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하게 줄 세우자고? 1등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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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시험에서 전국 1등을 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성적표에 1등이 찍혀 있는 곳에 어떤 친구는 '3,987'등, 다른 친구는 '67,543'등, 또 다른 친구는 '564,395'등이라고 찍혀 있었을 것이다.
반에서 등수를 매기는 것도 아찔한데 전국에 있는 수험생 전부를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끔찍한 시대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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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시험에서 전국 1등을 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성적표에 1등이 찍혀 있는 곳에 어떤 친구는 ‘3,987’등, 다른 친구는 ‘67,543’등, 또 다른 친구는 ‘564,395’등이라고 찍혀 있었을 것이다. 반에서 등수를 매기는 것도 아찔한데 전국에 있는 수험생 전부를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끔찍한 시대를 살았다. 그 기다란 줄이 위태위태하고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을 해서, 선택과목도 늘리고 전형 방식도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입시는 변했다. 하지만 다양한 평가과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논란이 불거지는 일이 잦다. 여전히 화끈하게 줄을 세우자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다.
등수대로 줄 세우는 것을 평생 끔찍하게 여겼지만, 티브이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비교적 재미있게 보았다. 왜 그랬을까? 1등에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시청자를 모으려는 방송사의 노림수였을 테지만 탈락자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가장 흥미로웠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재능은 좀 부족해도 어마어마하게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잘하는데 주변 환경이 방해가 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실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화제의 인물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은 인생사의 다양한 면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 된다. 거기에 응원하는 사람까지 생기면 쫄깃한 긴장까지 더해져 하룻밤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소일거리가 된다. 이제 유행이 지나 그 많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여운은 남아 있다.
정설화의 ‘더 콩쿠르’는 희미한 여운을 확 살려준, 힘이 있는 작품이다. 천재적인 한국인 연주자가 요절하고 남긴 바이올린 ‘과르네리’를 물려받을 사람을 결정하는 콩쿠르가 열렸다. 과르네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와 함께 세계 3대 바이올린이라고 불리는 악기. 주세페 과르네리가 만든 바이올린은 전세계에 150여개 정도 남아 있다고 추정되는데, 그나마 많은 수가 박물관에 있어서 값을 매기기 어렵다. 실제 거래된다면 수백억원을 쉬이 호가할 것이다. 큰 상을 걸고 벌어진 국제 콩쿠르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책엔 콩쿠르에 참여한 친구들의 사연이 가득하다.
할아버지부터 3대가 바이올린 천재로 인정받는 명문가 출신의 또 다른 천재 ‘안톤’. 어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지만 이젠 벗어나고 싶은 신동 ‘청샤오’. 열심히 연습하지 않아도 항상 결과가 좋아 게임하는 데만 진심인 악동 ‘벤’. 환경과 조건은 좋아도 바이올린을 향한 열정은 좀 부족했는데 콩쿠르를 통해서 진짜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을 찾은 ‘의주’, 일곱살에 줄리어드에 입학한 천재였지만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고 오랜만에 돌아온 ‘리사’, 그리고 독학으로 배운 바이올린 실력은 부족하지만 연주에 자연을 담을 줄 아는 주인공 ‘호경’. 이런 참가자들이 여러 차례 열리는 경연을 통해 사연을 쏟아내고 성장한다.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데, 휴가도 못 가고 답답한 마음을 책에 기대서 풀고 있다. 경연의 라운드마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씩 풀고 탈락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원하다. 독서가 피서의 방법에서 탈락한 지 오래지만, 마음을 웅장하게 만드는 성장 드라마를 읽으면서 딴 세상으로 피난 다녀오는 것은 굉장한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누가 1등을 할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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