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질환자 급증…폭염 속 작업중지 없는 건설현장 괜찮나

최서윤 기자 2023. 8.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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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 중지 권고 지켜지지 않아…소규모 현장 열악"
공사기간이 곧 비용인 현실…전문가 "실효성 있는 '당근과 채찍' 필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2일 인천국제공항 제2합동청사 확장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뙤약볕 아래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3.8.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지난 4일 오후 2시 30분쯤 노원구의 한 신혼희망타운 공사현장. 섭씨 33도에 습도 52%, 체감온도 35도 뙤약볕에도 작업이 한창이다. 10분만 서 있어도 땀에 흠뻑 젖는 더위지만 현장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여기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시공사 소속 정모씨(54)는 "지금 우리 현장은 본공사가 아니라 철거 작업 중이라 대부분 기계로 일하고 있는데 본공사 중인 현장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말 덥고 힘들 것"이라고 했다.

협력사 소속 유모씨(40)는 "겨울엔 영하 10~15도 이하로 내려가면 작업중지를 하기도 하는데 여름엔 작업중지를 하는 법이 없다. 이렇게 더울 땐 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 건설현장 노동실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형 건설사들은 연일 온열질환 예방 캠페인을 홍보하지만, 소규모 현장 등 실상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게 건설노조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작업중지 요청권 등 현장 목소리를 보다 반영하고 업체 측의 추가 소요 비용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 노원구 한 신혼희망타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4일 오후 2시 30분쯤 작업이 한창인 모습. 2023. 8. 4/뉴스1 ⓒ News1 최서윤 기

◇물-그늘-휴식 3대 기초수칙…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현장도 부지기수 고용노동부는 8월 한달간 폭염 대응 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물-그늘(바람)-휴식'을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3대 기초수칙으로 강조하고, 작업강도가 높고 폭염에 취약한 건설현장 등의 건강·보건관리에 신경써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혹서기 정부 권고에 따라 온열질환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철저히 대비 중이라고 연일 홍보 중이다. 컨테이너 사무실 내 에어컨과 제빙기, 구호물품을 비치하고 휴게시간 준수 등 각종 보건안전캠페인을 진행 중이란 설명이다. 대표이사가 직접 현장을 챙긴 사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사기간이 곧 비용인 현장에서 권고 지침은 말뿐 실상은 열악하다는 게 노조 측 지적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2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5도가 넘어도 작업 중지에 대해 건설사는 관심이 없다"며 "아침 조회 시간에만 형식적으로 이야기할 뿐, 폭염기 노동안전보건은 여전히 말뿐"이라고 질타했다.

건설노조가 지난 1일 오후까지 3159명의 건설노동자를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25%는 작업현장에 휴게실이 없다고 답했다. 현재 작업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휴게실이 '50m 이내'라는 응답은 24%에 그쳤고, '100m 이내'가 21%, '200m 이내'도 8%였다.

또한 현장에서 물조차 지급하지 않거나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건설노조는 전했다. 폭염특보 발령시 규칙적으로 쉬어야 하지만 그럴 수 없고, 온도가 35도 이상일 경우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옥외작업을 중지하게 돼 있지만 대부분 별도 중단 지시 없이 작업을 계속한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정부 권고는 왜 지켜지지 않을까. 정씨는 "여름에도 온도가 너무 많이 올라가면 작업중지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권고에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내용이 다 권고일 뿐 강제가 아니다"면서 "하도업체들은 장비를 월세로 임대하는데 작업중지를 하면 돈을 날리는 셈이라 지키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유씨는 "대형시공사의 현장은 그나마 규정이 지켜지는 편인데 소규모 공사같은 정말 열악한 현장이 많다. 그런 곳은 더워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며 "업체들이 건설노조 가입하면 안 쓰려고 하기 때문에 정말 열악한 현장의 근로자들은 건설노조와도 관련이 없고 작업자들도 다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건설노조가 고발한 작업현장 실태보다 더 열악한 현장도 부지기수란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7월 26일부터 지속되는 폭염으로 신고된 온열질환자 수는 628명(8월 4일 기준),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수는 18명이다. 같은 날 부산에서는 사하구 한 공장에서 40대 남성 작업자가 온열질환 추정 사망하기도 했다. 남성은 경련을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졌는데, 소방당국 출동 당시 체온 43도 이상에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19일 코스트코에서 더위 속에 카트 정리 작업을 하던 20대 남성 노동자 사망 이후 한 달 반만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폭염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전모에 얼음물을 담아 붓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건설현장 폭염기 온열질환 사망재해는 예고된 것이라며 폭염대책 법제화를 촉구했다. 2023.8.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시혜적 아닌 노동자 시각 접근으로 실효성 높여야…필요 시 법 개정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대책을) 업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시혜적인 문제로 접근하는데, 반대로 현장 근로자들이 작업중지 요구권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날씨가 35도 이상이라고 해도 현장마다 상황이 다르고 작업중지가 필요한지는 현장 작업자들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한때 서울시가 공공발주 현장에 대해 행정지도 차원에서 하도급 호민관 제도를 만들어 작업중지 요구권 부여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실제 노동현장 온열질환 사망자도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건설현장은 공공발주 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공공사업장에서 먼저 시범을 보이고, 위반 시 행정 제재나 민사적 배상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필요하면 법 개정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며 "민간도 요즘은 대형사를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이 중시되고 있어 안전과 노동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동참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현장 폭염도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주택 부실공사 사례와 마찬가지로 '제도적 개선'보다 '실행 역량'에 중점을 두고 접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폭염 시에는 콘크리트를 부으면 열이 발생해 너무 심한 폭서기엔 타설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강행하는 게 다반사다. 우중 타설이 콘크리트 강도에 문제를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관계 법령과 제도는 충분한데 '안 걸리면 된다'는 인식이 문제"라면서 "원칙과 규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당근과 채찍'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폭염 대책도, 무량판 등 문제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돈이 드는 문제인 만큼 규정 준수 시 소요되는 추가 비용을 공사비에 충실히 반영해주는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며 "그 이후에도 위반사항이 나오면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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