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샤’ 커피 계속 사랑받을 수 있을까 [박영순의 커피언어]

2023. 8. 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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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멀리 산지에서 커피를 구매할 때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혼란이 미래를 암시한 것일까? 에티오피아에서 생산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게샤(Gesha) 커피들을 보면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아무리 봐도 게샤답지 않은 이들 커피에 누가 게샤라는 명칭을 달아 판매하는 것일까? 재배자, 중간 상인, 국내 판매상 중 하나일 텐데. 이런 의혹에 대해 '게샤 커피가 아니라는 물증을 대라'고 되레 소리친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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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멀리 산지에서 커피를 구매할 때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여러 차례의 거래를 통해 재배자와 구매자 간에 신뢰를 쌓은 뒤 돌아보면 위험하게 생각할 일도 사실 별로 없다. 그런데 처음에는 커피 생두를 파는 측이나 사는 측 모두 걱정투성이이다.

그중에서 가장 난해한 산지를 하나만 고르라면, 요즘 같아선 에티오피아이다. 80여개의 민족 집단이 어우러져 살면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을 지칭하는 표기나 발음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에티오피아에서 ‘예가체프’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종이에 철자를 쓰게 한 뒤에야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떠오른다.
유전형이 서로 같은 게이샤 커피라고 국내에서 팔리고 있는 커피 생두들. 왼쪽부터 파나마 게이샤, 리무 게이샤, 아바야 게이샤.
더 큰 문제는 품종에 관한 표기이다.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종의 기원지로서 전 지역의 커피를 원종 또는 토착종이라는 의미에서 에어룸(Heirloom)이라고 부른다. 유전자형이 워낙 다양해서 일일이 그 차이를 따져 구별해 부르기가 불가능했던 탓이다.

아라비카라는 명칭 자체도 사실 오해가 빚어낸 이름이다. 꽃 모양이 재스민과 비슷하다고 해서 태양왕 루이 14세 때 ‘자스미눔 아라비쿰(Jasminum arabicum)’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로 인해 18세기 칼 폰 린네는 기원지를 아라비아반도인 줄 잘못 알고 학명을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라고 정했는데 현재까지 수정 없이 불리고 있다.

이런 혼란이 미래를 암시한 것일까? 에티오피아에서 생산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게샤(Gesha) 커피들을 보면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비싼 값으로 유명세를 탄 ‘파나마 게이샤(Panama Geisha)’는 이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예멘 모카처럼 당당한 하나의 재배품종(cultivar)이 됐다. 별도의 이름을 받을 만큼 품종과 출처, 품질이 명확하다는 사실을 시장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에티오피아에서 게샤종이 1931년 영국 영사이던 리처드 웨일리에 의해 채집돼 케냐와 탄자니아, 코스타리카를 거쳐 1963년 파나마에 전해질 때의 명칭은 ‘T2722’였다. 당시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미흡해 수많은 종자를 키워낸 뒤 형질이 특이한 것을 가려내 번호를 붙였다. 예를 들어 2722번 종자의 경우 병충해에 강한 면모를 보여 채택된 것이다.

파나마 게이샤를 세계적으로 흥행시킨 2004년 파나마대회에서도 게이샤는 이름을 걸지 못하고 ‘자라밀로’라는 농장명으로 출품됐다. 게이샤라는 명칭은 대회가 끝난 뒤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 기원지인 벤치 마지(Bench Maji) 지역의 숲 이름을 따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뒤늦게 에티오피아에서 게샤 원종을 구매하려는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아라비카 커피의 기원지로 소문난 카파 지역에 하필 ‘게샤’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어 소동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리무 게이샤, 아바야 게이샤, 심지어는 에티오피아 게이샤라는 품종이 나타나 유독 국내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이들 커피 생두의 모양이나 맛이 벤치 마지의 게샤나 파나마 게이샤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의심의 눈총을 받고 있다. 아무리 봐도 게샤답지 않은 이들 커피에 누가 게샤라는 명칭을 달아 판매하는 것일까? 재배자, 중간 상인, 국내 판매상 중 하나일 텐데…. 이런 의혹에 대해 ‘게샤 커피가 아니라는 물증을 대라’고 되레 소리친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의심과 의혹 속에서는 게샤 커피가 사랑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누군가에게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커피가 끝까지 살아남을 순 없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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