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양공주를 멋대로 규정하는가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2023. 8. 6.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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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주는 외국군 주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을까? 아니다. ‘에레나가 된 순이’부터 ‘상하이 릴’, 그리고 최신작 〈전쟁 같은 맛〉에서는 다양한 그녀들의 모습이 재현된다.

한국 텔레비전 역사상 최고 시청률(65.8%)을 기록한 프로그램은 KBS 2TV의 드라마 〈첫사랑〉(1996~1997)이다. 무명 배우 손현주가 밤무대 마스터 주정남 역할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극중에서 부른 노래가 인기를 얻자 앨범도 냈다. 그중 ‘내 이름은 순이’라는 노래가 히트했다.

KBS 2TV 드라마 <첫사랑>에서 주정남 역할을 맡은 손현주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KBS <첫사랑> 화면 갈무리

“내 이름은 순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그냥 십팔번으로 통한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뜬소문도 거짓이에요.”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다 알 만한 멜로디에 순이의 사연을 붙였다. ‘원곡’은 따로 있다. 박대림 작사·정종택 작곡·금진호 노래로 1991년에 발표됐다. 손현주의 리메이크로 히트하고, 성인가요계의 스탠더드 넘버가 됐다. 2009년 한 일간지 기사는 이렇게 노래를 설명한다. “첫 출생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월남전쟁 때 군대에서 여러 제목과 다양한 가사, 각기 상이한 멜로디로 불린 구전가요가 1991년에서야 비로소 음반으로 대중을 만나게 됐다.”

아니다. 변형됐다고는 해도 분명 ‘원곡’이 있다. 손로원 작사·한복남 작곡의 ‘에레나가 된 순희’다. 실향민 가수 한정무가 1954년에 발표했고, ‘청실홍실(1956)’로 유명해진 안다성이 1958년에 다시 불러서 히트했다. 순희를 순이로 고쳤다.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냐.”

시집갈 꿈을 꾸던 열아홉 살 순이는 피난 온 항구에서 에레나가 되어 술을 따른다. 헬렌, 엘렌 같은 서양 여성 이름이 일본을 거치며 에레나가 됐다. 한정무의 원곡은 “오늘 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더냐”로 끝난다. 그러니까 에레나는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다. 탱고 리듬이 흥겨운데 슬픈 엘레지다.

양공주는 외국군 주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을까? 아니다. 한국전쟁기, 미군은 군인의 성욕 해소를 위한 위안소 설치를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기꺼이 응했다. 민간업자에게 위탁해서 특별구역 기지촌을 만들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식민 잔재를 청산한다며 공창제를 폐지한 1948년 이후 남한에서 성매매는 원천 불법이었다. 미군은 법 바깥에 있었다. 보건부 예규상 ‘위안부’는 “위안소에서 외군을 상대로 위안 접객을 업으로 하는 부녀자”로 규정됐고, ‘전염병예방법 시행령’상의 정기 성병검진 대상자로 지정·관리됐다. 성병에 걸리면 낙검자 수용소에 감금됐다. 모두 국가범죄다. 사회학자 박정미의 논문 ‘건강한 병사(와 ‘위안부’) 만들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딘가 익숙한 스토리 같은가? 맞다, 바로 일제의 전시 위안부 제도다. 전범국에서 저런 걸 배웠다. 수많은 병사들이 에레나에게서 주린 욕망을 채웠다. 그렇게 에레나는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가족을 먹였다. 종종 폭력에 노출됐고, 감금됐고, 때로 목숨을 잃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누군가는 짐작하리라. 누이를 침략자·점령군으로부터 지키지 못한 식민지·약소국 못난 남성의 울분과 콤플렉스가 담긴 글이겠거니.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단지 민족적 수치심 같은 말로만 축소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 슬픈 노래, 엘레지의 ‘원형’을 찾아 조금 더 올라가보자.

1951년, 일본에서는 쓰무라 겐(津村謙)의 노래 ‘상하이에서 돌아온 리루(上海帰りのリル)’가 크게 히트한다. ‘에레나가 된 순이’의 원조다. 탱고 리듬의 도입부는 물론 첫 소절의 멜로디도 거의 똑같다. 가사의 정조도 비슷하다. 요코하마의 캬바레에 있는 남성 화자는 상하이에서 만난 고급 창기 리루를 그리워한다. 전쟁 중 헤어진 리루가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본 사람이 있는지 애타게 묻는다.

