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국제망신’이라는데…폭염, 후대에 부끄럽진 않은가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2018년 여름은 아직도 기자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국내 기상 관측사상, 아니 단군 이래 가장 더웠다던 그 해 기자는 기상청을 담당했다. 연일 날씨 스케치, 예보를 포함한 폭염 기사를 썼다. 당시 서울의 한낮 기온은 체감기온이 아니라 실제 기온이 39.6도에 이르렀다. 강원 홍천의 한낮 기온은 41.0도를 기록해 국내 최고기온 기록을 111년 만에 갈아치웠다. 일명 ‘대프리카’라 불리던 대구 한낮 기온도 매일 39도를 넘나들어 당시 넷째를 임신 중이었던 기자가 직접 ‘폭염 체험’을 다녀오기도 했다.
역대급 폭염에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배출할 경우 30년 뒤 한반도의 여름은 4월에서 10월까지 5달가량 지속될 것이라는 등 폭염과 관련한 섬뜩한 경고가 담겼다. 정부와 정치권은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각종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을 줄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저감해야 한다는 등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제언들도 이어졌다. 기록적인 폭염에 식겁한 시민들도 공감했다.
5년이 지난 올해, 또 다시 고온에 태풍이 몰고 온 고습도가 더해진 무더위가 전국을 덮쳤다. 연일 35를 넘나드는 기온에 온열질환자가 전년 동기 대비 3배 늘면서 2018년 여름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역대 최초로 폭염 대응을 위한 2단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다시 온난화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사람들도 “정말 문제”라며 혀를 찬다. 2018년 이후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돼버린 걸까?
● 목표에 못 미치는 온실가스 감축량
2018년 이후 우리 기후 대응에는 여러 진전이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계획이 수립됐고, 플라스틱 등 폐자원 순환 정책도 대거 정비됐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국제사회와 약속한 것이다. 이른바 국가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다.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런 감축은 국내법으로도 의무화됐다.
국가 전체적으로 짧은 시간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여야 하기에 NDC 달성은 분명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만 이런 부담을 떠안은 것은 아니다. 2030년까지 유럽연합(EU)은 1990년 대비 55%, 미국은 2005년 대비 50~52%, 일본은 2013년 대비 46% 감축하기로 했다. 최근 유럽은 이 목표치 상향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지구의 온난화 속도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준연도인 2018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성적표는 어떨까? 솔직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2018년 7억270만t(CO2-eq)으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7억129만t(전년 대비 3.5% 감소), 2020년 6억5620만t(전년비 6.4% 감소)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보면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2020년 감소폭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든 영향이 컸고, 2019년 감소폭도 목표치에 못 미쳤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2021년 배출량은 6억7810만t(전년 대비 3.3% 증가)으로 오히려 늘었다. 2022년에 다시 6억5450만t으로 전년보다 3.5% 줄었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30년까지 NDC 달성을 위해 매년 온실가스를 전년 대비 5.4%씩 감축해야 한다.
● 여름철 ‘반짝’ 관심…기업 온실가스 감축분 되레 줄여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큰 위기감을 찾아보긴 어렵다.
사실 2018년과 올해뿐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재앙은 매 여름 화두였다. 2018년 정도는 아니지만 여름이 되면 짧게라도 극한의 무더위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더위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극한호우’와 ‘초대형 태풍’이 이슈가 됐다. 이 역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영향이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다시 기후변화와 관련한 위기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때다. 여름철 ‘반짝’ 관심에 그쳤다. 여전히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화력발전소의 국내 가동기수는 59기에 이른다. 전체 전력 생산량 중 화력 의존율이 30%다. 재생에너지 기여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서 산업 부문 감축 목표치까지 기존 계획 대비 3.1%포인트 낮췄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즉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계획 때보다 810만t가량 덜 줄여도 된다. 대신 정부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에서 녹색사업을 벌여 그를 통한 감축분으로 산업계 감축 감소분을 상쇄하겠다고 밝혔다.
감축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워낙 복잡한 일인데다 전문가들 간에도 이견이 크기 때문에 기자가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걱정되는 점은 정부의 계획의 변경이 전 사회적으로 줬을 메시지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만 100% 사용하겠다는 ‘RE100’ 선언을 자발적으로 하는 등 탄소 저감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극히 일부 기업만 RE100을 선언하거나 선언할 계획임을 밝혔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터전을 깔고 독려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화력 위주 발전을 운용하면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여주는 분위기하에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물론 정부나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미세먼지가 한창 이슈였던 2017년 환경부 출입 기자로 연일 미세먼지 기사를 쓰며 가장 답답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높아진 미세먼지 농도가 중국 탓, 발전소 탓, 기업 탓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은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이거나 전기를 절약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이 내뿜는 매연이 다 한국으로 날아와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며 거세게 비판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매일 내연기관차를 몰고 출근했다. 고농도 시 미세먼지 기여율 50%가 중국 등 해외라면 나머지 50%는 국내 발생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내뿜는 매연을 비난하려면 적어도 본인은 덜 뿜으면서 비난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매 여름마다 극한의 무더위, 강수 피해를 겪으며 사람들은 온난화가 문제라며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정작 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작은 실천부터 하자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상점 출입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거나, 냉방병이 우려될 정도로 사무실 온도를 낮추고, 쓰지도 않는 전자기기의 전원을 켜놓은 채 외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자는 최근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방문했는데, 한낮 기온이 38, 39도에 이르러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도 거리에 수십 대의 자전거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직장인은 물론 아이 엄마, 학생,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했다. 물론 그들이 온실가스 배출 저감만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더운 날씨에도 큰 불만 없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불편하다고, 남들도 다 안 한다고 노력을 등한시 하기 쉬운데, 막상 해보면 큰 불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위 속 자전거 이용처럼 말이다.
현재 기자의 자택 베란다에는 작은 태양광판도 설치돼있다. 정부의 소규모 태양광 발전 지원제도에 따라 지자체에서 설치 금액 대부분을 지원받아 설치한 것이다. 6인 가족이라 전기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직접 생산한 친환경적인 전기로 이를 일부 상쇄하고 있다.
● 국제사회와 후대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전북 새만금에서 개최되고 있는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일 체감온도 40도를 넘나드는 고온, 고습도의 무더위에 대회 첫날부터 400여 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면서 외신에서도 보도되는 등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류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왔을 청소년들이 실망했을 생각에 미안하고 국제적으로도 민망한 일임은 맞다. 하지만 이곳 한국에 사는 국민들은 이런 더위를 매년 겪고 있다. 한 번 배출된 온실가스는 100년가량 공기 중에 잔존하기 때문에 우리 후대는 더 심한 더위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국민들과 후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이런 여름과 호우를 물려주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가.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상기후 때만 반짝 쏟아지는 기후변화 경고는 이제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늦추고 개선할 수 있는 현상이다. 국제사회와 약속한 NDC 기한이 7년 남았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한국이 감당해야 할 국제적 망신, 우리 아이들이 당할 피해는 잼버리 대회 수준이 아닐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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