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진료는 車보험료 먹는 하마? 청구액 2022년 1조4600억 [이슈 속으로]

이강진 2023. 8. 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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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업·한의계 ‘과잉 진료’ 공방
교통사고 진료비서 한방 비중 58%
대인배상 비용 5년 새 3배로 치솟아
“첩약·침술·부항 등 6개 이상 ‘세트청구’
경미한 사고에도 처방돼 보험금 누수”
한의계는 “환자들 한방 선호 커진 영향
정당한 치료 받을 권리 침해 안 될 말”
첩약 등 진료 수가 조정 추진에 반발

‘5545억원→1조4636억원.’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진료비 가운데 한방의료기관 진료비는 최근 5년 새 1조원 가까이 늘었다. 전체 진료비에서 한방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32%에서 지난해 58%로 커졌다. 같은 기간 의과(양방) 진료비는 1조2153억원(치과 포함)에서 1조506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비중 역시 68%에서 42%로 축소됐다.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가 급증하자 보험업계에선 손해율 악화 및 보험료 인상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특히 첩약·침술·구술·부항·약침·추나요법 등 유사한 목적의 다수 처치(진료)를 일시에 시행하는 ‘한방 세트청구’로 인해 과잉진료가 유발된다며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반면 한의계는 최근 한의원·한방병원을 찾는 교통사고 환자가 늘어난 점이 진료비 증가의 원인이라며 과잉진료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완전한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받아야 하는 정당한 치료라는 것이다. ‘보험금 누수’와 ‘환자 치료권 보장’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경상환자 ‘세트청구’ 급증”

보험업계는 경상환자(상해 등급 12∼14급)에 대한 한방 과잉진료가 확산한 점을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비교적 경미한 교통사고임에도 한방 세트청구 등으로 인해 보험금이 과도하게 지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4일 보험연구원이 2017∼2022년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 한방진료기관 진료수가 명세서 990만97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방병원의 경상환자 세트청구 비율은 82.4%, 한의원은 73.1%였다. 2017년 각각 55.2%, 53.4%였던 것과 비교하면 20%포인트 안팎으로 급등한 것이다. 연구원은 한방진료에서 가능한 첩약·침술 등 8가지 진료 가운데 6가지 이상의 진료(첩약 포함)를 세트청구로 정의했다.

중상해로 분류되는 상해 등급 9∼11급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트청구 비율은 지난해 한방병원 74%, 한의원 65.1%로 경상환자보다 낮았다. 연구원이 세트청구 비율을 한방진료비에 적용한 결과 지난해 전체 한방진료비의 54.8%(8027억원)가 세트청구인 것으로 추산됐다. 경상환자에 대한 세트청구 한방진료비는 7440억원으로, 2017년(1926억원)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연구를 진행한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방병원 수가 늘어나고 한방 복수진료에 대한 심사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방 세트청구 진료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는 명확한 기준 없이 이뤄지는 첩약 처방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자동차보험 첩약진료비는 2017년 1463억원에서 지난해 2805억원으로 증가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이 건강보험 수가에 비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서 어떤 진료를 보든 다 첩약을 처방하는 등의 부분이 보험금 누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방 환자 늘어 진료비 증가”

한의계는 진료비 증가의 원인으로 한방의료기관 선호도와 이용자 수가 늘어난 점 등을 꼽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으로 한방병원을 찾은 환자(입원·외래 합계)는 69만7510명, 한의원은 91만600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15.74%, 1.85% 늘었다. 의원(-2.07%)이나 병원(-8.10%) 등에선 감소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2017년(한방병원 26만5048명, 한의원 59만4244명)과 비교해 보면 한방병원 환자는 163.2%, 한의원 환자는 53.2% 증가했다.

서울특별시한의사회는 지난 5월 ‘자동차보험 대인보상비 및 진료비 분석’ 연구보고서에서 한방진료비가 늘어난 원인에 대해 “입원환자가 양방 입원의료기관에서 한방 입원의료기관으로 변경됐고, 부상자 1인이 이용하는 한방 외래의료기관의 수가 증가해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의계는 한방과 양방의 치료 방식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방 진료의 경우 물리치료사를 통한 물리 치료가 중심이 되는 반면, 한방진료에서는 한의사가 직접 침이나 추나요법 치료를 시행하는 만큼 진료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의계와 손해보험업계의 갈등은 올해 초 ‘교통사고 환자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 조정을 두고 격화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4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위원회를 열고 교통사고 환자의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를 현행 10일에서 5일로 축소하는 내용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손보업계는 환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무조건 1회 10일 처방이 이뤄져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지만, 한의계는 전체 자동차 보험금에서 첩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데다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정찬 의료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첩약을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행위에 대한 개선과 약침·한방물리치료 등의 시술 횟수 및 시간 표준화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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