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오타니와 무모한 도전, '바이어' 에인절스는 해피 엔딩일까

이창섭 2023. 8. 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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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니 쇼헤이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는 4일(한국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선발 등판했다. 타선에서도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투수 오타니는 오른쪽 중지 손가락 경련으로 4이닝만 던지고 내려갔다. 하지만 타자로 남은 오타니는 6회 도루에 이어 8회 홈런까지 추가했다. 시즌 40호 홈런이었다.

어제 투수 오타니는 4이닝 무실점, 타자 오타니는 2안타 2볼넷 4출루 경기를 해냈다. 메이저리그는 공의 반발력이 달라진 시점을 두고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로 나뉜다. 1920년부터 시작된 라이브볼 시대에서 2안타/2볼넷/홈런/도루/4이닝 무실점을 한 경기에 모두 선보인 선수는 오타니가 최초였다.

오타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쓰고 있다. 올해도 아메리칸리그의 강력한 MVP 후보다. 이 오타니를 앞세운 에인절스는 고민 끝에 올해 포스트시즌에 도전한다. 트레이드 마감시한까지 선수를 데리고 오는 바이어 역할에 충실했다.

에인절스는 1961년에 창단했다. 그리고 2002년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더 이상 우승은 없었지만, 가을야구 단골 손님이었다. 2002년에서 2009년까지 8년간 6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다. 덕분에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19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다. 소시아가 지휘한 3,078경기는 에인절스 역대 감독 최다 경기다(2위 빌 리그니 1,333경기).

2000년대 에인절스는 강팀이었다. 2000-09년 도합 승률 0.556는 뉴욕 양키스(0.597)와 보스턴 레드삭스(0.56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0.564)에 이어 전체 네 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2010년대 에인절스는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작년까지 13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 오른 건 단 한 번에 불과했다(2014년). 이마저도 첫 라운드 디비전시리즈에서 1승도 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13시즌 중 9시즌은 5할 승률을 넘지 못했고, 13시즌 도합 승률도 5할이 되지 않았다(0.498). 실패와 후퇴만 반복했다.

지난해 시애틀은 21년 만의 포스트시즌 갈증을 해소했다. 그러면서 현재 포스트시즌에 가장 목이 마른 팀은 에인절스가 됐다. 에인절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더불어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이 문제를 올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에인절스의 입장이다.

무모한 도전은 아니다. 에인절스는 이번 시즌 월간 승률이 모두 5할을 넘고 있다. 7월 6연패에 빠지면서 5할 승률이 무너진 적도 있었지만, 7월 마지막 13경기 10승3패를 질주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이에 에인절스는 "오타니 트레이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오타니와 함께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했다. 팜이 풍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에인절스의 트레이드 마감시한은 주로 호평을 받았다.

에인절스 시즌 중반 합류

1. 에두아르도 에스코바 (INF)

2. 마이크 무스타커스 (1B/3B)

3. 루카스 지올리토 (RHP)

4. 레이날도 로페스 (RHP)

5. 랜달 그리칙 (OF)

6. C J 크론 (OF)

7. 도미닉 리온 (RHP)

사실 에인절스는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 6월말에 이미 에두아르도 에스코바와 마이크 무스타커스를 추가하면서 내야진을 두텁게 했다. 결과를 떠나 과정을 보여준 팀이었다.

이번 트레이드 시장은 쓸만한 선발 투수가 적었다. 특히 전력을 크게 높여줄 에이스 투수들이 부족했다. 마감시한 직전까지 노선이 애매했던 팀들도 많았는데, 뉴욕 메츠가 막바지에 셀러로 선회하면서 맥스 슈어저와 저스틴 벌랜더가 팀을 옮겼다.

▲ 루카스 지올리토

물론, 에인절스가 두 선수에게 접촉했다고 해도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힘들었다. 에인절스가 가진 유망주들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지올리토 보강은 합리적으로 보였다. 지올리토는 2019-22년 통산 40승30패 ERA 3.86을 기록했다. 지난 4년간 올린 '팬그래프닷컴' 승리기여도는 리그 4위였다. 에이스나 1선발은 아니지만, 준수한 선발 자원이다. 에인절스 선발진에 안정감을 더하는 동시에 선발진의 좌우 불균형도 잡아줄 수 있었다.

2019-22년 AL 선발 승리기여도

17.3 - 게릿 콜

16.2 - 셰인 비버

14.2 - 랜스 린

13.1 - 루카스 지올리토

12.5 - 저스틴 벌랜더

그리칙과 크론 역시 시기 적절한 영입이었다. 마이크 트라웃과 조 아델, 테일러 워드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공백을 메워야 할 선수들이 필요했다. 드래프트 당시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았던 두 선수는, 타석에서 오타니의 집중 견제를 분산시켜야 한다(그리칙 2009년 드래프트 전체 24순위, 크론 2011년 드래프트 전체 17순위). 또한 에인절스는 시즌 후반과 포스트시즌에서 더 두드러지는 불펜진 정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에인절스로 돌아온 랜달 그리칙.

에인절스는 모든 움직임들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됐다. 새로운 선수들이 기대에 부응하고, 부상자들이 정상적으로 복귀하면 최고의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다. 다만, 최고의 시나리오가 최고의 결과를 내는 건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에인절스의 남은 시즌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4연패에 빠진 에인절스는 지구 4위, 와일드카드 7위다(56승55패). 지구 1위 텍사스 레인저스와 격차는 8경기 반 차이다. 맞대결이 6경기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자력으로 따라붙는 건 불가능하다. 확률적으로 지구 1위보다 와일드카드 한 장을 노리는 편이 낫다.

하지만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경쟁은 동부지구 팀들의 순위와 직결된다. 현재 동부지구 두 팀과 서부지구 한 팀이 와일드카드 순위권에 있지만, 5팀이 모두 5할 승률 이상인 동부지구가 어쩌면 와일드카드 세 장을 독식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에인절스의 노력은 말 그대로 헛수고가 된다.

AL 와일드카드 순위

1. 탬파베이 레이스 (+5.5경기)

2. 휴스턴 애스트로스(+2.0경기)

3. 토론토 블루제이스

4. 시애틀 매리너스 (-2.5경기)

5. 보스턴 레드삭스 (-3.0경기)

6. 뉴욕 양키스 (-3.5경기)

에인절스는 이번 시즌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 당분간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여기에 다가오는 겨울 오타니를 붙잡지 못하면 더 혼란스러워진다. 오타니를 통해 드래프트 보상 지명권을 받는다고 해도 과거와 달리 높은 지명권을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오타니를 넘기고 뛰어난 유망주들을 받아와 팜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차피 오타니를 잔류시키지 못하면 서둘러 새 판을 짜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인절스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섣불리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공연히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오타니에게 우승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즉, 에인절스가 진짜로 노린 건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오타니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정규시즌이 더 재밌어지려면 에인절스처럼 달리는 팀이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순위 경쟁이 치열해지고 볼거리가 풍성해진다. 고의적으로 지려는 팀보다 의도적으로 이기려는 팀이 환영받아야 한다. 에인절스의 행보를 무작정 잘못됐다고 하기 힘든 이유다.

오타니는 모두가 회의적으로 바라봤던 투타겸업의 장벽을 완전히 넘어섰다. 이제는 에인절스가 오타니처럼 모두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 만약 에인절스가 오타니처럼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가오는 겨울 오타니도 놀라운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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