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일면식도 없는 산책 커플에…한밤의 '묻지마 칼부림'

윤왕근 기자 2023. 8. 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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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살인미수로 철창행…항소심서 원심보다 징역 2년 늘어나
전조 증상 있었는데…사건 10여일 전 산책 시민 폭행·출동 경찰에 욕설
강원 속초 묻지마 칼부림 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 2021년 9월 27일 인적이 드문 영랑호 산책로 모습.(뉴스1 DB)

(강원=뉴스1) 윤왕근 기자 = # 2021년 9월 26일 밤 11시 즈음. 여름이 지난 강원 속초 영랑호엔 시원한 가을 밤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책을 나온 한 20대 연인도 호숫가를 걸으며 가을밤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 있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짓던 이들은 이때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조용한 산책로에서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에게 '흉기 피습'을 당할 줄은.

# 20대 초반 미국으로 떠났던 A씨(37)가 귀국해 속초로 돌아온 것은 2021년 5월 16일.

미국에서 믿고 의지했던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A씨는 배신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A씨는 인터넷에 살인을 다룬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살해 도구, 살인과 관련한 통계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지마 살인'을 하기로 마음 먹은 A씨는 2021년 9월 26일 밤 흉기를 들고 영랑호 산책로에 나갔다.

인적이 드문 밤의 산책로. 오후 11시 46분쯤 A씨 눈에 띈 것은 산책을 나온 연인 B씨(28)와 C씨(20·여)였다.

A씨는 이들 연인을 화풀이 '표적'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조용히 다가간 A씨는 먼저 B씨의 목 부위에 한 차례 휘둘렀다. 이어 C씨의 목도 공격했다.

A씨는 남성 B씨가 자신을 제압하려 하자, 재차 흉기를 휘둘러 B씨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A씨는 이들이 강하게 저항하며 112에 신고하자 현장을 빠져나갔다. 피해자들에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주변 CCTV 등을 통해 A씨를 추적, 사건 발생 이튿날인 27일 오전 7시 45분쯤 자택으로 돌아오던 A씨를 긴급체포 했다.

아닌 밤중 묻지마 칼부림에 B씨와 C씨는 목과 손 부위 등에 힘줄과 신경이 끊어지는 등 큰 상처를 입어 봉합 수술 등의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붙잡힌 A씨는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렇게 재판정에 선 A씨의 혐의는 '살인미수' 뿐만이 아니었다. 폭행과 모욕,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가 더해졌다.

이 같은 추가혐의는 A씨가 벌인 '묻지마 칼부림'의 전조 현상이었다.

칼부림 사건 12일 전인 2021년 9월 13일 오후 8시쯤. 속초지역 한 산책로에 나간 A씨는 팔꿈치로 산책을 하던 D씨(60대)의 가슴을 때리고 달아났다. 물론 이유는 없었다.

30여분 뒤 산책로에서 A씨를 다시 마주친 D씨가 폭행에 대해 항의하자 다시 주먹을 휘둘러 때렸다.

그 30분 간 같은 산책로에서 또 다른 폭행도 저질렀다. D씨를 때리고 달아난 A씨는 산책을 하던 E씨(40대·여)에게도 똑같이 팔꿈치로 팔뚝을 치고 달아났다.

시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갑자기 A씨는 "니가 뭔데 나를 부르냐, X까고 있네 돼지XX가.", "돼지XX야 비켜", "요즘 경찰들은 돼지XX도 뽑냐? ○○XX들" 등의 욕설을 경찰관에게 퍼부었다.

이밖에도 미국에서 귀국한 후 코로나19 격리시설에서 생활하던 중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 병역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그렇게 기소된 A씨에게 검찰은 20년을 구형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속초지원은 A씨에 대한 징역 6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불특정 시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며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식 범죄는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 엄중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 점, 편집성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사건의 영향을 준 점과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 판결에 불복한 A씨와 검찰 측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각각 항소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전경.(뉴스1 DB)

그렇게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A씨는 원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10년은 그대로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행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은 인터넷에 살인이나 살인도구를 검색하는 등 범행을 사전에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점 등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원심 공판 절차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았고, 이 법원의 공판 절차가 진행되는 중 중에도 구치소 내에서 위반 행위로 감치 처분을 받기도 했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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