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들어본 그 말 "옷이 딱 맞네"
장애인에게 의복은 의료기기의 일종…리폼은 '선택이 아닌 필수'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우리 아이들의 첫 단체복이에요. 체험학습이 기다려지네요."
부산혜남학교는 유치부, 초등, 중등, 고등, 전공과 등으로 구성된 공립특수학교이다. 교복을 입지 않는 부산혜남학교 학생들은 생활복, 체육복 등 단체복 역시 입어본 적이 없다.
2~3세 영유아부터 19세 이상 성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학생들 특성상 기존 정장형 교복을 착용하기 불편하고, 182명 학생들마다 '입을 수 있는' 옷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오는 10월 첫 단체 생활복이 생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산울산경남지회(복지회)가 유니클로의 지원으로 진행하는 장애인 의류 리폼사업 덕분이다.
재단사, 상담사는 지난 7월 한 달간 부산혜남학교를 찾았다. 이들과 함께 방문한 초등부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교사 2~3명의 도움을 받아 유니클로에서 제공한 겉옷, 상의, 하의 3벌을 입어보고 있었다.
스스로 목을 가누기 힘들고 또래보다 왜소한 학생 A양을 위해서는 입고 벗기 편하게 바지에 고무줄 밴딩을 추가하고, 겉옷 목 주변에 방수가 가능한 패드를 덧대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다리에 보조기기를 착용한 학생 B군을 위해서는 바지 밑단을 트고 지퍼를 다는 등의 리폼 방법이 고려됐다.
이날 작성된 작업지시서에 따라 수선이 이뤄지면 두 학생은 생애 처음으로 '딱 맞는'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
서유자 부산혜남학교 교감선생님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 의복에 대해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면서 "맞춤형 수선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들이 기능적, 미적 패션을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반 수선집에서는 거절 당하기도
뇌의 손상이나 발육 이상을 겪은 뇌병변 장애인은 팔다리 수축, 강직 등 운동 기능 저하로 인해 신축성이 좋은 스판 재질의 옷이나 본인의 몸보다 1~2치수 큰 옷을 찾는다.
또 왜소한 몸집의 뇌병변 장애인은 연령에 맞는 의류가 없어 청소년기에도 유아용, 아동용을 그대로 입기도 한다.
게다가 신체변형이나 신체를 지지·교정하는 기구로 인해 몸을 기성복에 맞춰 입기 힘든 경우도 많아 다양한 패션을 누리기는커녕 알맞은 옷을 찾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휠체어, 몸을 교정시키는 도구인 이너(Inner) 등 의복과 함께 사용해야 할 장치들의 특성은 물론 방수와 세탁 등 의복의 기능까지 고려한 리폼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수선집을 찾아가도 거절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담업무를 맡은 서진아 복지회 간사는 "많은 장애인들이 외출을 위해 몸에 맞지 않은 기성복을 억지로 끼어 입거나, 입고 벗는 과정이 부담스러워 외출을 꺼리기도 한다"며 "개별 장애 특성에 맞는 수선이 까다롭고 비용도 부담스러워 개개인이 수선집을 찾아 리폼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장 입은 장애인 자주 보려면
색감, 소재, 디자인, 가격 등 사람마다 옷을 고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때문에 누군가는 옷으로 본인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옷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누군가는 옷으로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은 평생 '입을 수 있는' 옷만 입는다.
2020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뇌성마비, 뇌졸중 등 뇌병변 장애인은 16만9398명로 추정된다. 이중 절반 이상인 51.8%는 '옷 갈아입기'에 활동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스스로 옷을 입고 벗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리폼은 단순히 입고 싶던 디자인의 옷을 고를 수 있다는 패션의 영역을 넘어 스스로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자립 생활의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조공학기기 지원 등과 달리 의류는 여전히 개인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장을 입은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서진아 간사는 "지난해 개인의류 리폼 서비스를 진행할 때 정장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단정하게 갖춰 입고 결혼식, 졸업식에 갈 수 있다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의복이 변하면 장애인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축하를 나눌 수 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입는 의류를 개발하는 브랜드 '베터베이직'의 박주현 대표는 "이들에게 의복은 의료기기의 일종으로, 어쩌면 리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의복을 통해 만족감과 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장애인 당사자에게 경험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며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과 다양한 사례에 대한 연구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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