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中 부유층, 못 말리는 ‘명품 사랑’ [세계는 지금]

이귀전 2023. 8. 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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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백만장자들 ‘마이웨이 행보’
베이징 백화점 명품 매장 평일도 ‘북적’
위드코로나 전환 후 LVMH 매출 급증
시진핑 ‘함께 잘 살자’ 외침 무색한 열기
팬데믹 통제 겪으며 해외 이주에 눈독
호주·캐나다 등 외국 부동산 구입 인기
“탈중국 흐름 중산층으로 확산” 분석도
“한정판 물품 등을 살 수 있어서 이 백화점을 자주 찾아요.”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SKP백화점 에르메스 매장으로 들어가던 30대 중국 여성의 말이다. 그는 “여러 명품 매장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어 좋다”고 이 백화점을 찾은 이유를 더했다. 그의 손에는 루이비통 매장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6층 건물 모두 명품 매장들로만 채워진 SKP백화점엔 이날 다양한 브랜드가 적힌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 평일임에도 적지 않았다. SKP는 단일 백화점 기준으로 세계 매출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명품 매장의 한 직원은 “주말이나 연휴 때면 줄을 길게 서야 하고 대기를 해야 한다”며 “지난해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를 나가지 못할 때 명품을 사러 매장에 손님들이 많이 왔고, 이후에도 방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베이징 시내 명품 매장들로만 채워진 SKP백화점을 찾은 중국 소비자들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후 내수와 수출 등 경제 지표가 모두 부진한데도 중국 부유층의 외국 명품 사랑이 식지 않고 있다.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 살자)로 대표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가 중국 부유층에게는 딴 나라 얘기일 뿐이다.

◆외국 명품 살린 中 백만장자들

리오프닝 이후 전 세계 경기가 침체하고 있지만 올해 외국 명품 브랜드를 실적은 예측이 무색할 만큼 급상승세다. 중국의 백만장자들이 그 중심에 있다.

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루이뷔통, 크리스찬디올, 티파니, 불가리 등 다수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422억4000만유로(약 59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23%나 되는 아시아 시장 매출 증가율이 이를 견인했다. LVMH는 위드코로나 전환 후 명품 쇼핑을 위해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는 중국 부유층이 급증했기 때문에 실적이 올랐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광객들의 해외 소비와 중국 시장의 명품 소비 회복이 미국 시장의 판매 부진을 상쇄했다”는 것이다. LVMH는 “중국 경제의 둔화 분위기가 있지만 중국의 명품 소비 지출은 강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중국 쓰촨성 청두의 중심가 타이구리에 있는 한 명품 매장 거리.
명품시장 전문 조사기관인 야오커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들의 명품 구매액은 9560억위안(약 171조원)으로, 전 세계 명품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인 38%를 차지했다.

이후 LVMH 주가는 급등했고, 시가 총액 세계 10위 안에 진입했다. 중국 백만장자들의 소비 파워에 놀란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지난 6월 말 베이징을 직접 찾아 SKP백화점과 중심가 싼리툰쇼핑센터를 방문하는 등 중국 시장 관리에 나선 이유다.

영국의 해롯백화점도 중국 상위 1% 부유층 겨냥한 서비스를 내놓는 등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해롯은 올해 연말부터 상하이에 부유층 대상 최소 15만위안(약 2600만원) 이상의 연회비를 내야 하는 클럽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회원 수는 총 250명으로 제한된다. 회원은 영국 유명 요리사인 고든 램지의 식당과 희귀 주류를 경험할 수 있고, 글로벌 컨시어지(호텔식 맞춤) 서비스 등을 누릴 수 있다.

해롯백화점은 “전 세계 상위 1% 부유층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롯은 중국의 부(富)가 커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애국주의에도 외국 명품 증가

외국 명품 브랜드들이 중국을 주요 공략 시장으로 잡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도 늘고 있는 중국의 부유층들의 강한 구매력 때문이다. 중국 부자 연구소인 후룬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의 순자산 600만위안(약 10억7000만원) 이상인 부유가구 수는 518만3000가구로 전년보다 2.1% 늘었다.

특히 자산이 많은 가구의 증가율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순자산 2억1500만위안(약 383억4000만원) 이상의 가구는 9만2100가구로 전년보다 4.07% 증가했다.

또 순자산 1억위안(약 178억7500만원) 이상은 13만7900가구로 3.45%, 순자산 1000만위안(약 17억8700만원) 이상은 211만300가구로 2.48% 늘었다. 특히 중국 부유가구가 보유한 총자산은 164조위안(약 2경9254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고 중국 국내총생산(GDP) 약 121조위안(2021년 기준)의 1.4배에 달했다. 중국 전체 가구 약 4억9416만가구 중 1% 정도가 중국 GDP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원이 시계 및 보석 액세서리 등 10대 생활 분야의 124개 고품질 상품 가격을 측정해 발표하는 고액 자산층 소비자가격지수(LCPI)는 지난해 7월 기준 6.5로 최근 10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유층이 선호하는 고가 물품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평균 자산 4500만위안(약 80억원) 이상 가구의 자산가 7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향후 3년간 소비 지출을 확대할 분야로 56%가 명품을 선택해 가장 많았고, 이어 자녀교육 55%, 여행 53% 등으로 나타났다. 명품 중에선 보석 액세서리(73% 선택), 시계(67%), 의류(64%) 소비를 원했다. 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보면 시계는 롤렉스, 파텍 필립, 불가리 등을 선호했고, 남성과 여성 모두 의류와 잡화에서 에르메스를 가장 좋아했다.

◆중국 탈출 나서는 부유층

나라를 버리는 부유층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도 중국의 특색이다. 중국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경험하고, 공동부유를 내세운 시진핑 체제에서 기술기업과 부동산, 교육 등에 대한 단속이 강화하자 불안감을 느낀 부유층이 중국 탈출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이민 컨설팅업체인 헨리 앤드 파트너스는 주요국의 고액순자산보유자 유입·유출 전망을 한 결과 올해 1만3500명이 해외로 이주(순유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사는 달러 기준 100만달러(약 12억7500만원) 이상의 투자 가능 자산을 보유한 고액순자산보유자 가운데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를 추산했다.

중국에 이어 인도(6500명), 영국(3200명), 러시아(3000명), 브라질(1200명), 홍콩(1000명) 등이 중국에 이어 순유출 전망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홍콩을 포함하면 1만5000명가량이 중국을 떠나는 것이다.
중국 최대 비디오게임 회사 XD의 공동 창업자 황이멍은 지난해 상하이에서 코로나19 봉쇄 등을 겪은 직후 회사에 “내년 여름휴가 이후 해외로 이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이멍의 순자산 가치는 12억달러(약 1조5300억원)로 추산된다.

중국인들이 호주, 태국 등에 거주를 위한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올해 1500억달러(약 191조3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올해 상반기 중국 부유층에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부동산을 매입한 국가는 호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온라인 부동산 포털사이트인 주와이IQI는 매수자 문의 건수에 기반해 중국인들에게 상반기 가장 인기가 높은 해외 구입처는 호주였다고 밝혔다. 호주에 이어 캐나다, 영국, 미국,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이 뒤를 이었다.

부유층의 탈중국 움직임이 중산층으로도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콩의 이민 자문 변호사 데니 고는 “중국의 진짜 부자들은 수년간 비상 계획을 세웠다”면서 “현재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중산층, 기업 임원 등 부의 규모가 더 작은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글·사진 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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