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암 환자도 임신 포기할 이유 없다”

김명지 기자 2023. 8.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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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엽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美 생식의과학연구학회 학술지 첫 아시아인 편집장
2017년 재발성자궁내막암 환자 출산 성공시켜
제 12회 인구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구승엽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1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진료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경숙(48) 씨는 지난 2017년 재발성 자궁내막암 환자로는 세계 최초로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다. 자궁내막암은 자궁 몸통 내벽에 암세포가 자라는 병인데, 치료가 어렵지 않은 암으로 통한다. 몸에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임신이다. 이 씨는 2009년 난임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았다가 암 진단을 받았다. 33살의 나이였다. 다행히 암은 초기였지만, 자궁을 들어내면 임신할 수 없고,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난임 치료를 하게 되면 암세포를 자극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의료진은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수술을 권유했다. 하지만 이 씨는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했다. 서울대병원을 찾아간 것도 ‘아이를 낳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구승엽 교수는 자궁과 난소를 보호할 수 있는 약물 항암 치료를 하면서 난임 시술을 병행했다.

항암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좋아지면 시험관 아기용 난자를 채취해 임신을 시도했다. 난자를 채취하려면 여성 호르몬 수치를 끌어 올려야 하므로, 암 치료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구 교수팀은 환자의 배란을 유도할 때는 여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을 썼다. 이 씨는 7번 난자를 채취하고, 6번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그렇게 5년 만에 암을 모두 치료하고 40세에 첫 임신에 성공했다. 암 진단을 받은 지 7년 만이고, 결혼 13년 만이었다.

자궁내막암을 극복하고 임신 출산을 한 이경숙씨가 경기 의정부 자택에서 결혼 13여년 만인 2016년 7월에 얻은 첫아들 최장우군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다./조선DB

그때 태어난 아기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구 교수는 난임 치료와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일 ‘제12회 인구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구 교수는 앞서 지난 2020년 미국 생식의학회 공식 학술지이자, 생식의과학 분야 최고의 권위 국제학술지인 ‘리프로덕티브 사이언스(Reproductive Sciences)’의 편집장으로 선출됐다. 아시아인 중에서 이 학술지의 편집장이 된 사례는 구 교수가 처음이다.

구 교수는 “이 씨는 사례와 달리 요즘에는 ‘아이 낳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늘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결혼 나이가 늦어지며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난임 치료가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 교수를 이달 초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궁내막암 난임 환자의 임신과 출산을 성공시켰다. 어떻게 가능했나.

“환자의 의지가 강했다. 시험관 시술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암세포가 없는 정상 자궁도 최적의 조건이 돼야 착상이 된다. 그런데 암 환자가 임신을 시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두 번 시도하고 겁을 내면서 ‘치료 포기하겠다’고 하기 마련인데, 이 환자는 달랐다. (암세포가 퍼질까 걱정돼) ‘이제 그만하자’는 의사에게 오히려 부탁했다. 정말 용감한 분이다.”

-자궁내막암은 자궁을 적출해야 완치된다고 들었는데, 이 환자는 어떻게 적출 없이 암이 완치되고 임신까지 할 수 있었나.

“연구진들이 수많은 변수를 생각해 조건을 만들어서 여러 차례 착상 시도 끝에 성공했다.”

-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자궁내막암은 암세포가 퍼지면서 자궁 내막이 두꺼워진다. 이 환자의 경우 암세포가 근육층이나 바깥으로 번지지 않은 초기 상태여서 약물 치료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틴을 써서 자궁 안쪽 두꺼운 부분을 얇게 줄인 후 착상을 시도하는 식이다. 난자를 꺼내, 얼리고, 이렇게 냉동한 난자를 꺼내서 수정하고 자궁에 이식하는 과정을 7번 거쳤다. 그렇게 자궁 내 임신이 성공했다.”

지난 5월 13일 서울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에서 쌍둥이, 삼둥이 어린이들이 풍선 선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구의학연구소는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분만한 쌍태아 이상 다태임신 가족을 초대해 일일 놀이동산을 열었다.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는 이번 행사 취지에 대해 '저출산 시대에 출산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암 환자는 자연임신이 어려운가.

“자궁내막암은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대체로 한다. 자궁이 없으면 임신이 아예 불가능하다. 유방암 환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몸속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독성이 강한 항암 치료를 하게 되고, 암 재발을 막기 위한 호르몬 치료를 하므로 생식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하기 전에 난자를 채취하고, 암이 완치된 후 시험관 아기를 시도한다.”

-일반 암 치료를 해도 임신 가능성이 떨어지나.

