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칼부림에 살인 예고로 보안 강화한 백화점… 고객도 직원도 불안
방검복 입고, 삼단봉·가스총 찬 보안요원
“순찰 강화만으로 어떻게 수상한 사람 잡겠나”
AK 분당점, 일부 매장 영업 중단… “출근 꺼려져”
업계 “보안 강화 이상의 조치는 어려워”
지난 4일 찾은 경기 성남 AK백화점 분당점은 공항을 방불케 할 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스무명은 되어 보이는 경찰과 보안 직원들이 시계탑이 있는 중앙 광장과 2층 난간을 서성였다. 모두 귀에 인이어(In-ear)를 끼고, 까만 방검복에 팔 보호구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모퉁이에는 사복을 입은 채 광장을 주시하는 인원도 있었고,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원형 방패를 손에 쥐고 순찰을 하는 경찰도 눈에 띄었다. AK백화점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보안 인력을 강화했다”면서 “방검복은 물론 삼단봉과 가스총도 지급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백화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서울의 한 백화점은 주요 출입구마다 보안 직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삼단봉에 가스총, 보안(Security)이라고 적힌 까만 조끼를 입은 직원들은 주요 출입구에 서 있거나, 지하철 연결 통로가 있는 지하 1층과 주 출입구가 있는 1층 매장들을 계속해서 순찰하고 있었다.
AK백화점 분당점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뒤, 이 백화점 인근의 지하철역에서 살인을 벌이겠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예고 글이 확산하면서 고객 불안을 덜기 위해 보안 조치를 강화한 것이다.
이 백화점 보안 직원은 “백화점이 개장한 오전 10시부터 1층에 3명, 지하 1층에 3명의 보안 직원이 주요 출입구를 지키며 수시로 순찰을 하고 있다”면서 “거동이 수상한 사람 등을 파악해 상황실에 계속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정장을 입고 근무를 하고 있으나, 지금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안전 조끼에 삼단봉·가스총을 휴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백화점들도 백화점 내 보안을 강화했거나 강화하고 있다. 지역 관할 경찰과 핫라인을 구축해 사건·사고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고, 출입구에 무장을 강화한 보안 인력을 배치하고 CC(폐쇄회로)TV 상황실 모니터도 강화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월드몰과 롯데타워를 운영하는 롯데물산의 경우 보안 인력을 기존 70~80명에서 130명으로 늘렸다. 지난 3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잠실역에서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특히, AK백화점 분당점을 비롯한 분당 지역과 강남·잠실 지역의 백화점들의 경우 인근의 지하철역에서 살인을 저지르겠다는 예고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 올라오면서 경찰도 배치됐다.
살인 예고 글의 대상이 된 성남 분당 지역에는 경찰 인력 98명이 배치됐다. 경찰은 또 다중밀집지역 274곳을 선정해 경찰력 1200명을 투입했으며, 완전무장한 경찰특공대 전술요원(SWAT)도 전국에 99명을 배치했다.
◇ AK 분당점, 금요일 저녁에도 썰렁… “출근도 두려워”
백화점들은 물론 경찰까지 나서 시민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은 물론 직원들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서울의 한 백화점에 장을 보러 나온 박모(28)씨는 “아이 먹일 분유가 떨어져서 하는 수 없이 나왔다”면서 “살인 예고 글을 알고 있어 집 밖에 나오는 것도,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고 했다.
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양송민(22)씨는 “백화점에서 보안 인력을 강화해 조금은 안심이 됐다”면서도 “백화점 인근 지하철역에서 살인을 예고한 글에 대해 알고 있어 출근하기 두려웠다”고 했다.
칼부림 사건이 벌어진 AK분당점의 경우 금요일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썰렁한 모습이었다.
AK분당점은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던 1층의 매장 대부분이 이날 매장 미운영 안내 팻말을 세워둔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고, 지하1층 식품 매장에는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은 모습이었다.
식품 매장에서 일하는 한 점원은 “금요일 저녁이면 고객들로 붐비는데 오늘은 이곳을 찾는 고객 수가 평소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과일과 주스를 파는 점원은 “지하 1층에서 근무하고 있어 어제 사건을 보지는 못했지만, 무서운 마음에 출근하기가 꺼려졌다”면서 “평소라면 거의 다 팔렸을 과일이 잔뜩 남아 내일 주스를 내리는데 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매주 AK백화점 분당점을 방문한다는 홍모(29)씨는 “백화점은 넓고 유동인구도 많은 데다 지하와 지상으로 출입구가 모두 있는데, 보안팀 순찰 강화 정도로 어떻게 수상한 사람들을 잡아낼 수 있겠냐”면서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만한 예방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백화점들이 보안 인력 강화보다 강력한 조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다, 보안 인력을 늘리는 것마저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고객들의 불안 해소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보안 직원은 대부분 협력 업체 직원들인 경우가 많다”면서 “사건이 벌어졌거나 예고 글 등으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즉각적으로 보안 인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백화점 업계 관계자도 “고객을 상대로 소지품 검사 등을 하는 곳은 없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면서 “ 무더위로 대형 실내 매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기간에라도 고객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보안을 강화하고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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