에레나의 원형 ‘상하이 릴’을 찾아서

한국전쟁이 터지고 부흥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패전의 아픔과 대륙 아시아를 향한 노스탤지어가 중첩된 노래는 일본인의 심금을 울렸다. 제국 일본 대중문화의 이국 판타지에서 로맨스의 대상은 늘 현지 여성이었다. 전후라는 사정을 반영한 것일까, 여기서는 일본 여성이다. 대신 그녀에게 리루, 그러니까 릴(Lil, Lily의 애칭)이라는 서양 이름을 붙여서 이국성을 가미했다.

서양 이름을 가진 일본 여성이라는 설정은 징후적이다. 때는 미군을 상대하는 특수 위안부 ‘팡팡(パンパン)’의 시대였다. 패전 직후 일본 정부는 미군의 성욕을 해소하고 일반 부녀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설치했다. 위안부는 팡팡걸, 줄여서 팡팡이라고 불렸다. 전시 위안부를 운영한 정부다웠다. 이렇게 위안부의 ‘효능’을 체험한 미국이 몇 년 후 한국 정부에 위안부 공급을 요구했다.

패전 직후의 일본 사회를 분석한 역작 〈패배를 껴안고〉에서 역사학자 존 다우어는 팡팡을 시대의 상징으로 꼽는다. “미군 병사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거나 미군 지프차에 개선장군처럼 올라타 질주하는 ‘팡팡’은 민족적 자존심뿐만 아니라 특히 남성의 자존심을 송곳처럼 후벼팠다.” 팡팡은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화된 민족주의를 뒤흔드는 고통스러운 불안의 상징이었다.

에레나도 리루도 모두 팡팡의 이름이었다. 대륙 지배의 기억을 환기하는 상하이 여인 리루는 시대의 불안을 반영함과 동시에 옛 추억으로 그 불안을 위무하려는 심리적 보충물은 아니었을까? 공전의 히트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풋라이트 퍼레이드>에는 ‘릴’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Filmsite.org

하지만 왜 하필 릴(리루)이었을까? 대공황기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명작 〈풋라이트 퍼레이드(Footlight Parade)〉(1933, 로이드 베이컨 감독) 속에 릴이 등장한다. 영화는 짧은 뮤지컬 공연물 프롤로그를 만드는 감독 체스터 켄트(제임스 카그니 분)의 일과 사랑을 그린다. 화려한 프롤로그 공연 세 편이 영화에 삽입된다. ‘허니문 호텔’ ‘폭포 가에서’ 그리고 ‘상하이 릴’이다.

상하이 클럽에 모인 남녀가 남자들의 우상 상하이 릴에 대해 노래한다. “그 동양 여자는 우리 업계에 해롭다”라며 백인 직업여성이 한탄한다. 미국 해병대원들이 들이닥치고 싸움이 일어난다. 해병대원 켄트가 릴(루비 킬러 분)을 찾아내고 함께 ‘나는 새 연인이 생겼어요(I got new lover)’를 부른다. 켄트가 외친다. “상하이 릴!” 릴이 화답한다. “나는 새 연인이 생겼어요.” “당신은 작은 악마요, 그저 나비 같기만 해요.” “오, 제발 저를 큰 기선에 태워줘요. 당신과 함께 바다 건너로 데려다줘요.” “나도 그러고 싶소. 하지만 저 큰 배는 내 것이 아니라오.” 함께 춤을 추며 막이 내린다.

<상하이 특급>에는 전설적인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상하이 릴’로 등장한다. ⓒWikipedia

‘상하이 릴’은 서구 남성의 성애화된 동양 환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여기에도 선행하는 참조점이 있다. 바로 전해에 나온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영화 〈상하이 특급〉이다. 전설적인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직업여성 상하이 릴로 등장한다. 이 이름의 원조다. 열차가 군벌에게 나포되고 릴은 옛 연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바친다. 모파상의 단편 〈비계 덩어리〉를 모티프로 했다.

강한 나라의 남성이 현지 여성과의 사랑을 꿈꿀 때, 약소국 남성은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 영화 〈오발탄〉(1961, 유현목 감독)에서 상이군인 경식에게 연인 명숙이 애원한다. “오늘 밤이래도 물 떠놓고 결혼해요.” 경식은 고개를 젓는다. “난 이렇게 병신이야. 퇴물이야.” 어느 날 밤 경식은 거리에서 미군과 어울리던 양공주와 부딪쳐 넘어진다. 세상에, 명숙이다. 절면서 명숙을 뒤쫓다 흐느껴 운다.

