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얼굴, 압도당했다” 20년만 부활, 매출 ‘1조원’ 인형 브랜드의 비밀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스파이더맨부터 헐크,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까지. 우리는 돌연변이들이 어깨 펴고 사는 마블·DC코믹스 류의 세계관에 열광한다. 선이 악을 응징하고 우위에 서는 순간엔 카타르시스마저 느낀다.
반면 현실 속 돌연변이들의 세상은 혹독하다. 탁월함과 다른 다름은 죄가 되고, 다름을 인정하자는 ‘맞는 말’이 어느새 듣기 싫은 ‘지겨운 말’이 됐다. 누가 어벤저스고 누가 타노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선악의 구분이 희미한 복잡한 문제들이 쌓여있다.
이 세계를 구할 히어로의 자리에 60년간 아이들 장난감으로 세상을 바꿔온 돌연변이 회사를 추천한다. 바로 ‘바비’를 만든 미국의 마텔(Mattel)이다. 때론 발칙하게, 때론 망측하게, 때론 유쾌하게 세상을 바꿔온 마텔은 이제 마블을 위협할 ‘마텔 유니버스’를 꿈꾼다. ‘8등신’ 인형 회사는 어떻게 페미니스트의 베스트 프렌드가 된 걸까. 20년만 최대 실적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마텔의 비결은 뭘까. 한국에서만 찬밥이라는 영화 ‘바비’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1959년 미국 마텔사가 출시한 바비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3~4등신 아기 인형이 유행하던 장난감 시장에 아이들의 롤모델이 될 만한 ‘어른 여성’ 컨셉을 펼쳐보이며 시대의 아이콘을 자처했다.
바비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졌고, 세상이 달라지면 바비도 달라졌다. 1960년대 바비는 인종차별을 겨냥했다. 1968년엔 바비의 흑인 친구 크리스티가 출시됐고, 1980년에 ‘바비’라는 이름의 흑인 인형이 출시됐다. 1973년 외과의사 바비를 필두로, 1980년대엔 여성들의 진출이 적은 직업을 테마로 한 바비 시리즈가 이어졌다. CEO(1985), 해군(1991), 소방관(1995), 대통령(2004), 우주비행사(2015), 천체물리학자(2019) 등을 줄줄이 선보였다.
반 걸음 앞서 나간 바비의 시도가 환영만 받았던 건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단종 인형엔 바비의 시행착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3년, 게이를 연상시키는 외양으로 출시된 ‘매직 켄’(Magic Ken)은 “애들한테 왜 게이 인형을 파느냐”는 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단종됐다.
20여년 전 출시된 임신부 ‘미지’(Midge) 인형 역시 파격으로 꼽힌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미지 인형은 뱃속에 태아 인형을 넣고 뺄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됐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테마를 사실적으로 구현하자, 돌아온 건 기괴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번엔 “왜 애한테 임신한 인형을 파느냐”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폭주했다. 임신부 미지는 10대 임신과 미혼모를 조장한다는 비판 속에 해를 못 넘기고 단종됐다.
2000년대 이후 바비의 여정은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 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형성한 대립구도는 역으로 페미니즘에 불을 지폈다. 인종·성 차별을 부추긴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위기 의식을 느낀 페미니즘 진영은 더욱 똘똘 뭉쳤다.
바비 브랜드의 리부트는 페미니즘 물결 속에 진행됐다. 실적 악화로 고전하던 마텔은 2015년 브라이언 스톤턴 최고경영자(CEO)를 해임하는 등 4년새 CEO를 4번이나 바꾸는 대수술을 감행한다. 고위 경영진의 3분의 2를 구조조정 하는 칼바람 속에서도 독립적 여성상을 지지하는 바비의 철학은 일관되게 유지됐다.
바비가 ‘우린 뭐든지 할 수 있어’(We Girls Can Do Anything)라는 1985년 슬로건을 다시 계승한 것도 이때 쯤이다. 마텔은 이전엔 배제되고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을 바비의 세계로 끌어안았다.
가장 먼저, 이전까지 ‘이상적이되 기형적’으로 획일화 돼 있었던 바비 몸매에 현실에 있을 법한 체형이 추가 됐다. 2016년엔 통통한 몸매의 ‘커비 바비’, 키가 작은 ‘프티 바비’ 등이 출시됐다. 현재 바비의 피부색은 지구상 인종만큼 다양한 30가지다. 헤어스타일 역시 90개가 넘는다. 2019년엔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지 않은 ‘성 중립’(Gender-Neutral)인형도 나왔다.