“항암제에 닿으면 난자가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하기 전에 난자를 꺼낸다.”

-난자는 한 달에 한 번만 배란되지 않나.

“과배란 과정을 거쳐서 최대한 많이 꺼낸다. 항암제 때문에 난소 기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단순히 항암제가 독해서라기보다는, 부인암 환자의 경우 암 재발을 막기 위해서 난소의 기능을 억제하는 약을 5년 이상 쓰게 된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서 또 배란이 힘들어진다. "

구 교수는 “비 올 때 강수 확률이 20% 정도 되면 우산을 갖고 나가느냐”고 물었다. ‘갖고 나가겠다’고 대답하자 구 교수는 “암 환자의 임신 출산 대비도 똑같다”고 말했다. 특정 암의 치명률이 20%라며, 살 확률이 80%나 된다고 판단하면 ‘임신 출산’을 대비한다고 설명했다.

-유방암을 극복하고 아이를 낳은 환자도 있나.

“유방암 완치 후 자녀를 둘 낳은 환자도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은 암 치료하는 선생님과 상의해서 결정하게 된다. 암 치료가 먼저기 때문이다. ”

-자궁경부암의 경우는 어떤가.

“자궁경부암은 비교적 쉽다. 자궁의 입구, 즉 경부에 암세포가 자라는 경우다. 이때는 입구 부분만 잘라낸 후 자궁을 묶어 놓는다. 이후 시험관 아기로 임신하게 된다. 다만 분만을 못 하니까 제왕절개를 하게 된다.”

-최근 환자 동향은 어떤가.

“10여 년 전만 해도 난임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난임 클리닉에 다니는 것을 숨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옛날에는 아이가 뭐 중요해 일단 환자가 살아야지 그랬다. 지금은 오면 무조건 ‘아기 낳으실 거예요?’라고 물어본다. 의학이 발달해서 생존율이 높아졌고, 아이가 중요해졌다. 암 환자가 아니라도 난자를 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요즘엔 ‘아이 낳을 거냐’고 묻지 않으면 나중에 원망을 듣는다. ‘선생님 수술 전에 왜 그 얘기 안 해줬어요’라고. 하지만 임신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

-어떤 의미인가.

“시험관 시술을 할 때 배아 등급을 1~5로 매긴다. 1등급이 가장 좋고, 5등급이 나쁜 경우다. 44살 환자가 5등급 배아를 갖고 시험관 시술을 했는데, 한 번에 성공했다. 그런데 30대 초반에 1등급 배아로 세 번을 시도해도 임신이 안되는 경우가 있었다.”

서울대의대 구승엽 산부인과 교수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진료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건 사실인 것 같다. 하루에 환자를 120명 정도 외래 진료를 한다. 이 가운데 절반이 미혼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병은 고칠 수 있지만, 수술하면 임신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절반 이상이 ‘아이 안 낳아도 되니까 그냥 치료해 주세요’라고 대답한다. 결혼한 젊은 부부 중에서도 ‘아이 낳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늘었다. 안타깝다.”

-왜 그렇다고 보나.

“비혼 부부들을 보면 ‘아이를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어요’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줬으면 좋겠다. 출산 장려금을 최대 1000만원씩 준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답이 아니다. 그 돈으로도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사실 한국만큼 난임 시술 환경이 좋은 곳이 없다. 미국에서는 시험관 한 번에 1000만원이 넘는다. 한국은 200만~300만 원이면 시작할 수 있다. 정부 지원도 된다.”

-아기를 낳고 싶어 하지 않은 시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신 출산 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경제적 논리가 사회를 지배한 것이 답답하다. 세상에 ‘돈 돈 돈’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생명은 돈과 비교할 수 없는 놀랍고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도 돈 없이도 잘 살지 않았나. 과거엔 병원에 온 할머니들이 농사지었다고 수박 한 덩이씩 주고 가셨다. 그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닌가.”

-난임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사례는 어떤 환자들인가.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는 환자도 있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의학의 발달을 믿고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동물실험에서 인공 자궁을 만들어 출산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사람의 자궁도 만들어서 출산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그게 가능한가. 상용화되려면 수십 년 후의 일 아닌가.

“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제대로 연구만 진행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의학박사(MD)들이 추진하는 연구개발(R&D) 프로젝트 지원을 확대했으면 좋겠다. 연간 5000만원의 연구비가 없어서 연구를 중단한다. 미국은 대부분의 제약 바이오 R&D를 의사들이 주도한다. 동물실험은 기초과학에서 아주 가능하지만, 환자에게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건 의사가 해야 한다. 환자를 직접 대면해 치료제를 쓴 적이 없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업은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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