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수뇌부, 부하 징계는 속전속결, 지휘책임엔 ‘방탄 본능’ 작열?
‘채 상병 순직’ 수뇌부 책임 안지고 애꿎은 현장지휘관들만 곧바로 보직해임
해병대 수뇌부가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사건 때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 사건 및 최근 포항 1사단 민간인 영내 침입 사건을 계기로 부하 및 하급 지휘관에 대해서는 보직해임 및 징계 조치를 신속하게 내리는 반면 정작 사고관련 직접적으로 지휘 책임이 있는 수뇌부는 ‘방탄 본능’이 작용해 미적미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지난 4월 28일 영내에서 한 40대 남성 A씨와 독대했다. A씨는 자신이 국군방첩사령부 소속이라 소개했고, 우엉차를 곁들인 면담은 10여분간 이어졌지만 거짓말이었다. A씨는 민간 경비업체 대표로 군과는 무관한 민간인이었다. 그는 차 대접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2시간 넘게 영내에 머물며 휴대전화와 차량 블랙박스로 군사시설 곳곳을 촬영한 뒤에야 뒤늦게 검거됐다.
이와관련 최근 경찰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혐의로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혹여나 무단 침입자가 적국의 요원이거나, 우리 장병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무장 상태였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 일로 1사단 소속 장병 4명이 징계받았다. 민간인인 A씨가 신분을 속이고 영내로 들어오는 걸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 사단장이 징계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A씨와 우엉차를 함께 한 임 사단장은 무탈하다. 투스타(소장)인 그에 대한 징계 권한은 해군참모총장에게 있지만 현재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해병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구명조끼도 없이 물이 불어난 하천 수색에 투입됐다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이와관련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에 들어간 가운데 해병대 수뇌부가 내린 첫 조치는 채 상병이 소속된 현장지휘관인 포병대대장과 중대장, 행정관에 대한 보직해임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상황을 제보한 해병대 현역 중사에 따르면 현장지휘관들은 수해 복구 작전으로 알고 파견됐으며 현장에 도착하고나서야 실종자 수색 작전임을 뒤늦게 알게됐다. A중사에 따르면 특히 현장지휘관들은 “아무런 훈련도 못받은 해병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오면 어쩌냐고 사단에 보고까지 했으나 사단 지휘부는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해병대 반팔티 무조건 입고 기자들 물어보면 답변하라고 체크리스트까지 줬으며 막상 일이 일어나니 지시한 사람은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해병대가 실종자 수색에서 성과를 내려고 해병대 수뇌부가 무리했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잘못된 지시를 내린 해병대 수뇌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채 상병 사건 관련 가장 먼저 자리에서 물러난 이는 정작 사건 수사를 맡은 해병대의 수사책임자였다. ‘과실치사 혐의를 특정한 수사기록을 경찰에 넘겼다’며 항명죄에 해당된다는 것이 보직해임 이유였다.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장인 B 대령과 해병대 광역수사대장 C 중령, 경북경찰청에 자료를 인계한 해병대 부사관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하고 공동정범으로 입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병1사단 사단장 및 모 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요구를 했다는 사건 은폐·축소 시도가 있었다는 제보가 나왔다. 국방부는 이와관련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조사결과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면서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알린다“고 밝혀 국방부 수뇌부의 은폐 축소 시도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채 상병이 소속된 해병대 1사단의 임성근 사단장을 비롯한 8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자체 조사자료를 국방부의 보류 지시에 따르지 않고 경찰에 인계했다는 이유에서다. 임 사단장 등 지휘부를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내려졌다는 군 소식통의 말도 나왔다.
어차피 수사는 경찰의 몫이고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지도 경찰이 판단할 문제다. 군내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에 대해선 경찰이 수사하게 돼 있다. 그런데 ‘참고자료’일 뿐인 해병대 자체 조사결과를 가지고 국방부와 해병대 수뇌부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하급 장교들과 병사들은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쉽게 징계 내리고 내치면서 ‘지휘관 방탄’에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채 상병이 순직한지 보름이 넘게 지났지만 ‘장병 투입이 어렵다’는 현장 지휘관 판단을 무시한 채 구명조끼도 없이 위험한 수색에 밀어 넣었는지 사단 수뇌부의 책임을 밝히는 게 핵심이다.
이와 관련 해병대 수뇌부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구태가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임성근 사단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 후배 지휘관들의 선처를 바란다“고 말해 사퇴 수순으로 여겨 ”군인다운 군인, 참군인“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지 사퇴는 아니다“라고 한 발 뺐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의 사회적 의미를 몰랐다는 것인지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채 상병 부모는 4일 국방부 기자단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며 ”참담한 심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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