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특공대' 투입하면 '묻지마 흉기난동' 사라질까[이승환의 노캡]
치료 중단시 '극성기'에 강력범죄 가능성…'예방' 집중해야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5일 오후 6시쯤 서울 송파구 잠실역에는 여느 때와 달리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경찰특공대 장갑차 1대와 기동대 버스 3대가 역 앞 도로에 배치된 상태였다. 방탄조끼로 무장한 경찰관들은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주변 놀이동산으로 향하던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화 촬영 현장이나 놀이시설로 착각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장갑차와 기동대, 중무장 경찰관 모두 '실제 상황'이었다.
잠실역에서 살인하겠다는 '테러 예고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이 화창한 주말에 경찰력이 대거 투입됐던 것이다. 이날은 35도 안팎의 폭염이 이어졌으나 흰색 구름이 파란 하늘에 자국을 새길 정도로 청명한 토요일이었다.
◇살인 예고 글 최소 42건…윤희근 "경찰력 낭비"
경찰이 온라인에서 확인한 살인 예고 글은 최소 42건으로 추정된다. 누리꾼의 '철없는 장난'으로 취급해 넘기기 힘든 글들이다. 서현동 흉기 테러(3일)와 고속버스터미널 흉기 소지자 체포(4일), 대전 고등학교 교사 피습(4일)이 잇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7월21일) 후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경찰은 살인 예고지역과 다중이용시설 등 전국 15개 경찰청 36개소에 소총·권총으로 이중무장한 경찰특공대원 127명을 전진 배치했다. 전술 장갑차 10대도 추가 투입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5일 잠실역을 찾아 특별치안활동 현장을 점검했다.
윤 청장은 "본인은 무책임하게 글(살인 예고 글)을 올리지만 이에 따라 많은 국민이 불안에 떨고 불필요한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가 현장에서 가장 실감했던 것도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특정 사건에 경찰력이 쏠리면 재난 등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때도 집회·시위에 경찰력이 집중되면서 참사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토요일 경찰이 온통 살인 예고·흉기 난동에 신경쓰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다른 대형 사건이 터졌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 끔찍한 일이다.
◇전체 범죄율 일반인보다 낮지만…강력사건 범죄율 '5배'
장갑차와 특공대는 사실 예방보다 '사후 대응'에 가깝다. 조현병 등 신경정신질환이 있던 '흉기난동 피의자'들의 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없었는지 이제라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에서 흉기로 14명을 다치게 한 최모씨(23)는 전형적인 피해망상을 보였다. 그는 체포됐을 당시 "사람을 살해해 경찰의 관심을 끌어 나를 괴롭히는 스토킹(과잉접근행위) 조직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신림동 흉기난동범 조선(33)도 경찰 조사에서 우울증이 있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A씨(20대)도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지만 살인 비율은 일반인의 5배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진주 방화살인사건' 같은 사례에서 나타나듯 환자 대부분은 약을 끊고 치료를 중단한 후 극단적인 상황을 일으켰다.
반대로 말하면 제때 치료와 관리만 한다면 특공대를 투입해 막아야 할 이들의 강력범죄 가능성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다. 문제는 병동과 전문 인력 등 의료 인프라가 한참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국 조현병 환자(약 50만명) 중 치료와 관리를 받는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가가 전반적으로 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환자 퇴원 후에도 지역 사회와 연계해 관리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만일 환자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그의 가족이 아닌 국가 책임하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정신건강의학계의 요구다. 이 경우 나랏돈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장갑차나 특공대보다 실질적이고 안전한 사전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난 살면서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다"
영화 '조커'에서 외톨이 남성 아서 플렉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치닫는 시점은 그가 시의 정책예산 삭감으로 정신건강 치료를 중단했을 때였다. 직장 동료들과 한참 어린 10대들에게 수시로 무시당하고 어린시절에는 어머니의 학대에 시달렸던 아서는 어느 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난 살면서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어." 잠실역 취재 내내 흉기 위협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나들이했던 소소한 일상과 행복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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