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지키기 위해 ‘성전환’ 했다?…이 동물의 놀라운 능력[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8. 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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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9] 조직의 위기였습니다. 극단적으로 무너져 버린 성비 때문이었습니다. 새끼를 부양할 아비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지요. 조직을 부양하던 리더 수컷이 사고로 죽어버린 이후였습니다. 암컷만 득실득실한 이 공동체에 미래는 없어 보였습니다. 다른 조직에서 수컷을 데려오자니 미덥지 않고, 이대로 살자니 끊겨버릴 후사가 걱정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헤르마프로디투스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징표를 모두 가진 인물로 묘사되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헤르마프로디투스 석상. <저작권자=Jastrow>
마지막 수컷이 죽어버린 지 한달 후, 조직의 암컷 한 마리 모습이 어쩐지 이상합니다. 몸집이 굵어지고 면상도 늠름해진 모습에선 수컷의 향기가 느껴지면서입니다. 암컷에게 치근대면서 넉살을 떨는 모습도 영락없는 사내였지요.

이윽고 산란기가 찾아오자 암컷들이 새끼를 낳습니다. 수컷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 녀석들이 독수공방을 참지 못하고 외부에서 제 짝을 찾았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암컷들의 아비는 바로 늠름해진 ‘암컷’이었습니다. 암컷이었던 그녀가 수컷으로 성전환을 단행한 것이었습니다. 조직의 연명을 위해 성별을 바꿔버린 눈물 나는 스토리. 어류인 ‘혹돔’의 이야기입니다.

“나 남자게, 여자게?” 일본 화가 가와하라 게이가가 1823년 그린 치어 시절의 혹돔.
성전환이 가능한 혹돔 이야기
혹돔은 온대 지역을 선호하는 물고기입니다. 대한민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하지요. 몸길이는 평균 60cm에서 최대 1m까지 자랄 정도로 제법 몸집이 큰 녀석입니다. 강태공들에겐 “혹돔 비늘 한 장보고 30리도 간다”고 할 정도로 ‘진미’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이 녀석의 참모습은 따로 있습니다. 성별 전환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선 이놈들의 조직을 살펴봅니다.

“두목이라면 이 정도는 생겨야지 암” 혹돔 사진. <저작권자=Totti>
혹돔은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린 ‘하렘형’ 일부다처제로 살아갑니다. 유능하고 힘 센 수컷 한 마리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암컷들에는 진화적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렘형’ 일부다처제로 살아가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지요.

문제는 수컷이 죽어버렸을 때입니다. 다른 곳에서 수컷을 새로 들여오자니, 검증의 기간이 오래 걸리지요. 외부인을 내부로 들이는 일은 언제나 두려움이 앞서는 법이니까요. 혹돔 무리는 난관을 묘수로 해결합니다. 무리 중 가장 힘이 세고 지도력이 있는 암컷이 성전환하는 것이지요.

“나도 과거에는 부드러운 여인이었다네.” 수컷 혹돔. <저작권자=Totti>
성전환한 암컷은 영락없는 수컷의 모습을 합니다. 머리에 혹이 생기고 아랫턱이 두터워지지요. 위의 사진을 보시지요. 누가 봐도 싸움꾼입니다. 다른 무리의 수컷이 암컷들을 건드리려고 하면 사납게 맞서지요.
이들은 왜 성전환을 단행하는가
성별 전환의 이득은 확실합니다. 수컷 우두머리를 잃고도, 그다음 가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암컷이 새로운 우두머리로 올라서기 때문입니다. 조직도 보호하고 양질의 후손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지요. 물론 리더가 된 암컷의 성별은 이미 수컷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인구절벽’, 아니 ‘어구절벽’에 대응하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라고 해야 할까요.

용치놀래기 같은 경우도 흑돔처럼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을 단행합니다. 옅은 붉은색을 띠는 암컷이 어느 순간 초록의 수컷으로 늠름하게 유영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둘의 모양이 너무 달라 다른 종의 물고기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지요.

흰동가리는 수컷으로 자라다가 가장 큰 개체가 암컷이 되는 자성선숙이다. <저작권자=Metatron>
암컷에서 수컷으로만 성전환이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수컷이 암컷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아서입니다. 흰동가리(A.K.A 니모)의 경우에는 먼저 수컷으로 성숙했다가 점점 커지면 암컷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지요. 수컷 중 가장 크고 리더십이 있는 개체가 암컷으로 변해 조직에서 가장 멋진 놈을 골라서 번식합니다. 이 역시 가장 생명력이 좋은 개체를 남기기 위한 자연의 ‘위대한’ 선택이지요.
어류에게 흔한 트랜스젠더
‘성전환’이 이루어지는 건 인간세계에선 드문 일이지만, 물고기의 세계에선 자주 일어납니다. 물고기 중 481종이 성전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 69종은 수컷에서 암컷으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양방향 전환을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 인간이 의술의 힘을 빌려서 가까스로 하는 일들을 이들은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이지요.
“필요한 사람, 아니 물고기가 성별을 바꾸면 되지 허허.” 성 전환이 일어나는 어종인 청소놀래기. <저작권자=Philippe Bourjon>
이들의 성전환이 쉽게 일어나는 배경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의 성세포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세계에서 어릴 때는 암컷이면서 수컷이다가(암수동체) 특정 시기에 성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자웅동체인 셈인데, 성별이 차례로 발현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이 이미 날 때부터 성세포가 정해져 있는 것과는 명확히 다른 것이지요.

어종마다 성전환은 다른 경로를 거쳐 갑니다. 암컷으로 먼저 성숙했다가 수컷이 되는 자성선숙(용치놀래기), 수컷으로 먼저 살다가 나중에 암컷이 되는 웅성선숙(감성돔)이 있지요, 용치놀래기 역시 조직 내에서 수컷의 필요성이 커지면 일부 개체에서 성전환이 일어납니다. 산호초에 사는 비늘돔류도 수컷이 사라지면 암컷 중에서 가장 센 녀석이 성전환을 감행합니다.

파랑 비늘돔은 암컷으로 시작해 수컷으로 성별이 전환된다.
실험으로도 이러한 성전환은 쉽게 목격됩니다. 청줄청소놀래기 수컷 두마리를 한 수조에 넣었더니, 한 녀석이 암컷으로 변화한 것이지요. 두 마리 중 몸집이 작은 녀석이 암컷으로 변화합니다. 이 녀석은 알을 낳으면서 후사를 이어가지요.
자연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성이라는 건 하늘이 주신 운명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인간의 관념에선 더욱 그렇지요. 주어진 성별이 천성이라는 생각을 물고기가 깨뜨립니다. 이들은 조직을 위해 스스로 성별을 바꾸면서 거친 바닷속에서 긴 세월을 생존해 왔습니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명제가 자연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셈입니다.
“아빠예요, 엄마예요?” 영화 ‘니모를 찾아서’ 한 장면. 흰동가리는 성전환을 하는 어종 중 하나다. <사진 출처=IMDB>
<세줄요약>

ㅇ혹돔 무리에서 수컷이 죽으면 대장 암컷이 성전환한다. 후사를 남기기 위해서다.

ㅇ물고기 중 481종이 성전환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에서 암컷으로도 가능하다.

ㅇ이들은 ‘인구절벽’ 아니 ‘어구절벽’에 대응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ㅇ카도타 타츠루 외, 물고기의 자웅동체 짝짓기 시스템, 스프링어,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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