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멘토' 오글트리 前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별세

김태훈 2023. 8. 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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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클래런스 토머스 당시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를 겨냥한 '미투'(MeToo) 폭로 당시 의혹을 제기한 여성의 변호인을 맡았던 찰스 오글트리 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7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오글트리는 1984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로 임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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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오바마, 미셸 등 제자로 가르쳐
"법은 사회·정치 변화의 도구"… 민권 운동
1991년 토머스 대법관 후보 성추문 폭로한
애니타 힐 변호인 맡아 '인준 부결' 추진도

1991년 클래런스 토머스 당시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를 겨냥한 ‘미투’(MeToo) 폭로 당시 의혹을 제기한 여성의 변호인을 맡았던 찰스 오글트리 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7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오글트리는 이날 메릴랜드주(州) 오덴턴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사망 원인에 대해 하버드대 로스쿨 측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밝혔다. 오글트리는 60대 초반이던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왔다. 2019년부터는 증세가 심해져 실종됐다가 경찰의 수색 끝에 안전하게 발견되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저명한 인권 운동가였던 찰스 오글트리(1952∼2023) 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사진은 2014년 열린 흑인 언론인들의 토론회에 참석해 발표를 경청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오글트리는 1952년 12월 캘리포니아주에서 농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스탠포드대에 입학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부터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선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제도 개선을 이루는 데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1978년 법학박사 학위 취득과 동시에 변호사 자격증을 딴 오글트리는 수도 워싱턴 일대에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오글트리는 1984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로 임용됐다. 1980년대 후반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니고 훗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된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는 둘 다 그의 제자였다. 오글트리는 학생들에게 “법은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라며 “소외되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법률가들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가르쳤다. 뜻있는 학생들과 함께 하버드대 형사사법연구소를 만들어 하버드대가 자리한 보스턴 지역의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한테 법률 서비스를 제공했다.

오글트리를 유명인으로 만든 건 1991년 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미투 파문이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클래런스 토머스 판사가 과거 자신의 법률보좌관인 애니타 힐이란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시절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상원 법사위원장이 바로 지금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힐의 변호인을 맡은 오글트리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토머스를 밀어붙였으나 여론은 대체로 토머스 판사를 두둔하고 ‘힐의 폭로에 신빙성이 없다’는 쪽이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임명 찬성으로 기울었다. 상원 본회의는 표결 끝에 찬성 52표 대 반대 48표로 아슬아슬하게 토머스 대법관 인준안을 가결했다.
1991년 찰스 오글트리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운데)가 클래런스 토머스 당시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성추행 의혹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오글트리는 토머스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애니타 힐의 변호인을 맡아 토머스의 인준안 부결을 추진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AP연합뉴스
이후로도 오글트리는 법학교수로서 또 변호사로서 흑인을 비롯해 차별받는 소수를 위한 변론에 앞장섰다. 1921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백인들이 흑인 거주지를 습격해 마구 살인을 저지른 털사 학살 사건 희생자와 그 후손들을 위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리인을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오글트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 미국의 흑인 노예제로 피해를 본 이들의 후손에게 연방정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다만 두 건 다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와 관련해 오글트리 본인은 “결국 언젠가는 배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낙관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제자인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는 5일 성명에서 “우리의 친구이기도 한 오글트리 교수님의 별세 소식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고인은 사회 정의를 옹호한 변호사이자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법학교수인 동시에 우리 부부를 비롯해 수많은 법학도들의 멘토였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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