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 2만원, 근무는 24시간…MZ 세대 “軍 간부 안한다” [박수찬의 軍]
한때는 직업군인이 청년층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병사보다 월등히 더 많은 급여를 받아 목돈을 모을 수 있었고, 병사들을 지휘하며 배운 리더십 등을 전역 후 재취업에 활용할 수 있었다. ‘어차피 군대 가야 하니 학군사관(ROTC)이나 부사관을 지원해보자’는 인식이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요즘은 다르다. 초급간부를 구성하는 ROTC와 학사장교, 부사관은 지원율 감소에 직면하고 있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ROTC 후보생 추가모집에 들어갈 정도다.
군 간부는 평시에는 병사와 부대를 관리한다. 유사시 전선에서 싸우면서 병사들을 지휘한다. 특히 초급 간부는 군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간부 계층으로 업무가 많다.
일과 책임이 많은 만큼 처우도 상응하는 수준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병사 급여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인상되어 초급간부 봉급과 격차가 줄어들면서 초급간부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
지난 3월 공개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입대한 병사가 18개월 복무하면 급여 86만원(월평균)과 개인 적립액만큼 정부가 추가 지원하는 매칭지원금(월평균 34만2027원)을 합쳐 월평균 121만5689원을 받는다.
지난 1월 임관한 하사(1호봉)는 월평균 기본급 178만7701원과 수당 80만5164원을 합쳐 세전수령 기준 259만2865원이다. 월평균 초과근무수당(28시간)과 세금 및 군인연금 기여금을 뺀 순수령액은 평균 258만557원 정도다.
국방부는 2025년까지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병사와 초급간부 급여 격차가 수십만원으로 축소될 수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최근 국방부와 육군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 간부의 평일 당직비는 1만원, 휴일은 2만원이다. 2019년 이전에는 이보다 낮았다.
군 간부 당직비는 유사직종 공무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일반공무원은 평일 3만원, 휴일 6만원이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평일 3만원, 휴일 10만원으로 군 간부보다 최대 5배 많다.
군 간부의 당직근무는 일반공무원 숙직보다 강도가 훨씬 높고 책임 범위도 넓다. 지휘관과 참모를 대신해 실제 작전과 야간순찰을 하고 주둔지 경계근무와 병력통제를 실시한다. 당직근무 도중 발생하는 각종 상황도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평일 15시간, 휴일 24시간 동안 잠들지 못한 상태에서 당직근무를 하고 받는 수당 1만~2만원은 식비 충당조차 빠듯한 수준이다.
지난해 인상됐던 주택수당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주택수당은 1995년에 8만원이었다가 27년만에 16만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최근 금리와 월세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부족하다. 일정 기간마다 근무지를 옮기는 직업군인에게 주택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수당이 현실성이 없다면 간부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변수는 예산 편성 과정이다. 초급간부들의 불만이 속출하자 국방부와 각 군은 당직근무비 현실화를 서두르고 있다. 당직근무비를 일반공무원 수준으로 인상해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직근무비의 경우 육군 등은 간부 근무강도와 사기를 감안, 점진적 인상 대신 내년에 일반공무원 수준으로 단번에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군 간부 당직근무비는 367억원. 일반공무원 수준으로 단번에 인상하려면 올해보다 2배 이상 많은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국방부의 당직근무비 요구액이 1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군인 주거환경 개선 차원에서 주택수당 증액도 시급하다.
일각에선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당국이 지출 증가율을 낮추려 한다면, 국방부가 원하는 만큼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복무중인 초급간부들의 현실과 민원 내용이 SNS 등에 공개되는 상황과 맞물려 장교나 부사관을 지원하려는 청년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초급간부 복무여건 개선 세미나에서 권현진 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학군·학사 장교 경쟁비(선발인원 대비 지원자의 비율)가 2015년의 절반에 머물렀다.
학군 장교는 7년만에 경쟁비가 4.8에서 2.4로, 학사 장교는 5.8에서 2.6으로 급감했다.
민간 모집 부사관 지원자는 2020년 이후 하락세다. 지난해 장갑차, 야전포병, 전술통신, 화생방 특기의 경쟁비는 0.5~0.9로서 지원자가 선발정원에 미달했다.
초급간부 처우와 복무환경에 대한 불만과 복무 기피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됐던 것이었다. 다만 군과 정부가 사회 환경 변화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문제였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쉽게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것도 과거보다 용이한 셈이다. 초급간부의 불만이 잇따라 터져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민간 사회와 산업의 급속한 발달로 군대에서 반드시 간부로 복무하지 않아도 인생을 설계하는데 큰 지장이 없게 됐다. ‘일찍 전역해야 사회 적응이 쉽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사관학교 출신조차도 조기 전역을 생각하는 상황이다.
군 주둔지와 민간 거주지 간 생활여건 격차는 초급간부의 사기와 복무의지를 꺾는 또다른 요인이다.
직업군인 A씨가 최근 SNS에 남긴 글은 간부들이 군을 떠나려는 이유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예산 확보와 법령 정비 없이는 군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기는 어렵다. 국방부가 기획재정부, 국회 등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작업에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복무여건 개선 차원에서 군 주둔지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한미군처럼 대규모 병력이 한데 모여서 주둔하는 도시형 주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병과 그 가족 수천명이 한곳에서 지내면, 소비력과 수요도 많아진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병원, 마트 등의 생활 인프라를 보다 쉽게 유치할 수 있다. 복무여건도 자연스레 개선된다.
초급간부가 된 청년들은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귀한 20대의 시간을 국가에 바친 사람들이다. 국가는 초급간부에게 그들의 희생에 걸맞는 대우를 할 의무가 있다.
초급간부들은 애국심과 희생정신,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열악한 조건을 지금까지 버텨왔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민간인, 병사와의 비교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더 버티기 어려운 사람들은 군을 비판하거나 아예 떠나버리고, 간부로서 버틸 자신이 없는 입대 전 청년들은 군인 대신 다른 직업으로 발길을 돌린다.
초급간부의 부족한 수당, 열악한 주거 조건 등은 국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군인이 싸우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군대는 전투력을 잃는다. ‘힘에 의한 평화’의 시작은 첨단무기가 아닌, 초급간부 사기 진작이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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