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우상화 우려된다’는 꼰대칼럼에 달린 베트남 MZ들의 놀라운 댓글 [신짜오 베트남]
[신짜오 베트남 - 257]지금은 K-POP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한국도 한때 국내 가요보다는 해외 팝을 훨씬 더 선호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1992년 2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선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아이돌 ‘뉴키즈온더블럭’ 내한공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흥분한 관객들이 앞으로 쏟아지며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크게 다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로부터 수십년뒤 한국의 아이돌 스타가 전세계를 돌며 당시 ‘뉴키즈온더블럭’보다 더 많은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이 보여줬던 짜릿한 경제성장의 역사를 롤모델로 삼는 베트남에서 ‘블랙핑크’의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 공연을 보기위해 호치민에서 하노이로 출발하는 이코노미 항공편이 매진됐을 정도였습니다.
블랙핑크와 관련된 모든 것이 베트남 언론 홈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블랙핑크는 베트남어 인사인 ‘신짜오’를 외치며 베트남 팬들에게 인사했는데, ‘블랙핑크가 베트남어를 했다’는 제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릴정도로 현지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해외 아티스트가 들어와 자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전좌석을 매진시키는 모습이 일각에서는 꼭 반갑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베트남의 한 언론인은 이 같은 시각을 대변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그의 칼럼은 하노이 공립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1000만동(53만8000원)에 달하는 블랙핑크 티켓을 사준 한 부모의 얘기로 시작합니다.
이 티켓은 어렵게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딸에게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딸과 ‘시험에 합격하면 뭐든지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국돈 50만원이 넘는 이 티켓 가격은 베트남 물가를 감안하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웬만한 직장인 한달 월급이랑 비슷한 수준이니까요.
그래서 기사에 나오는 이 부모는 “돈의 대가성과 지나친 우상숭배가 자녀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스럽다”고 인터뷰 합니다.
칼럼리스트의 걱정은 기사 내내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예술이 대량생산 가능한 상품이 되면서 과도한 소비를 수반하게 된다. 해외 아티스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패션과 생활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이게 현대적 가치와 전통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그는 또 베트남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점령한 글로벌 문화 소비 체계의 일부가 됐고, 이로 인해 젊은 층의 물질문화 숭배와 무절제한 소비로 이어진다면 큰일이라고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부모님께 점심 값 정도의 수퍼맨 장난감을 사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제는 소비 수준이 훨씬 커졌고, 게다가 K-POP 멤버들이 버버리 등 명품 업체 광고모델로 뛰는 까닭에 팬들이 사치품을 사도록 유도받고 있다는 우려도 합니다. 무절제한 소비 함정에 휩쓸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놀랍게도 이같은 관점은 수 십년전 한국 미디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각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우리가 문화를 수입하는 입장에서 수출하는 입장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베트남이 한국이 수 십년전 하던 고민을 이어받아 하는 모양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사에 담긴 댓글이었습니다. 과거 한국이 지금의 베트남이 하던 고민을 할 때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독자의 의견을 직접 수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창을 통해 누구든 손쉽게 자신만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베트남 칼럼리스트의 나라 걱정에 담긴 베트남 국민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이 언론인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댓글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계를 사려고 1억동(538만원)을 쓰고 카타르 월드컵을 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쓴다. 누군가는 음악공연을 가기 위해 수많은 돈을 쓰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
‘누군가 메시에 열광하고 호날두를 좋아하면 그건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K-POP 아이돌에 열광하면 불효자라고 부른다’, ‘나는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아주 잘 이해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미딩 경기장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베트남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행사를 성공리에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에서 열린 쇼의 웅장함이 자랑스럽다’ 등등입니다.
칼럼리스트가 콕 집어 제기한 문제의식에 동참하는 댓글은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수십년전의 한국의 인식보다 베트남 대중의 의식은 훨씬 진일보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베트남에서 체류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해왔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여기에 매우 동감하는 편입니다. 베트남은 겉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한국보다 훨씬 자본주의적이다.
어찌보면 베트남의 이 열린 의식이 베트남의 미래를 더 밝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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