마텔이 달라지자 구시대의 상징이 됐던 바비 인형도 다시 팔렸다. 2015년 10억 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마텔의 바비 인형 매출 추이는 2018년을 기점으로 연속 10억달러대(약 1조3051억원)를 기록 중이다. 2020년 코로나 판데믹 시기에는 20년만의 최고매출인 13억 5000만달러까지 기록했다. 2021년엔 실사화 영화인 ‘바비’ 제작이 확정되자, 마텔의 연간 연매출이 54억 달러(약 6조9849억원)까지 회복되는 기염을 토했다.
바비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초 바비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바비 인형을 출시했다. 앞서 2019년 보청기나 의족을 사용하고 휠체어를 탄 바비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엔 인형 얼굴까지 바꾼 것.
새로 나온 다운증후군 바비는 둥글고 작은 뒤에 납작한 콧대, 아몬드 모양의 눈을 가졌다. 키는 작고 몸통은 길다. 신체 장애와 발달 장애를 동반한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가감 없이 반영한 디자인이다. 기존 바비 얼굴에 소품만 추가한 이전 콜렉션과 비교하면 더욱 대대적인 변화다. 몸의 여러 부분에 하얀 반점이 나타나는 백반증 인형 역시 한 걸음 나아간 바비 세계관에 일조했다.
마텔은 이번 시리즈의 간판 모델로 다운증후군을 가진 엘리 골드스타인 (Ellie Goldstein)을 내세웠다. 자신을 닮은 인형을 본 골드스타인은 “압도당했다”는 벅찬 소감을 밝혔다. 그는 “다양성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이들이 세상에 더 많이 존재하고 숨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비는 1991년부터 대통령이 됐고, 여성이 신용카드를 받기 전부터 달에 갔다.” (그레타 거윅)
60여년 동안 인형으로만 존재했던 바비는 지난달 마고 로비(바비 역)와 라이언 고슬링(켄 역) 주연의 실사 영화 ‘바비’로 개봉하며 이야기를 입었다. 메가폰은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잡았다.
거윅 역시 바비 브랜드가 키워온 ‘다양성과 포용’의 역사를 영화에 녹여냈다. 그는 미국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 랜트와의 인터뷰에서 “바비는 195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브랜드다”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승리와 논쟁의 순간을 모두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선 (주인공이) 영웅이거나 악당이다. 착하거나 나쁘다. 하지만 나는 ‘바비가 다른 모든 사람처럼 복잡하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출발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최근 논란이 된 웹툰작가 주호민의 발달장애 아들 사건은 ‘바비’ 영화 속 복잡한 상상력을 기대하게 만든다.
주씨 부부에게 쏠린 비판은 어느새 불특정 다수의 발달장애 아동과 그 가정을 향하고 있다. 자녀가 일반 학교 속에서 평범한 아이들과 어우러져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을 향해 꽂히는 “그거 다 부모 욕심이고, 이기심”, “특수학교·시설에 격리시키라”며 건네는 훈수는 칼을 품었다.
이럴 때 귀해지는 게 조금만 덜 단순하고, 덜 극단적인, ‘복잡한 목소리’다. 꼭 필요했던 목소리는 문제의 녹취를 전부 분석한 류재연 나사렛대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교사의 행동이 ‘정당한 훈육’이라는 결론을 냈고, 소송을 당한 특수교사의 편에 선 전문가다.
류 교수가 3일 공개한 장문의 글 속에서 ‘분노’의 대상과 ‘염려’의 대상은 놀랍게도 같다. 주호민 부부를 향해 “피해 교사에 대한 고상한 모욕”이라고 호되게 꾸짖으면서도, 글 말미엔 아이의 장애로 무너져간 주호민 부부를 향한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주호민씨의 아들이,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 “저를 주호민씨 아들 활동지원사로 고용하라” 등이다.
연일 정신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몸부림이 우리 사회에 생채기를 남긴 한 주였다. “이 정신나간 세상, 우리 살만 한 곳으로 한 걸음만, 함께 만들어 봅시다”라는 류 교수의 말에서 ‘바비 월드’의 철학을 곱씹는다.“우린 뭐든지 할 수 있어.”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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