수치심과 동정심을 넘어서

윤흥길의 단편 〈돛대도 아니 달고〉(1977)에는 양공주 에레나 박이 등장한다. 사회사업과 대학생이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그녀를 면담한다. “주둔군이 있는 곳에 위안부가 따르는 건 역사적 사실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 흔한 말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셈이죠. 미스 박은 〈비계 덩어리〉라는 소설을 읽으신 적 없습니까?”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해주는 대학생이다. 에레나가 상처투성이 알몸을 보여주며 외친다. “이런 몸뚱일 받아줄 만한 자리가 아직두 사회 어느 구석에 남아 있을 것 같나요? 새로운 삶 좋아허시네! …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해요.” 당황한 청년은 사례금을 내놓고 떠나려 한다. “너 이 ××, 아까 비곗덩이 얘길 들먹거렸지? 주둥이로만 나불대지 말고 어디 몸으루 실천해봐! 병신이 아니라면 요 모양 요 꼴로 된 몸뚱이두 받아들여보란 말야!” 청년은 도망치고 포주는 에레나의 뺨을 갈긴다. 에레나는 깔깔깔 웃는다.

소설 속 대학생은 선의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흔한 지식인 남성의 표상일 것이다. 양공주를 역사의 ‘불가피한’ 희생양이라고 멋대로 규정한다. 상처투성이 에레나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용기는 없다. 새 삶을 살아야 할 자는 누구일까?

1948년 이후 남한에서 성매매는 원천 불법이었지만 주한미군은 법 바깥에 있었다. ⓒ연합뉴스

무능하고 뒤틀린 남자들 사이에서라도 어쨌든 살아야 했다.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 매기 언니가 목걸이도, 구두도, 옷도 다 준댔어.” 〈중국인 거리〉(오정희, 1979)에서 열두 살 소녀 치옥은 선언한다. ‘나’의 급우 치옥의 언니, '양갈보' 매기 언니는 백인 혼혈 딸 제니를 키우며 흑인 병사와 국제결혼을 꿈꾸다가 살해당한다. 이들에게 미국 물건과 남성은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동아줄이다. 그 줄이 종종 올가미처럼 삶을 죄었다.

이제 〈비계 덩어리〉 이야기를 해보자. 1870년 보불전쟁기, 승합마차를 타고 탈출하던 일행이 프로이센군에게 제지당한다. 일행 중 ‘비계 덩어리’로 불리는 매춘부가 있다. 장교는 통과를 금지하면서 그녀와의 동침을 원한다는 눈치를 준다. 귀족, 민주주의자, 수녀들로 이뤄진 일행이 성스러운 희생을 설득한다. 결국 그녀가 응하고 난 다음, “다들 이 여자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는 태도”로 돌변한다. “저 계집 옆에 앉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양공주는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밀려났다고 해도 좋다. 이 땅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산 이들이 있다. 우리가 망각한 이야기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그레이스 M. 조의 최근작 〈전쟁 같은 맛〉(2023)에서 그렇게 떠난 양공주의 후반부 삶이 펼쳐진다.

지은이의 어머니 ‘군자(1941~2008)’는 양공주로 일하다가 백인 남성을 만나 미국에 왔다. 배 타느라 부재한 남편 대신 두 자녀를 열심히 키운다. 어느 날 조현병이 찾아온다. 병이 심각해지면서 딸은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다. 책은 엄마의 환청 속에서 식민지와 전쟁, 기지촌과 군사주의, 인종차별로 얼룩진 한·미·일 현대사의 상처들을 읽는다.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었던 어머니의 존재”에서 존엄함을 찾는다. 양공주들은 열심히 살고 싸웠다. 2022년 9월, 대법원은 기지촌 운영의 위법성과 인권침해 등 정부의 책임을 물어 옛 위안부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꼬리표를 붙여 정의하고 동정할 사람들이 아니다.

지난해 9월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국가배상소송 선고’ 기자회견에서 관련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책을 읽다가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짝꿍 한 명은 흑인 혼혈이었다. 부모는 미국으로 가고 할머니와 살았다. 영어를 못한다고 친구들이 놀리면, “우짜꼬, 클났대이” 하며 웃는, 가난해도 유쾌한 친구였다.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겼다. 미국에 갔을까?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에는 학교에 백인 혼혈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동네 아줌마들이 모였는데, 그 아이 엄마도 왔다. 미군 남편이 군에서 쫓겨나면 용두산공원에서 아이스케키를 팔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을 흉내내며 “아이스케키! 아이스케키!” 하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그 아이와 딱 한 번 눈빛이 마주쳤다. 철봉대에 혼자 매달려 있는 아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잠시 세상이 정지한 것 같았다. 그 눈빛을 시리게 기억한다. 그레이스 조의 책을 읽는데 고향이 나와 같은 부산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서너 살 아래라니 그 아이일 리는 없다.

문득 그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미안하다고 할 일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 왔었다고, 널 이상하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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