주석과도 회담하면서 지난해 합의했던 협력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고 해요. 베트남의 이런 행보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매우 중요하지만, 핵심 안보에 대해 선을 넘는다면 어떻게 할것인지 확실히 보여주려는 메시지 입니다.

최근 일각에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중국에서처럼 뒷통수를 맞을수 있으니 투자처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는데요. 현재 한국 기업과 자본이 아세안에서 베트남에 유독 집중돼 있기 때문에 다각화 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합니다. 다만, 베트남은 아세안의 한류 발상지이자 지난 30년간 한국기업들이 잘 일궈놓은 친한국 시장인 만큼, 그 가치를 명확히 알고 절대 경시해선 안된다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다음회에선 미국통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하상응 교수에게 ‘위기에 빠진 미국 민주주의, 극복 가능성과 한국에의 시사점’에 대해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은 매일경제 월가월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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