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 “팬데믹 시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고민했다”

영화 《밀수》에서 비주얼 담당 빌런으로 열연한 조인성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불변의 이상형' '비주얼의 대명사' '영원한 톱스타' '스타의 스타'. 바로 조인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가 오랜만에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조인성은 7월26일 개봉한 영화 《밀수》로 2년 만에 본업에 컴백했다. 《밀수》는 개봉 7일 차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조인성을 비롯해 김혜수, 염정아,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까지 매력적인 조합으로 화제가 됐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조인성은 주연이 아닌 조연급으로 출연했다. 두 사람은 전작 《모가디슈》(2021)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극 중 조인성은 베트남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전국구 밀수왕' 권상사 역할을 맡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인물로 화려한 패션과 수려한 외모를 뽐내며 건달들을 진압하는 역할이다. 《밀수》를 시작으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과 예능 《어쩌다 사장》으로 쉼 없이 활동을 이어나가는 조인성을 만나 근황을 들었다.

ⓒ아이오케이 제공

《밀수》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인생의 동지'라고 표현할 만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안다.

"《모가디슈》를 찍으면서 외국에서 5개월간 함께 살았다. 모로코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교민이 2명 정도밖에 없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영화 스태프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텔을 우리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오며 가며 이웃처럼 생활했다. 해외 촬영이니 다들 고되고 외로웠다. 감독님은 오죽했겠나. 그럴 때 어렵게 구해온 순댓국을 감독님 방문 앞에 걸어두면 그것으로 위로가 된다. 그럴 때 소주를 건네면 그게 누구든 동지가 된다. 그랬던 팀이 그대로 《밀수》로 다시 뭉친 것이다."

이번 영화에선 액션도 대단했다.

"무릎 수술을 한 상태라 부담이 있었다. 특별한 계기로 부상을 당한 건 아니고 무릎에 물이 차서 《모가디슈》를 끝내고 들어와 바로 수술을 했었다. 감독님이 내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배려를 받으며 촬영을 했다. 감독 입장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것들이 많겠나. 확장성을 열지 못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

분량은 적지만 그간 필모그래피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멋있게 나온다.

"이럴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생각해 보면 그동안 작품에서 '굳이 나였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비주얼이 부각된 작품이 없었다. 아마 드라마 빼고 거의 다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터치를 받아본 게 처음이었다. 섹시? 그 정도는 아니다. 원숙미가 좀 부족했다. 다음을 기대해 달라."

분량이 적음에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분량이 많았으면 출연할 수가 없었다. 《모가디슈》 홍보를 하고 있었고, 드라마 《무빙》을 선택해 놓은 상태였다. 그 사이 3개월 정도 비어있었다. 그런 상태여서 대본을 봤고, 재미있게 읽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류승완 감독님과 저 정도의 사이가 되면 대본의 재미를 떠나 '이걸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어볼까'로 작품에 접근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됐다."

분량에 연연하지 않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언젠가부터 자유로워졌다. 어떤 계기라기보다는, 연기하는 게 중요하니까. 배우가 작품을 선택할 때 그 행간이 재미있으면 관객들도 그 배우가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가 고점을 찍는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그게 배우 활동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선배인 김혜수, 염정아는 물론이고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까지 연기 잘하는 후배들도 대거 출연했다. 어땠나.

"모두 강렬한 캐릭터다. 아시다시피 다들 한몫씩 하는 배우들이기도 하다. 질투? 내 코가 석 자라서 질투를 느낄 새도 없었다. 제가 좀 불리했던 게 다른 스케줄 때문에 촬영에 늦게 합류했다. 들어가자마자 적응 없이 바로 잘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배가 돼서 후배들 앞에서 잘하지 못하면 민폐이지 않나. 집중하며 작업했다."

김혜수라는 배우는 어땠나.

"이 작품을 해서 가장 좋은 점은 김혜수와 염정아 선배를 만났다는 것이다. 늘 응원해 주신다. 덕분에 후배들의 캐릭터가 꽃필 수 있었다. 꽃도 땅이 좋아야 피지 않나. 두 선배가 좋은 땅 역할을 해주셨다. 감독님은 비 같은 존재였다. 후배들이 꽃을 피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밀수》가 연기활동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하다.

"거창하면 힘이 들어간다. 가볍게 생각하려고 한다. 결국 내 몫을 해내면 된다는 생각이다. 소박한 마음으로 임했다."

《밀수》에 이어 《무빙》도 곧 공개된다.

"예능 《어찌다 사장》까지 시작하면 조절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올 연말까지는 스케줄이 꽉 차있다. 개인적으로는 TV에 많이 나오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매사에 행실을 더 조심해야겠다 싶다."

예능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이호진 PD를 만나서 예능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아마도 그 계기는 코로나19인 것 같다. 우리 모두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지 않았나. 배우라는 직업군도 마찬가지다. 극장이 외면당하고, 격리해서 볼 수 있는 OTT 플랫폼의 콘텐츠들이 일상이 됐다.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직격탄을 맞은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세상이 급변했다. 그렇다면 저 역시도 직업에 대한 개념을 새로 세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스타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가. 그 끝에 내가 안방으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드라마로 찾아뵙기에는 촬영과 후반 작업을 포함해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결국 예능이 답이었다. 제가 SNS를 활발하게 하는 사람도 아니지 않나. 예능을 한다면 사람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그게 《어쩌다 사장》이었다."

《어쩌다 사장》이 시즌3까지 왔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촬영한다고 들었다. 각별한 애정이 있을 것 같다.

"제가 하는 수많은 고민은 고민도 아니었다는 걸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깨닫게 되고 또 치유받는다. 한번은 처음 보는 할머니가 함께 출연했던 (김)광수의 손을 잡고 "요즘 젊은 친구들은 많이 힘들다지요"하고 한마디 건네시는데 울컥하더라. 제가 이 예능을 하면서 느낀 점은, 누구나 다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힘듦과 고민이 특별할 게 없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리스크 없이 공인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어느덧 40대가 됐다. 나이를 잘 든다는 건 무엇일까.

"올해로 마흔세 살이 됐다. 아직은 제가 나이에 대해 조언하기엔 이른 것 같다. 글쎄, '잘'이라는 게 있을까. 다만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낼 일이 적다. 저는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한다. 솔직하게 살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다."

요즘 드는 고민이나 생각들도 궁금하다.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여전히 막막하다. 결국 제로(0) 값에서 시작하더라. 산 넘어 산이다. 고민하다가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어 "최종 사인했느냐"고 물어본다. 매번 그렇다. 경력이 좀 됐다고 '이 정도면 되겠지?' 절대 그런 생각은 안 든다. 매번 새롭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활동을 오래 했는데 구경거리가 되면 안 되지 않나."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꿈꾸는 게 중요한데 또 꿈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10년 후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10년 후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더 힘들 것 같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담담하게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 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