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로 환생한 듯…87세 신구의 '라스트 세션'[강진아의 이 공연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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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튀는 팽팽한 논쟁이 파도처럼 지나간 후, 마지막 순간 노학자는 의자에 앉아 미동 없이 고요함만을 남겼다.
그리고 무대 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자 노배우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객석을 마주하고 젊은 배우의 두 손을 맞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1939년 9월3일, 실제론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했다.
신의 존재 유무부터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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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불꽃 튀는 팽팽한 논쟁이 파도처럼 지나간 후, 마지막 순간 노학자는 의자에 앉아 미동 없이 고요함만을 남겼다. 그리고 무대 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자 노배우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객석을 마주하고 젊은 배우의 두 손을 맞잡았다. 소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안경에 말쑥한 갈색 정장을 입은 87세의 배우 신구.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그는 90분간 노학자 프로이트 그 자체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신을 믿지 않는 철학자로 변신해 꼬리를 무는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때론 꾸짖듯 목소리도 높인다. 진지함 속엔 노학자의 여유 있는 유머도 살아있다. 곳곳에서 대수롭지 않게 툭툭 내뱉는 재치 있는 말들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극에서도 그는 말한다. "논쟁에서 승부를 가르는 건 유머죠."
신구는 2020년 초연부터 이번 세 번째 시즌까지 이 작품과 쭉 인연을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공연 중 급성 심부전으로 입원도 했지만, 올해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쏟겠다"던 그는 방대하고 난해한 대사를 쥐락펴락하며 열연을 펼쳤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에 따라 무대를 하는 걸로 알려진 그는 대사 앞에 잠시 멈칫한 순간도 관록을 발휘해 곧바로 자연스레 넘겨냈다.
작품은 20세기 위대한 두 학자의 치열한 논쟁으로 전개된다. 무신론을 대표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유신론을 대표하는 C.S.루이스가 각자 신념과 가치를 내세우며 맞부딪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1939년 9월3일, 실제론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했다.
이야기는 프로이트의 초대로 루이스가 그의 서재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와 공습 경보음 그리고 전쟁 소식과 클래식이 흐르는 라디오 방송이 분위기를 전환하지만, 극을 꽉 채우는 건 '대화의 향연'이다. 두 학자의 한 치 양보 없는 지적 대결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신의 존재 유무부터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전쟁의 위기 속에 삶과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 아버지와 가족, 사랑과 섹스 등으로 주제가 변화하며 질문에 질문이 이어진다.
둘 사이의 간극을 꼭 좁히기 위한 대화는 아니다. 순식간에 여러 담론을 넘나드는 어려운 말을 100%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서로의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원인을 묻고 답을 하며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하는 그 '과정'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나선 카이도 호연했다. 대극장 뮤지컬을 주 무대로 활약해 온 그는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더 가까이 만나며 빛을 발했다. 실제 유신론자라는 그는 냉철하고 지적인 젊은 학자 루이스 역을 맡아 첫 출연임에도 신구와 매끄럽게 호흡했다. 또렷한 발성과 발음은 루이스의 신념이 담긴 대사의 설득력을 더해 몰입을 높였다.
신구, 카이와 함께 남명렬, 이상윤이 번갈아 연기한다. 남명렬은 초연에 이어 다시 돌아왔고, 이상윤은 신구와 함께 3연속 출연이다. 공연은 서울 종로구 티오엠 1관에서 오는 9월1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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